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경제신문

2019.06.20(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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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곤 前 국민일보 주필
머지않아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가 설치될 모양이다. 집권 더불어민주당이,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을 배제하면서까지 다른 야당들과 함께 이를 패스트트랙에 올리기로 했으니까! 청와대에서 이를 주도해 온 조국 민정수석은 지난 2월 공수처를 신설하라는 국민청원에 대해 답변하는 형식으로 그 필요성을 역설했다.

“검찰은 힘이 세다. 그러나 제대로 된 견제는 없다.” 그래서 공수처가 설치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조 수석은 또 “검찰 개혁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청와대를 포함한 정부의 고위공직자, 법관, 검사, 고위 경찰공무원 등 소위 말하는 ‘힘 있는 자’들을 눈치 보지 않고 공정하게 수사할 수 있는 독립적 기관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보탰다.

대통령 친인척 기소권은 배제

그렇다고 하자. 문제는 여야 4당이 신속처리안건 지정에 합의한 공수처 설치법안이 조 수석의 명분과 아귀가 맞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 법안에 따르면 검사·판사·경무관급 이상 경찰관 등에 대해서는 공수처가 수사권, 영장청구권, 기소권을 갖는다. 그러나 대통령 친인척·국회의원 등을 상대로는 기소권을 행사할 수가 없다.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은 23일 이에 대해 “(직접 듣지는 않았지만 문 대통령이) 매우 안타까워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 수석, 강 수석의 이런 언급들은 아마도 지난 2월 15일 국정원·검찰·경찰 개혁 전략회의에서 문 대통령이 한 말을 흉내 낸 것으로 들린다.

문 대통령은 그날 이렇게 말했다. “자꾸 공수처를 검찰 개혁의 하나로 이야기하는데, 원래 공수처는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최고위층 권력자들에 대한 특별사정기관이다. 첫 대상은 대통령과 그 친인척, 특수관계자, 그다음에 청와대 권력자, 국회의원이고 판검사도 대상으로 포함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해서 마련한 법안은 문 대통령이 말한 그 ‘첫 대상’에 주눅 든 인상이다. 사실 제도가 없고 기관이 없어 고위공직자비리를 다스리지 못한 것은 아니다. 상설특검법(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이 지난 2014년 6월 시행에 들어갔다. 다만 작동하지 않을 뿐이다. 같은 날 시행된 청와대 특별감찰관법이라는 것도 있다. 그러나 감찰관이 단 한 번 임명됐을 뿐 아예 잊힌 제도가 되어 버렸다.

있는 제도는 사문화 시키면서

전직 두 대통령을 기소해서 엄청난 중형을 선고받게 한 검찰(및 특검)이다. 박근혜 정부 때는 현직 대통령을 상대로 수사에 착수할 정도의 괴력을 과시했다. 도대체 몇 명인지도 모를 두 정부의 요인들을 줄줄이 감옥으로 보낼 만큼의 실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1990년대에도 두 전직 대통령을 법정에 세워 중형 선고를 이끌어낸 바 있다. 그 힘으로도 부족해서 더 특별한 사정 조직을 갖춰야 한다면 누가 이를 곧이듣겠는가.

그래서 말인데, 혹 강력한 검찰권을 대통령 직속 하에 두고 싶다는 뜻은 아닌가? 법무장관-검찰총장 관할 하에 있는 지금의 검찰 조직보다 대통령이 직접 지휘할 수 있는 사정기관을 두고 싶어서? 설마 대한민국에서 높다는 사람 모두를 손바닥 위에 놓고 컨트롤 하고 싶다는 생각이야 가졌을까만 이런저런 정황이 그런 의심을 자극하는 것도 사실이다.

공수처, 특검, 특별감찰관 같은 게 아니라도 대통령의 말 한 마디면 고위공직자 비리는 척결될 수 있다. “지금 사회적으로 이런 저런 의혹을 받고 있는 나의 친인척이나 측근들에 대해 즉각 조사에 착수하라!” 이 때문이 아니라 혹 법원 검찰 경찰 등의 권력이 너무 비대해져서 이를 견제하기 위해 그런다면 이런 옥상가옥(屋上架屋) 식의 대응은 포기할 일이다. 청와대가 스스로 권력을 자랑하지 않으면 다른 기관들이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는가.
어쨌든 이 말은 해두고 싶다. 오늘 내 손에 쥐어있는 칼자루는 머지않아 다른 사람의 손으로 넘어간다. 이게 세상사의 이치다.

정치학 박사 / 前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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