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 섶으로 품다 그것은 바람이었다. 생과 소멸의 순환의 고리란 일정한 궤를 갖고 있지 않다는, 돌아봄과 되새김의 시간이 머무는 곳, 내 유년의 뜰에 엄마는 초승 달빛처럼 떨어진 찔레꽃 빛처럼 조마조마했다. 온갖 민간요법을 동원해 딸을 부등키며 살림을 도맡은 외할머니, 우리를 향한 냉정함과 깊어가는 한숨 소리는 어린 가슴을 주눅 들게 했다. 죽음의 실체는 잡히지 않았지만 콩쥐 팥쥐, 계모를 떠올리며 밤길을 달려 조막손으로 보건소 문을 두드려 하품하는 의사의 왕진을 청해야 했다. 해가 설핏 기울면 앞산 그림자가 마당 가득 내려온다
추어탕을 끓이며 막냇동생이 주말에 오겠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명절이 가깝다. ‘코로나 19’로 초비상 시국이지만 구순의 노모가 계시니 다녀가야겠다 싶은 모양이다. 함께 살았던 동생이어서, 그가 오는 날이면 나는 조금 설렌다. 추어탕을 끓이기로 했다. 손도 많이 가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음식이어서, 좀체 엄두를 내지 못하는데 잘됐다 싶었다. 저녁 무렵 동생이 왔다. 겉옷과 두터운 마스크를 한켠에다 얌전히 벗어놓고 화장실로 직행하더니 한참을 씻고 나왔다. 자신이 오염원일 수가 있어서 극 조심하는 중이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종일 환자를
홀로세(稅) 부부세(稅) 국회는 2025년 새해 벽두부터 ‘홀로세’와 ‘부부세’라는 세법을 제정하고 가결시켰다. ‘홀로세’는 35세 이상인 독신 남녀들이 대상이었고, ‘부부세’는 결혼 후 4년 차 이상인 무자녀 부부들이 대상이었다. 바야흐로 국회가 제정한 법률은 사람들의 사적이 은밀한 부분까지 공권력의 잣대를 들이대려 했다. 유예기간이 2년이며 2027년부터 시행하기로 하고 공포했다. 2019년 말, 대한민국 인구는 5,185만 명의 정점을 찍고 출산율의 저하로 인해 감소세로 돌아섰다. 2024년 상반기에 5,000만 명이 무너졌다
꽝수 반점 나는 지금 글을 쓰려 한다. 글을 쓰기 위해 소설 창작 기법을 알려주는 책을 읽었다. 그 책들의 주된 이야기는 ‘소설은 분명 허구이며, 있을 법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이 말은 소설이 현실에 있을 법한 이야기이지만, 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자, 그럼 시작 합니다. 내 직업은 동네 중국집 주방장이다. 이 말을 먼저 하는 것은 나는 글을 써야 먹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차피 내가 쓰려는 이 글이 나에게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이다. 바라건대 지금 내가 쓰려고 하는 이 글이 사실인지, 아니면 소설인지
매화서옥도(梅畵書屋圖) 미학 강사 이수미 씨가 근대의 길목을 이야기하다 말고 박물관 벽에 매화서옥도를 비추었다 북한산 암벽 봉우리를 위무하는 눈은 예서인양 뭉툭해진 붓끝 잡고 뛰어내린다 중인, 조희룡이 그린 매화서옥도를 세한도 옆에 나란히 조명해 주던 그날벼루 밑창 열 개를 구멍 낸 세한도보다 간송미술관 수장고 문틈으로 세상을 기웃거리는 매화서옥도가 나는 좋았다 굴뚝 연기 속살 드러낼 때 엷은 묵즙 스며든 화선지어슷 썬 연근 구멍 사이로 붓방아를 찧듯 날려보낸 눈송이들 조선의 하늘이 수천수만의 나비 떼로 오는 오늘임자도로 유배 간
허기 대설지나 거둔 서리태맷돌에 들들들 갈아서펄펄 끓는 가마솥에 조심스럽게 부어준다파란 하늘이 뛰노는 간수를 부어주니몽글몽글 꽃이 피어난다목화 같기도 하고 메밀꽃 같기도 한꽃밭이다두어 번 노를 젓다 보니 꽃들 사이로 새들이 날고 만선 깃발을 앞세우고 파도와 씨름하던 고깃배가 들어온다안도하며 차려내는 상엔여인의 근심을 덜어낸 고소한 순두부 한 그릇이 전부다.
