네덜란드 문화사학자 요한 하우징아는 저서 ‘호모 루덴스(Homo Ludens)’에서 "놀이는 문화의 한 요소가 아니라 문화 그 자체가 놀이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라고 역설했다. 통속적 의미와 단편적 사고로 논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이들에겐 하우징아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질 것이다.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자유롭게 잘 놀던 사람들이 문명화 과정을 거치면서, 직업인과 경제인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우리는 숱하게 목도했다.대표적으로 미국 IT기업 구글(Google)을 들 수 있다. 1998년, 작은 창고에서 사업을 시작, 1뒤에 0이
6년의 시간 동안 모친의 치매 병수발로 고된 삶을 살고 있는 지인이 있다.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으나 병환이 깊어지지 않은 건 온전히 가족의 힘일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모친의 병환은 일순간도 긴장감을 놓을 수 없다 한다.집 안의 눈에 띄는 약은 거리낌 없이 다 드시려고 하고 새벽 내내 이방 저 방을 혼미한 정신으로 배회하셔서 가족들은 새벽 내내 잠을 설치기 일쑤란다. 잠깐 한 눈을 팔세면 여기저기 부딪치고 넘어지는 일은 다반사여서 늦은 밤 응급실로 달려가는 전쟁 같은 일상은 지인의 건강하던 얼굴마저 반쪽을 만들었다.그럼에도‘부모의
고종의 주치의이기도 했던 영국 출신 존 헤론 선교사는 환자를 돌보던 중 전염성 이질에 걸려 34세의 나이에 요절했다. 1885년 당시, 그가 남긴 글에는 "조선 사람들의 절반은 천연두로 죽는다. 피부병과 무좀은 다반사이고 수술받은 환자들은 음주와 음식을 가리지 않아 그 예후도 좋지 않다”라고 한탄한 바 있다. 120년 전 우리나라 의료 현실이었다. 1900년 이전, 국민들의 평균 수명이 35세 이하였던 나라가 세계가 선망하는 의료체계를 갖춘 나라로 변모되었다. 버락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도 부러워할 건강보험제도를 비롯하여 OECD
살다 보니 호락호락한 겨울은 없었다. 봄이 오려면 어김없이 모진 산통을 겪는다. 유난히 포근한 겨울에도 반드시 꽃샘추위는 있었다.이번 겨울은 유난히 혹독했다. 어쩌면 지난해의 사계는 내내 매서운 겨울이었다. 코로나19는 우리의 삶을 뒤죽박죽 흔들어 댔고 자유로웠던 모든 일상은 좁은 공간에 포박 당했다.계절에 마디를 두는 것은 혼란을 묻고 희망으로 나아가라는 자연의 섭리이다. 감염병의 창살 안에 갇혀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혹한의 겨울도 만고의 이치를 거스르기 어려웠던지 해빙의 기운을 드러냈다.팬데믹의 정세는 여전히 엄혹하지만 그렇게
들어가는 글이 고지식하지만 도리 없다. 음식에 대한 역사를 논하지 않고서야 최애 음식 중 하나인 순댓국의 비범함을 써 내려가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1924년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는 순댓국이 돼지 삶은 물에 내장을 넣고 기호에 따라 우거지와 함께 끓인 국으로 기록돼 있다. 순대는 돼지고기, 선지, 찹쌀이나 녹말가루, 숙주나물, 배추김치 등을 잘 섞어 양념한 뒤 돼지 창자에 넣고 끝을 묶어 삶아서 그 삶은 물에 잘라 넣어 먹는 음식이다. 손도 많이 가고 재료도 비범하다. 오늘날의 순댓국의 변하지 않는 밑천이다. 그 시절 귀하디귀한
영화 덕후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 시네필 (Cinephile) 축에는 낀다. 무미건조한 삶에 있어 영화가 주는‘FEEL AS IF’의 만족감은 이름난 맛집에서의 식감이다. 동사의 과거형인 ‘AS IF’에는 세상의 모든 직업을 대입할 수 있으며 아바타화 된다. 움직일 시공간이 적어지는 나이가 들어 갈수록 세상의 모든 상상과 이야기들을 담아낸 영화의 매력은 더할 나위 없이 오묘하고 신비롭다. 누구나 보았을 아니면 들어보았을 영화 ‘이터널 선샤인’은 주인공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절절한 사랑 이야기이다. 헤어진 연인 클레멘타인에 대한 아픈 기
