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노년의 문지방에 들어섰군요.”“나는 아냐! 아직 한창인데 …”“그래도 소용없어요. 사회가 당신을 노인으로 판정해 버렸잖아요.”곧 대중교통의 경로석이 사라질 것이다. 죄다 노인인데 누구를 위해 특별석을 마련할까. 노인들이 집단의 기억이자 그 기억을 계승하는 지속성의 상징으로서 특권을 누렸던 시대는 지나갔다. 노인의 사회적 역할은 줄어들고 관심대상에서도 노인이 멀어지고 있다. 이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국가는 굶어죽지 않을 정도의 몇 가지 방책과 보장으로 ‘노인 떼어놓기’를 하고 있다. 계속 일을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나
겨울 바다에서 파도는 웃음이다. 먼바다에서 뭍으로까지 달려왔다는 완주(完走)의 안도감 때문일까, 파도의 포말은 웃음을 터트리는 행위고 표현 방식이다. 미소가 아니라 폭소라며, 거친 삶에서 길러진 바다의 영혼이 비로소 자기 고백을 하는 것이다. 힘겹게 살아온 삶일수록 사라질 때는 웃음이어야 한다는 파도의 철학이 춤을 춘다. 웃음으로 춤을 춘다. 그런 파도를 따뜻하게 감싸 안는 정동진 앞바다의 해안선. 그 파도를 지켜보며 사람들도 웃는다. 그 웃음을 보려고 이곳까지 찾아온 사람들의 얼굴에도 번지는 웃음이여, 웃음이여. 하얀 치아를 드러
2023년 마지막 날에 일론 머스크가 자신이 소유한 소셜미디어 X에 한반도의 야경 이미지를 공유했다. 머스크는 ‘낮과 밤의 차이’라는 제목과 함께 ‘미친 발상(Crazy Idea) : 한 나라를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로 반씩 나누고 70년 후에 어떻게 됐는지 확인해 보자’는 글을 달았다.번영하는 남한과 피폐한 북한의 모습이 극렬하게 대비되는 이 이미지는 한 나라가 어떤 가치체계를 채택하느냐에 따라 어떤 운명을 맞게 되는지를 가르쳐 준다. 나라뿐 아니라 개인도 그러하고 기업도 마찬가지다. 챗GPT를 공개해 세상을 놀라게 했던 오픈AI사(
“악법도 법이다.”가 소크라테스 명언이라는 단초는 일제강점기 경성제국대학 법학부 교수 오다카 도모오(尾高朝雄)가 제공했다. 그는 1937년에 펴낸 『법철학(法哲學)』에서 실정법 사상과 소크라테스를 연결하고 있다. 오다카는 이 책에서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든 것은 실정법을 존중하였기 때문이며, 악법도 법이므로 이를 지켜야 한다.”고 썼다. 이어서 그는 “소크라테스가 국가의 실정법에 복종하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따라야 할 시민의 의무”라고 설파했다.그런데 오다카는 일본의 한국 지배를 정당화하고 징병에 찬성하는 논문을 발표한 ‘반민주적
안재성이 지은 『박헌영 평전(실천문학사, 2009)』을 계속하여 읽는다. 박헌영의 아내 주세죽의 임신이 확인된 것은 1928년 초였다. 박헌영의 정신도 차츰 맑아지고 있었다. 그는 간혹 주세죽과 함께 외출을 하기도 하였다. 한번은 「조선일보」 사회부를 찾아갔는데, 좌익 기자 집단해고 때 함께 해고되었던 우익 기자들은 어느새 복직하여 근무하고 있었다. 주세죽은 사회부장으로 복귀한 유광렬에게 심정을 털어놓았다. “집안에만 있으니 답답해 하는 것 같아 데리고 나왔어요. 정신병이라 마음을 놓을 수 없어요”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동안 박헌영
더불어민주당이 아주 시끄럽다. 22대 총선 후보자 공천과정이 이재명 당 대표의 사천(私薦)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해서다. 공정성이 확립되지 않은 공천은 유권자 기만이고 대의민주정치에 대한 반역이라 할 수밖에 없다. 당 대표와 공관위원장을 비롯, 공천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이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자신들이 국민을 속이면 국민은 외면으로 갚는다. 국민에게 외면당하는 정치인의 처지가 어떤 것일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괜히 하는 말이 아니다. 권노갑 상임고문·정대철 대한민국헌정회장·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강창
몸과 마음. 그것은 나의 것이지 내가 아니다. 그런데 그것이 나로 행세한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인가? 인류 역사에서 제일의 물음은 바로 존재에 대한 물음이 아닐까? 변하지 않는 근원의 나, 본성에 대해 묻는 것이야말로 깨달음에 다가가는 길이다. 묻고 또 물어보면 물음의 깊이만큼이나 삶이 깊어질 것이다.“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스토아 철학자인 세네카는 “집에서 가장 만나보기 어려운 사람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라고 했다. ‘나’라는 존재는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잘 볼 수 없는 것 같다. 늘 보니까 자세히 보