춘분 무렵 낮과 밤도 키가 있다 낮의 키가 한 뼘 정도 길어지면황학산의 고로쇠나무들은 일제히 나뭇잎 쪽으로 물을 퍼올린다 해발 칠백 미터 황학산 능선 따라고로쇠나무 가슴에 온통 주렁주렁 달린수액줄기를 보면예전 그 어느 병원이 생각난다 아직 매서운 입춘 바람 온몸으로 막아우수의 찬 비 고스란히 받아내어나무마다 헌혈주머니 하나씩 매달고 있다 뒤뚱 기울어져 걷는 안노인 구멍 숭숭 뚫린 뼈라도 좋아졌으면 좋으련만양팔 쭉 뻗어 오체투지 중이다
저승꽃 벚꽃잎이 하르르하르르 꽃비로 흩날린다4월에 내리는 눈꽃송이들일까관광버스 대절한 보람 상인회 오색옷 입고 벚꽃 구경 가는데김씨 할아버지는 오늘도 폐지를 줍는다‘팔자 좋은 양반들, 때마다 꽃구경은 잘도 가니더’속으로 궁시렁거려보지만, 그러거나 말거나주름진 얼굴에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저승꽃은오늘도 손수레 끌고 적막한 시장을 몇 바퀴째 돈다몸보다 큰 폐지를 연골 닳도록 꾹꾹 누르고 어젯밤 마누라 도망갔다며 고래고래 소리 질렀던 채소가게 박 씨의 소주병 몇 개도 싣고 “바짓단 줄이니더” 임씨 할머니 수선집 앞에 쌓아둔천 쪼가리도 차
물푸레나무 서식(書式)소설(小雪) 전날부터 나리는 빗줄기를 내 안에 들여놓는다 빗물은 빈자리를 적시는 게 아니라 거기에서 줄기를 뻗는 거라 생각해 본다 불안을 빨아들이니 슬픔이 되었다가 나의 웅덩이 안에서 가지를 뻗고 있다 물푸레나무가 동사무소 담장 위에서 명부(名簿)를 적는다 또박또박 11월의 부재를 기입하고 있다 빗줄기는 금세 여울물이 되어 나의 감각에서 역류해온다 당신이라는 생장점이 내게서 범람하는 것은 매번 기억의 수위 때문이다 잊어야 한다고 잊고 살아야 한다고, 물살이 거세질수록 나는 맨홀의 눈으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훌쩍이
응모작들을 읽으며 동화란 무엇인가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동화는 어른부터 아이까지 읽을 수 있는 문학이다. 소설이 주 독자층이 어른이라면, 동화는 주 독자층이 어린이까지 한층 확대할 수 있다. 때문에 동화는 삶의 본질이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매우 쉬운 문체로, 단순하게 독자들에게 전달을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거기에다 유희로서의 기능도 충족을 시킬 수 있어야 한다. 동화가 어려운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흔히 아이들이 읽기 때문에 쉽게 쓸 수 있다는 생각으로 편하게 접근하곤 하는데, 그것이 종종 패착을 불
‘제2회 글로리 시니어 신춘문예’ 수필 부문 응모작은 총 100여편이었다. 지난해 초부터 시작된 코로나 상황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이번 응모작 중에는 이런 상황들을 묘사한 작품들이 많았다. 아울러 시니어답게 자연을 관찰하며 유년과 젊은 날의 고난과 아름다웠던 추억들을 회상하고 현실을 긍정으로 바꾸려는 감동적인 수필 작품들이 많았다. 이중에서 최우인 님의 ‘아린(芽鱗)’, 김광임 님의 ‘그리움, 섶으로 품다’, 송종태 님의 ‘다시, 빗속으로’, 최미옥 님의 ‘추어탕을 끓이며’ 등 4편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최우인 님의 ‘아린(芽