진료가 많은 날은 하루가 길다. 깨어있든, 잠들어 있든, 내게 주어진 시간은 그만큼 눈떠있는 시간이 삶의 온전함이다. 그렇다고 잠의 그 고귀한 가치를 폄하할 마음은 없다. 깨어있는 시간의 소중함이 위대할 뿐이다. 의사라는 직업의 특성상 조각난 연휴는 늘 상 있는 일이다. 빼곡한 시간을 소모하는 일에 익숙한지라 유유자적한 휴일은 꺼끌꺼끌한 속옷을 겹겹이 껴입은 느낌이다. 어쩌다 한가로운 날에도 늘어지는 잠을 생체는 동경하지만 쉬이 되지 않을 호사라고 여긴지 오래되었다. 몸이 부지런하고 오만가지 일에 열정을 쏟아야 되는 일상은 어쩌면
소외되고 고통받는 타인의 존재를 위로하고 희망을 건네는 이들이 있다. 이들의‘선한 영향력’은 흐드러진 봄꽃의 자태로 온 천지를 향기롭게 한다. 성직자도 그러하고 교육자도 그러하며 때로는 기업인도 그러하다. 시장 좌판에서 어렵사리 모은 돈으로 더 어려운 일상을 살아가는 이웃들에게 기부하는 키다리 아저씨도 있다.이들의 눈부신‘선한 영향력’은 무더운 여름, 산들바람 같아서 그 전파도 빠르고 쾌적하다.선행을 통해 함께 사는 공동체를 지향하는 사람들의 면면은 재물이 있어서도 아니고 사회적 지위가 높아서도 아니다. 인간의‘꼴’을 온전하게 지탱
뉴질랜드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지닌 환태평양 섬나라이다. 삼십대의 열혈청춘에 배낭여행 길, 뉴질랜드의 풍치에 빠져 눌러 앉기로 작정한 오랜 친구의 근황이 페이스 북을 통해 전해져왔다, 마스크를 끼지 않은 채 일요일의 여유를 공원에서 한가로이 만끽하는 사진 속 그의 얼굴은 마냥 평화로웠다.지난해 11월 18일 이후 확진자 제로 상태가 지속되고 있어 코로나 종식단계에 이른 국가로 평가되는 뉴질랜드는 지금 코로나19로부터 자유롭다. 돌아보면 코로나19 창궐 당시, 일찍부터 강력한 방역에 나섰던 결과일 것이다. 방역이 성공적으로 이뤄진 덕
신년 벽두, 눈시울을 붉히며 영화 '미안해요, 리키'를 보았다. 칸 영화제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치열한 경쟁을 벌인 작품이라 일찍 감치 보겠노라 점찍어둔 영화였다. 믿고 보는 켈 로치 감독의 작품이라는 점도 호기심을 자극했다.영화 속 주인공 ‘리키 터너’는 건설 현장에서 안 해본 일이 없는 노동자이다. 기반 공사, 배수 공사, 굴착은 물론이고 바닥 작업, 판석 깔기, 심지어 무덤 파기까지 그는 늘 가족을 위해 살아온 성실한 가장이다.그러던 그가 벌이가 더 좋을 거라는 친구의 말에 이끌려 혼자 하는 일을 택한다. 택배기사였다
질기고 모진 감염병인 코로나는 대한민국 세밑 풍경마저 바꿔놓았다. 해마다 거리에서 들여오던 캐럴송과 구세군의 종소리는 읍소거 된 것 마냥 사라졌고 해질녘에는 정해진 시간에 집으로 향하는 신데렐라의 행렬이 이어진다. 초저녁 아파트 주차장은 퇴근한 차량들이 차고 넘친다. 외출은 갈 곳이 없고 외식은 엄두도 못 낼 일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코로나는 우리의 일상을 시나브로 봉쇄했다. 세계에서 인구 간 접촉 밀도가 가장 높은 우리는 일 년이 넘도록 지속된 코로나의 장기 지속에 극도로 취약한 국가이다. 그런 이유로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 생활
언제부터인가 종이 활자가 불편한 세상을 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날로 진일보하는 IT 기술은 게으름을 강요하기 일쑤이다. 굳이 책을 사러 서점에 가지 않아도, 굳이 신문을 읽지 않아도 손안의 이동전화는 알라딘의 요술램프처럼 신통방통하게 문화적 욕구를 채워주기 때문이다. 이런 세상을 살며 고리타분한 고전을 꺼내들기 난망하지만 여전히 고전의 지혜는 유효하며 향기롭다. 중국 당나라의 정사로서 이십오사의 하나인 당서에는 ‘종신양로불왕백보(終身讓路不枉百步)’라는 글귀가 있다. 한평생 동안 계속 남에게 밭고랑을 양보한다 해도 잃은 것의 합
살면서 제 이름을 스스로 부르기란 여간해서 쉽지 않다. 나르시시즘에 도취한 존재가 아니고서야 곰살 맞은 형용사까지 접두에 붙여가며 말이다. 넉살 좋게‘친절한 태환 씨’로 호칭하는 나를 독자들은 자아도취라고 힐책할지도 모르겠다. 정녕코 극도의 자기애에 빠져 과시할 의도가 아님을 헤아려 주시길 당부 드린다. 의료현장에서 진료는 환자의 통증을 전해 듣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러하기에 환자의 통증 호소에 따라 의사는 치료방법을 달리한다. 환자가 자신의 고통에 솔직하지 못할 때는 당연히 제대로 된 치료는 요원하다. 후배 의사들에게 틈만 나면
누구나 한 번은 들어보았을 소크라테스는 그리스 철학의 토대를 이뤄낸 선지자이다. 알려진 명성만큼 생전에 아무런 저서를 남기지 않아 그의 제자인 플라톤의 글들을 통해 그를 유추할 수 있디.그러나 영혼에 대한 사유와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한 실천적 철학자였음은 분명하다. 역사적 문헌에 일관되게 기록된 그의 생애가 그러했고 죽음도 그러했다. 후세에 그를 높게 평가하는 주된 이유는 말과 행동이 일치된 삶을 살다 갔기 때문이다.자칫 추상적일 수 있는 철학이라는 학문이 인간의 일상 속에서 내재된 언어와 행동으로 구현되기란 쉽지 않다. 무릇