“악법도 법이다.(惡法도 法이다. 라틴어: Dura lex, sed lex, 영어: It is harsh, but it is the law.)”이 말은 성인(聖人) 소크라테스(BC 470~399)가 독배를 마시면서 한 명언(名言)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는 명백한 허위사실이다. 소크라테스는 직접 책을 쓴 적이 없기 때문에 소크라테스의 말은 주로 그의 제자 플라톤(BC 427~347)이 전하고 있다. 그런데 소크라테스의 재판과 죽음을 다룬 플라톤의 책, 『소크라테스의 변론』 · 『크리톤』 · 『파이돈』 어디를 샅샅이 뒤져보아도 “악
온갖 물의를 빚으며 법무부 장관 자리에서 35일을 버티다가 여론의 질타에 떠밀려 사퇴했던 조국 씨 이야기다. 그는 지난 12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의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고 양산 평산마을에 가서 문재인 전 대통령을 만났다. “다른 방법이 없다면 창당을 통해서라도 윤석열 정권 심판과 총선 승리에 헌신하겠다”며 정치참여의 의지를 문 전 대통령에게 밝혔다.“더불어민주당 안에서 함께 정치를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것이 어려운 상황이라면 신당을 창당하는 불가피성을 이해한다.”문 전 대표는 그렇게 ‘조국 신당’의 창당을 인가했다.
하늘이, 구름이, 노을이 예쁜 날이다. 콧바람 투어나 해야겠다고 집을 나선다. 버스에서 젊은이가 벌떡 일어나 자리를 양보해준다. “이놈 봐라, 내가 노인으로 보이나?” 언짢은 기분이 든다. 그런데 만약 안 비켜주고 딴 짓하고 있으면 “이 버르장머리 없는 놈” 이런 괘씸한 생각이 들 게 분명하다. 나이 들면 이렇게 몽니를 부리게 되는가보다.나이대접! 받아야 할까, 말아야 할까? “어르신, 연세도 있으신데 …”라는 말을 들으면 듣는 어른 참 서운하다. 황혼도 서러운데 나이까지 들먹이니. 요즘 부쩍 “내 나이 황혼이지만, 연세가 아니고
이제 소크라테스 죽음의 마지막 장면이다.「“이승에서 저승으로 가는 내 여정에 행운이 함께하게 하기를 신들에게 기도하오니, 부디 내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소크라테스 선생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뒤 잔을 입에 대고 태연하고 침착하게 잔을 비우셨어요. 우리는 대부분 그런대로 눈물을 참을 수 있었지만, 그분께서 독약을 마시는 것을, 그리고 마신 것을 보자 더는 눈물을 억누를 수가 없었어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억수 같이 내려 얼굴을 감싸고 비통하게 울었어요. 그분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런 동반자를 잃은 나 자신의 불운을 위해서. 한편
대통령과 TV방송의 100분에 걸친 국정 대담에서 가장 세인의 관심을 끌었던 건 부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가방’이다. 날이 밝으면 아마도 일제히 이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설명에 대해 온갖 평가가 쏟아지고 요란한 공방이 벌어질 것이다. 다른 많은 이슈들은 뒷전으로 밀려나 버릴 것이고... 물론 아닐 수도 있다. 경제 외교 안보 등 국정 현안에 대한 관심도가 더 높게 나타날 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는 게 안정되고 선진화된 사회의 모습일 것이다. 그런데 이 기대는 빗나갈 확률이 매우 높다. 선동은 설득보다 힘이 세다. 이 경우라고 예외
중학교 미술교사로 평생을 살아온 아버지. 어느 덧 정년퇴임의 시간이 다가왔다. 문득 아버지의 퇴임 이후가 궁금했던 아들은 질문을 하게 된다.“아버지, 앞으로 뭐 하실 거예요?”“다 계획이 있지.”놀랍게도 아버지의 계획은 파리의 몽마르트 언덕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 아버지는 오랫동안 꿔온 꿈을 실현하기 위해 파리로 향하게 되는데 … 한 점 한 점 그림이 쌓이고, 몽마르트 언덕의 한 명의 화가가 된 아버지.영화 끝 무렵 잠깐 전시회장이 보인다. 그리고 이어지는 아버지의 말.“나는 또 꿈이 있지!” 2020년 초에 나온 다큐영화 〈몽마르
1. 1971년 참 오밀조밀한 골목 많았다. 밤새 잠자고 있던 골목길을 아침밥 익어가는 소리가 깨웠다. 그 소리 사방으로 흩어지면 참새 떼도 아침을 먹고 있었는지 부지런히 허공을 쪼아댔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밥 좀 주이소, 밥 좀 주이소, 하는 동네 거지들의 외침도 대문을 두드리며 떠돌아다녔고, 사람들은 밥 한술 떠서 그들의 밥통을 채워주었다. 골목길은 그렇게 허기를 지우고 있었지만, 공동변소로 이어지는 길에는 배설을 마음대로 하지 못한 사람들의 욕망이 줄을 서는 일이 많았다.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근처에 사는 벙어리 아저씨가 가끔