1. 윤희웅 작가의 오랜만에 시원한 독서를 했다. 소설의 미학은 ‘재미’에 있다고 하는데, 그러려면 잘 읽혀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단편은 성공한 셈이다.첫 문단에서 “소설은 분명 허구이며, 있을 법한 이야기”라며 이 글이 소설인지를 판단해 달라는 너스레를 떤다. 습작 기간이 꽤 오래된 작가라는 인상을 받았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호흡이 일정하고 침착하며, 필요 없는 개인적 감정이나 사족이 없이 바로 다음 이야기로 건너뛴다. 그러나 그 행간이 오히려 빛이 난다.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음식점에서의 일이다. “세완에서
응모작들을 읽는 내내 즐거웠다. 시어들의 울림이 지속적으로 가슴을 흔들었기 때문이다. 예측할 수 없는 상상력으로 읽는 이를 놀라게 하는 작품은 드물었다. 그러나 세상과 사람에 대한 웅숭깊은 시선을 적절한 언어로 표현한 수작들이 많았다. 이 시어들을 품어 안는 시니어 신춘문예가 있다는 것이 다행스럽게 여겨질 정도였다.시를 사랑하여 시어를 조탁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희망이다. 극단적이고 공격적인 언어의 칼을 휘두르는 자들이 정치와 언론 영역에서 득세하는 세태에서 특히 그렇다. 이번에 선정되지 않은 분들도 꾸준히 시를 써
‘2021년 제2회 글로리 시니어 신춘 문예 공모’ 심사결과 시, 단편소설, 수필 부문에서 한국 문학을 이끌어갈 새로운 시니어 작가들이 탄생했습니다.당선자 여러분들의 '등단'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앞으로 왕성한 활동으로 한국 문학계의 새로운 별이 되시길 진심으로 기원드립니다.아울러 앞으로 계속될 글로벌경제신문 시니어 신춘문예의 전통을 계속 이어 주실 것을 당부드립니다.이번에 당선의 영광을 차지한 시, 단편소설, 수필 부문의 당선작은 2020년 1월 12일(화) 글로벌경제신문 온라인에 게재됩니다. ○ 대상 : 전금례 ‘물푸레나무 서식
글로벌경제신문이 주최하고 송우무역, 글로리서울안과, 글로리사랑나눔문화재단이 후원하는 ‘제2회 글로리 시니어 신춘문예’ 공모가 진행 중입니다. 글로리 시니어 신춘문예 공모’는 문학을 즐기고 사랑하는 50세 이상 시니어 문학인을 대상으로 시와 소설, 수필, 동화 등 4개 부문에서 시니어 신인 작가 등단 기회를 제공해 한국 문학의 새로운 활력소를 불어 넣기 위해 마련되었습니다.100세 시대! 사회 각 분야에서 청년 못지 않은 열정과 노력으로 활동하고 있는 시니어들은 미래 한국 사회를 지탱할 든든한 버팀목이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줄 유능
문) 당선 소감을 말씀해 주세요. 글을 쓸 때면 행복하면서도 마음 한쪽에서는 또 다른 허전함이 밀려 왔습니다그럴 때마다 마음을 다지고 또 다지면서 언어들을 가슴에 차곡차곡 채워봅니다삶이 힘겨울 때 저에게 글은 마중물 같은 존재입니다. 지친 나의 에너지를 한 줄기 마중물이 되어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안온한 숨결이었습니다 황량한 바람을 등지고 한 자 한 자 써 내려갔던 시간들이아슴아슴 떠오릅니다심장 깊숙이 갈마드는 시린 겨울바람의 갈래에서 한 줌의 햇살이 눈부시게 비치는 느낌으로 당선 소식을 들었습니다 시린 손을 따뜻하게 잡아 주셔서 행복합니다이렇게 소중하고 큰 상을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