언제부턴가 TV 채널에 음식 관련 프로그램이 차고 넘실거린다. 음식은 화면을 통해 현대인의 미학이 되고 식욕을 대신해주는‘먹방’은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기존의 쿠킹쇼와 맛집 탐험을 훌쩍 넘어서 예능까지 그 영역을 넓혀 음식 방송은 TV를 점령했다. 바야흐로 음식 전성시대이다.음식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로 하는 에너지를 공급해 주는 요소로서 생을 이어가기 위해선 반드시 섭취해야 되는 생명줄이다. 문학이 이성의 정수리에 위치한 본능의 고백이라면 음식은 인간 오체의 생존에 대한 직접적 욕망이다. ‘문학을 홀린 음식들’의 작가
개인적 소사 하나. 올해 봄날, 장범준의 노래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 향이 느껴 진 거야’를 통화 연결 음으로 설정해 두었다. 전화를 걸어오는 이들에게 재기 발랄한 노래 가사 대로 상큼한 향기가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계절의 흐름 따라 감성도 함께 흐르기에 대중가요를 '유행가'라 칭하지만 사람의 향기를 가사에 내재할 수 있다는 건 노래가 지닌 위대한 힘이다.파트리트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는 18세기 유럽으로의 초대라 해도 과언이 아닌 작품이다. 소설 속 “존재하는 모든 것은 향기가 있다”라는 구절은 강렬한 문장의 가
유난히 큰 코를 빗대어 작명된 동물 코끼리는 여타의 동물에 비해 지능이 높고 온순하다. 인간과 쉽게 동화된다. 가장 큰 특징인 코는 윗입술과 붙어 있다. 코를 치료하고 연구하는 의사 입장에서 코끼리 코에 약 15만 개 이상의 근육이 있다는 사실은 경이롭다. 코의 근육들은 인간의 손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다. 콧소리를 통해 위험을 알리거나 초저주파를 발생해서 무리와 소통하는 것도 모두 코의 역할이다. 그래서인지 코는 코끼리의 전부이자 상징이다.인지언어학자인 미국의 조지 레이코프의 저서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를 최근 다시 꺼내
병원을 떠나있던 전공의 후배들이 의료 현장에 복귀한다. 지난달 21일부터 이어진 집단휴진도 비로소 17일 만에 일단락됐다. 내부 의사결정 과정에서 이견이 만만치 않았기에 지난한 과정이었다.강고한 연대가 조직될 수 있을지 가늠하기 힘든 상황 속에서 집단의 문제인 의료 정책 반대의 결속 정도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은 뒤집혔다. 그만큼 의사들은 분노했고 절규했다.의료계는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등에 학생들은 물론 청년의사들을 위시하여 대학병원의 교수는 물론, 의료계 원로들까지 단일대오로 대응했다. 과거 의약분
미국 객관주의 철학의 창시자 아인 랜드의 소설 ‘아틀라스’는 작가 스스로 '여 덜 살에 세웠던 목표를 이룬 완성판이자 절정'이라 평가한 대표작이다.대게 자신의 글에 대해 인색하기 짝이 없는 작가들에 반해 그녀는 이렇듯 늘 야심 찼으며 자신의 글을 사랑했다. 이성의 가치와 극단적 개인주의를 강조하던 그녀는 호불호가 명백한 극단적 팬덤을 지닌 작가였다. 그러다 보니 60~70년대 미국 사회에서 가장 논쟁적 인물이 되었다. 그녀 스스로 자유 지상주의자를 경멸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세상 사람들로부터는 리버테리안의 기수로 불리는 인물이기도
문학을 즐겨 읽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선호하는 작가가 있을 터이다. 내 경우에는 소설가 윤흥길이 그렇다.그의 작품들은 숙성된 된장 맛을 낸다. 사상의 장독대에서 오래도록 묵혀둔 글감의 깊은 맛은 읽은 이로 하여금 역사의 향기와 토속의 미각을 체감하게 한다. 화자들의 관계를 더딘 걸음으로 추적하지만 독자보다 앞서가지도 감성을 재촉하지도 않는다. 그러다보면 읽은 이들은 스스로 자각하는 힘을 키운다. 스스로가 갖는 꼰대 식 권위 말고 타인이 부여해 주는 권위를 가치 있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긴 장마의 시기에 윤흥길의 글들을 고즈넉이 읽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