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경제신문

2019.06.20(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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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일본을 방문했을 때 만난 렌고(連合 ·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 간부가 수구와 진보란 용어에 대해 우리나라에서 통용되는 개념과 반대되는 내용으로 설명해 무릎을 친 적이 있다. 그는 “일본 노동계에선 매년 똑같이 고율의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좌파노동단체 전노련( 전국노동조합연합)을 수구세력으로 부른다”고 말했다.

전노련은 기업의 실적이 좋든 나쁘든, 지불능력이 있든 없든 매년 고율의 임금인상을 요구해 수구딱지가 붙었다는 것이다. 1970년대 이른바 ‘춘투’(春鬪)라고 불리는 노동자 대투쟁을 벌인 지 40년이 넘었는 데도 불구, 회사를 투쟁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노동단체를 수구라고 부르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기술혁신과 산업구조 재편 등에 맞춰 상생의 노동운동을 펼쳐온 온건노선의 렌고는 오히려 진보 대접(?)을 받는다고 그는 자랑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진보와 수구라는 개념이 다소 혼란스럽게 사용된다. 좋은 이미지의 진보라는 용어는 좌파가 독차지하고 낡고 뒤처져 보이는 보수 또는 수구는 우파의 전유물 처럼 돼 버렸다. 민주노총은 일자리창출이나 기업의 경쟁력 강화보다 구시대적 이념에 사로잡혀 투쟁을 일삼고 있는데도 진보 취급을 받는다. 이들은 아직도 마르크스의 계급투쟁설을 받들고 있고 노동계급과 자본계급을 대립과 착취의 관계로 본다. 변화를 거부하면서 집단이기주의에 매몰된 민주노총을 진보라고 부르는 것이 맞는가. 오히려 일본의 노동계에서처럼 수구세력이란 호칭 제격일 것이다.

진보를 좌파 전유물로 인식하는 것은 잘못

우파와 좌파를 칼로 두부모 자르듯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진보라는 개념은 사전적 의미로 볼 때 변화,발전 등 긍정적 이미지와 경제적 평등의 확대를 추구하는 의미로도 받아 들여진다. 반면 보수는 국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제도의 변화를 거부하고 기존의 관습과 제도들을 보존하려는 세력을 지칭한다.

하지만 보수로 분류되는 자유주의는 진보적 개념도 함께 섞여 있다. 자유주의란 말은 정치적으로 진보인데 반해 경제적으로는 보수로 구분된다. 정치적 자유주의는 만인평등, 종교‧사상‧언론의 자유, 집회와 결사의 자유 등을 포괄한다. 따라서 정치적 자유주의는 분명 진보적이다. 반면 경제적 자유주의는 보수로 분류된다.

자유로운 경제활동에 따른 사유재산의 보장과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강조하고 정부에 의한 적극적인 재분배정책에 반대한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좌파들이 신자유주의에 대해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나쁜 개념으로 공격하면서 자유주의의 가치를 함께 추락시킨 측면이 있다.

진보에 거품이 껴 있고 좌파에 독선과 무책임이 있다고 지적하는 학자들이 많다. 박효종 전 서울대 윤리교육과 교수는 “한국 좌파는 지독한 ‘인지부조화’(認知不調和) 현상에 직면하고 있다. 자기 자녀는 미국으로 유학 보내면서도 미국산 쇠고기나 한·미 FTA 등 미국적인 모든 것이 증오의 대상이다. 자기 자녀가 전교조 교사 밑에서 배우는 것은 꺼리면서도 전교조에 대한 지지는 강렬하다. 북한에 가서 살기는 싫어하면서도 친북주의자나 종북주의자로 처신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변화거부하는 노동세력은 '수구좌파'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며 사회의 암적인 존재로 작용하는 수구세력은 더이상 진보가 아니다. 진보적 가치는 사회정의, 공동체, 평등, 복지 등 사회의 변화를 추동할 수 있는 발전적 개념이지 퇴행적 개념은 아니다. 우리도 이제 진보와 보수란 호칭을 행동에 걸맞게 부를 때가 온 것 같다. 예컨대 노동개혁을 거부하는 노동세력이라면 ‘수구 좌파’란 명칭이 어울릴 것이다. 정치적으로 사회주의식 평등을 지향하지만 경제적으로는 변화를 거부하는 수구적 사고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좌파이면서 경제적으로 기존 틀을 깨는 개혁적 시장경제를 중시한다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표현했던 것처럼 ‘좌파 신자유주의자’나 ‘진보 좌파’가 맞을 것이다. 경제적으로 분배보다 기업의 혁신성장을 중시하고 차별을 인정하는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세력이라면 ‘진보 우파’란 명칭이 적합할 것 같다.

1970년대 중국의 덩샤오핑(鄧小平)은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黑猫白猫)론을 주장하여 중국의 경제발전을 이끌었다. 흑묘백묘론은 진보든 보수든,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상관없이 중국 인민을 잘 살게 하면 그것이 최고라는 의미이다. 중국에서 변화를 거부하고 평등을 중시하는 공산주의는 수구 취급을 받고 시장경제를 중시하는 자본주의 세력은 진보로 평가받는다고 한다. 경제학박사/한국좋은일자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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