문) 당선 소감은 어떻습니까?‘설마’하며 열어본 온라인 신문 기사에서 대상에 제 작품 명이 실린 것을 발견하고 가슴이 쿵쾅거렸습니다. 도무지 믿기지 않아서 딸애한테 전화를 걸어 확인해보라고 했습니다. 딸애가 축하드린다고 하더군요. 부족한 제 시를 좋게 읽어주시고 계속 열심히 쓰라고 응원해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제 가족과 제 오랜 대학동기인 선희, 광자, 명자에게도 고맙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돌이켜 생각해봐도 제 실력보다는 좋은 운이 작용한 결과입니다. 문) 글을 쓰게된 동기는 어떤 것이었나요?제가 그림을 좀 그리는데 제 그림을 좋아하는 큰 딸애는 제 말에 조리가 없다며 자주 핀잔을 주곤 했
문) 당선 소감은 어떻습니까?앞으로는 섬진강에 화사한 복사꽃이 더욱 곱게 필 것 같습니다. 평소 꾸준히 글을 쓰기 보다 마음이 내키고 영감을 받을때 즉흥적으로 쓰는 편이어서 더욱 큰 감동을 받게 됩니다. 글로벌 시니어 신춘문예로 이 영광을 누리게 됨을 감사드립니다.?문) 글을 쓰게된 동기는 어떤 것이었나요?40년 봉직한 직장을 퇴임하고 여유를 갖게 되니 글이 할 수 있는 일을 보고 느낄 기회가 많았습니다. 그런 시간에 오랫동안 쌓아왔던 것들을 조금씩 풀어내보자 생각했습니다. ?문) 본인 작품에 영향을 준 작가 또는 작품은 어떤 것인가요?비교적 감성이 풍부한 편이어서 많은 이들에게서 감동을 받습니다. 그 중에서도 순천
경자년 새해 빛나고 아름다운 선물을 받아 너무 기쁩니다. 하늘나라로 가신 어머니의 투병 생활을 함께 하면서 쌓이는 말들을 풀어내기 위해 시를 썼습니다.그때는 시를 토하듯이 썼던 것 같습니다.저에게는 비움의 방법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눈물이 흐를 만큼 아프면눈물이 흐를 만큼 외로우면눈물이 흐를 만큼 아름다우면 시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더 많이 시를 사랑하겠습니다.기꺼이 눈물을 흘리겠습니다.가슴을 데우는 시인이 되고 싶습니다서먹하지 않은 시를 쓰겠습니다. 꾸준한 제자가 되지 못해 송구한 배재대 강희안 교수님과저에게 기꺼이 벗이 되어 준 꿈과 두레박 동인들과 시인이라고 엄지를 추켜세우는 가족과
새해의 첫 월요일 ,당선 소식을 받고 베란다에 나가서 멍하게 밖을 보았습니다 ㆍ까치가 먹이를 찾느라 마른 땅을 쪼아대고 있었습니다ㆍ어쩌면 저도 그 무엇이 고플때마다 매일 조금씩 시를 쪼아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태백은 내 유년의 소중한 풍경이지만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집에서 가장 멀리 가는 기차를 타고 그곳을 떠나왔습니다ㆍ의지할 곳 없던 소녀를 품어 준 미아동 가파르고 좁은 계단을 올라가면 거기 작은방 2개와 다락방이 있던 그 집의 가족 아닌 가족이 되었고 ,식구들이 일터로 학교로 나가고 나면 랭보의 시집 < 지옥에서 보낸 한 철> 을 읽으며 우울의 늪을 지나왔습니다 아버지와 유독 닮은 것이 싫어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