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경제신문

5주년창간
2019.12.15(일)
center
이진곤 前 국민일보 주필
“한국의 보수세력은 주한미군을 인계철선으로 이용하고 싶어했다. (진정한) 친구는 자신의 친구를 인계철선으로 사용하지 않는 법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6년 9월 13일 미국 방문 중에 미 의회 지도자들을 접견한 자리에서 한 말로 중앙일보가 그 닷새 후인 18일 보도했다. 이에 대해 당시 청와대 측은 ‘보수세력’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고 밝혔었다.

노 전 대통령은 그해 12월 21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제50차 상임위원회 연설을 통해 다시 이 문제를 꺼냈다. “미국 엉댕이 뒤에서 숨어가지고 ‘형님, 형님, 형님 빽만 믿겠습니다.’ 이게 자주 국가 국민들의 안보의식일 수 있겠습니까? 인계철선이라는 말 자체가 염치없지 않습니까? 남의 나라 군대를 가지고 왜 우리 안보를 위해서 인계철선으로 써야 됩니까? 피를 흘려도 우리가 흘려야지요.”

노 전 대통령의 인계철선 시비

그럴듯한 말이긴 했는데 한·미군사동맹에 대한 인식이 심하게 왜곡돼 있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원래 유사시 양국 공동방어의 목적으로 성립됐다. 미국 신세를 안 질 것이었으면 애초에 동맹조약을 맺을 까닭이 없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집요한 노력으로 동맹은 성사됐지만 유사시 자동개입조항을 넣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그걸 보완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 미 야전군의 한국 전선 주둔이었다. 미군이 요소 요소를 지키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대남 군사행동을 한다면 이는 우리뿐만 아니라 미국에 대한 공격이 된다. 주한미군이 자동적으로 전쟁에 개입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른바 ‘인계철선’이라는 인식과 별칭이 생겼다.

그걸 노 전 대통령은 우리가 음모적으로 미군을 이용하는 것처럼 미국 의회 지도자들에게 말했다. 얼핏들으면 우리가 동맹이라는 명분으로 미군을 사지로 내몰 궁리만 해왔다는 뜻이 된다. 당시 전시작전통제권 회수 문제가 양국의 현안이 되어 있을 때였다.

노 전 대통령은 미국에 대해 전작권 반환을 강하게 희망했다. 미 의회 의원들에게 고해바치듯 인계철선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달리 있었던 게 아니다. “전작권을 우리에게 돌려준다면 주한미군이 인계철선이 될 필요가 없다.” 그런 의미로 들어주기를 바라서 한 말이었을 것이다.

엄청난 ‘빽’을 왜 걷어차려 하나

그가 애쓴 결과로 한·미 간엔 ‘2012년 4월 12일 전작권 반환’ 합의가 이뤄졌다. 그게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무기한 연장되다시피 했다가 문재인 대통령이 다시 강력한 의지를 과시함으로써 (늦어도) 2022년까지로 목표연도가 정해졌다.

그런데 이 전작권 또한 하나의 인계철선이다. 전시작전통제권을 주한미군 사령관이 행사한다면 북한의 남침은 곧 주한미군사령관에 대한 공격이 된다. 그걸 우리가 한사코 싫다고 한다. ‘자주국방’의 명분으로! 노 전 대통령의 표현대로라면 미국은 엄청난 ‘빽’인데 왜 그걸 내치지 못해 이처럼 안달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전작권 환수 후에도 한·미연합군사령부와 같은 체제가 유지되지만 그 사령관은 미군 장성에서 한국군 장성으로 바뀐다. 이로써 인계철선은 완전하고 확실하게 제거되는 셈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한·미연합사가 지금과 같거나 유사한 형태로 존속하고 그 본부가 용산기지에 계속 머물러 있다면 그나마도 위안 삼을 수 있겠는데 한·미 군 당국이 지난 3일 이를 평택 미군기지로 옮긴다는 결정을 내렸다. 실낱같은 끈 하나까지 다 끊어지고 말게 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 김대중 정부의 권력핵심이었던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5일 “(이는) 한수(한강) 이북의 안보를 포기한다는 신호”라며 “재고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미연합사는 우리 안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미군 편의를 위해 존재하면 안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옳은 판단이다. 그런데 현 정부는 왜 효과 만점의 인계철선 싹 걷어내고, 든든한 빽도 차버리려 하는지 답답하고 어이없다.

정치학 박사 / 前 국민일보 주필
<저작권자 © 글로벌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5주년 축하 초연결시대, 이동통신 3사 생존전략 기획/디지털 금융시대 앞당긴다 한국경제, 글로벌경쟁력 점검 긴급진단/ 위기의 K바이오
이진곤의 '그게 말이지요'
최재식의 '놀고 쉬고 일하고'
권오용의 '행복한 경영'이야기
윤기설 칼럼
김세곤의 세계문화기행
총수 열전
'안녕'한 사회, 자원봉사가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