무소속 윤관석 의원(작년 5월 3일 더불어민주당 탈당)이 31일 ‘민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을 주도한 혐의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2021년 5월 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시 후보였던 송영길 전 대표를 당선시키기 위해 당 소속 국회의원 20명에게 각 300만원씩 든 돈 봉투를 나눠줬다. 경선 캠프 관계자에게 요구해 받은 돈이었다. 같이 기소된 송 전 대표의 측근 강래구 전 한국수자원공사 상임감사위원도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이 칼럼의 주된 관심사는 아니다.윤 의원은 그달 30일 국회 본회의에 보고된 체포동의안에
파이돈과 에케크라테스와의 대담은 이제 막바지에 이른다. 그러면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장면을 살펴보자. 「소크라테스 선생께서는 일어서서 목욕하러 다른 방으로 가셨어요. 그러자 크리톤께서 우리더러 기다리라고 하더니 그분을 따라가셨지요.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논의된 것에 관해 서로 대화하고 검토하다가, 우리에게 얼마나 큰 재앙이 닥쳤는지에 대하여 주고받았어요. 우리는 말 그대로 아버지를 여의고 여생을 고아로 살아야 하는 것처럼 느꼈으니까요. 그 사이 그분께서 목욕을 끝내자, 그분의 아이들이 그분 곁으로 안내되었어요. 그분에게는 어린 아들 두
젊었을 때는 일에 쫓겨서 ‘나’를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하루 종일 일해도 여전히 일은 밀려 있었으니까. ‘바쁘다’를 입에 달고 살다보니 하루에 단 10분도 생각에 잠길 시간이 없었다. 그러나 은퇴 후에는 그렇게 바빠야 할 일이 없다. 이제 삶이 부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고, 나를 위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이제 당신은 무엇을 하고 싶은가? 수십 년 동안 다녔던 직장, 그리고 거기서 했던 일들이 과연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이었던가? 일해서 돈 벌고, 결혼해서 자식 낳아 키우고. 이렇게 주어진 삶을 성실하게 살았지만, 그것이 인
2009년 8월 28일에 안재성은 남조선노동당(남로당) 당수이자 북한 외상을 한 『박헌영 평전(실천문학사)』을 발간했다. 안재성은 『박헌영 평전』에서 박헌영(朴憲永 1900∼1956)과 호찌민(1890∼1969)이 같이 찍은 사진 한 장을 책 앞부분에 수록하고, ‘1929년 모스크바 국제 레닌학교 재학 중, 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부터 김단야, 박헌영, 양명이 나란히 앉아 있다. 뒷줄 맨 왼쪽은 베트남의 호찌민, 두 번째 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주세죽이다’라는 설명을 붙여 놓았다. (박헌영 평전, p 5) 이어서 안재성은 『박헌영
1월 4일에 국민권익위원회는 92개 지방의회(광역의회 17개소, 기초 시 의회 75개소)를 대상으로 '2023년도 지방의회 종합청렴도 평가' 결과를 발표했다.청렴도 평가는 지역 주민 2만명, 직무 관련 공직자 7천명, 단체 및 전문가 7천명등 총 3만4천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한 결과인 '청렴체감도(80점)', 각급 의회가 1년간 추진한 부패 방지 노력 결과 평가인 '청렴 노력도(20점)'의 합산에서 부패사건 발생 현황(10점)을 감점한 결과로 이뤄졌다. 평가 결과는 지방의회의 부패가 유독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종합청렴도 평가
더불어민주당의 치졸한 행태가 어디까지 가고서야 멈출까? 정치를 하자는 건지, 당 대표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험구 경연을 하려는 건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명색이 원내 제1정당이다. 그런데 말본새는 저잣거리 시비꾼 수준에도 훨씬 못 미치는 저질이다. 이런 것도 정당의 정치 활동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면 정당 자체의 존재 의의에 대해 새삼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민주당의 언어가 한심하다는 뜻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23일 오후 충남의 서천특화시장 화재현장을 찾았다. 거기서 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