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경제신문

2019.06.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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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곤 前 국민일보 주필
대통령이 말을 많이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대통령도 사람인 이상 잘못 말할 수가 있다. 부지불식간에 감정을 쏟아낼 경우도 없지 않다. 그런데 한 번 대통령의 입에서 나간 말은 정정이 안 된다. 국가 권력구조상 대통령은 최 정점이다. 그의 말을 고쳐줄 수 있는 사람이, 적어도 정권 안에서는 없다.

더 큰 위험은 대통령의 말이 정부 여당 주요 구성원들 인식·의사의 획일화를 유도한다는 점에 있다. 정권 측의 유력자 혹은 실세라는 사람들치고 대통령 생각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봐야 한다. 힘을 가진 사람들, 그 집단이 인식·이해·판단에서 다양성을 발휘할 수 없는 상황이 바로 독재화 현상이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5·18 기념식 발언 일부는 바람직하지 못했다. 그는 “독재자의 후예가 아니라면 5·18을 다르게 볼 수 없다”고 단언했다. ‘후예’라는 표현도 아주 부적절했다. 생물학적 의미에서든 정신 혹은 정서적 의미에서든 그건 옳은 표현이 아니다. 그러니까 DNA는 바뀌지 않는다는 인식을 깔고 하는 말이라고 하겠는데, 그렇다면 “문 대통령은 어떤 사람의 후예인가”라는 반문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그런 말까지는 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21일 인천 자유공원 맥아더 동상 앞 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진짜 독재자 후예는 김정은이라고 말해 달라”고 주문했다. “진짜 독재자 후예에게 말 한마디 못하니까 여기서 지금 대변인 짓을 하지 않나”라는 말까지 했다. ‘짓’이라는 표현을 싸고 논란이 일고 있기도 하지만 어쨌든 ‘독재자의 후예’라고 지목된 측으로서의 반발·반문은 잘못이라 할 수 없다.

청와대는 유감을 표명하고 말았으면 좋을 것을 그예 또 반박을 했다. “이 같은 발언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 인터넷 신문의 기사인데, ‘대변인의 한숨’이란 말이 왜 끼어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의도성 있는 표현임은 틀림없어 보인다. 어쨌거나, 이 기사가 전하는 고 대변인의 말은 이렇게 이어진다. “연일 정치에 대한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발언, 국민을 편 가르는 발언들이 난무하고 있다. 결국 하나의 막말은 또 다른 막말을 낳고 있는 상황이다.” ‘막말’을 낳은 ‘막말’은 누구의 것이었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말은 그 사람의 품격을 나타낸다고 한다. 그 말로 갈음하겠다”고 했는데 대통령을 포함해서 한 말인지 황 대표만을 겨냥한 말인지가 분명찮다.

이럴 때는 꼭 거드는 이들이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도 그 중 한 사람이다. 그는 22일, 한국당 황 대표에 대해 ”총리와 대통령 권한대행을 지내신 분이 국민들을 걱정하게 하는 발언은 어제까지만 하고 내일부터는 안 하셨으면 한다“고 경고했다. 꼭 한 달 전인 지난달 22일, 당시 황 대표의 ‘김정은 대변인’ 관련 발언에 대해서 “제1 야당의 발언이 도를 넘는다. 정치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니다. 다시 한 번 그런 말을 하면 용납하지 않겠다”고 을러댔었다.

한국당 쪽에서는 당연히 황 대표를 거드는 언급들이 나오고 있다. “‘남로당의 후예가 아니라면 천안함 폭침을 다르게 볼 수 없다’고 되돌려줘야 한다”(이주영 국회 부의장)는 게 그 예다. 한국당의 경우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내빈들과 악수를 하며 가다가 황 대표만 건너뜀으로써 공식·비공식으로 배제‧패싱 당했다는 감정까지 겹쳐 많이 격앙된 분위기다.

이래저래 의정 복원은 당분간 어렵게 됐다. 민주당은 의원총회에서 한국당이 국회 복귀 조건으로 요구한 ‘패스트트랙 지정 사과 표명 및 국회선진화법 위반 혐의 고소 고발 취하’에 대해 ‘수용불가’ 입장을 확인했다. 그렇다고 한국당이 숙이고 들어갈 리도 없다. 좋은 말로써 싸움은 말리고 화해는 붙여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감정싸움을 부채질했으니…. 한국정치의 선진화, 도대체 언제쯤에나 가능할까?

정치학 박사 / 前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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