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경제신문

5주년창간
2019.11.14(목)
문재인 대통령은 정치든 경제든 선악(善惡) 2분법으로 재단하는 통치행태를 보인다.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할 것이다. 과정은 공정할 것이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게 나라냐’는 질문에서 시작해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비전도 내놨다. 그러니까 ‘과거 정권은 불의했다. 이를 선(善)의 군단이 무너뜨리고 정의를 세웠다’는 의미가 된다.

임금부담 완화 호소 외면하면서

이런 인식으로 무장한 문 대통령과 청와대 정부 요인들은 노동자, 서민, 영세상공인의 보호자로 나섰다. 가진 자들의 부패 부도덕 횡포 등을 쓸어냄으로써 ‘1대 99’의 사회가 마침내 평등과 공정과 정의의 땅으로 바뀔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전파했다. 특히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견인차역할을 했던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현 중국 대사)은 청년들의 ‘분노’를 부추겼다. 그가 작년 11월 퇴임 때까지 18개월간의 청와대 근무 중에 늘린 재산이 11억 원이었다. 그러고서도 이들의 저소득층, 서민, 노동자 사랑은 여전하다.

최저임금위원회가 19일 제3차 전원회의를 열고 본격적인 최저임금 협상에 들어갔다. 노동자 측이 제시한 인상률은 19.7%다. 지난 2년간 27.3%를 올렸는데 이를 보태면 3년 간 인상폭은 47%에 이른다. 망할 때 망하더라도 월급은 올리라는 것인가?

중소기업계는 “소득대비 최저임금 수준이 OECD 국가 중 4위임에도 불구하고 노동생산성은 OECD 29위로 평균에도 미치지 못 한다”고 주장한다. 이래도 안 망한다면 그게 이상할 일이다. 특히 한국의 경제성장을 견인했던 제조업이 지금 존망의 경계선상에 있다. 이쪽으로 넘어지면 망한다. 그렇다고 저쪽으로 넘어지면 살아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담장 걷기’ 시간이 길어질 뿐이다.

‘제조업 엑소더스’ 현상은 당연하다. 지난 1분기 중 국내기업의 해외 직접투자액이 141억 1000만 달러였다.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1980년 이후 최고치다. 제조업이 이 가운데 41%(57억 9000만 달러)를 차지했다. 밖에서라도 살 길을 찾아야 하겠다는 절박한 생존투쟁의 한 양상이다. 고임금‧저생산성‧폭력적 노조투쟁을 무슨 수로 견디겠는가.

다투어 해외로 옮겨가는 기업들

고용동향에서도 제조업의 위축세는 뚜렷하다. 5월 제조업 취업자 수가 전달에 비해 7만3000명 줄었다. 감소세는 14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취업자 수가 23만6000명에 이르렀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지만 초단기 근로자가 기록적으로 늘어나는 대신 3040 일자리는 1년 넘게 감소해왔다. “노동의 질이 좋아진 건 분명하지만 고용량 증가는 과거보다 못해졌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10일 KBS와의 대담에서 그렇게 말했다. 도대체 누가 대통령에게 이처럼 엉뚱한 정보를 주입시키는가.

‘노동자의 보호자’를 자처하던 문 대통령이 이번엔 갑자기 제조업의 기수로 표정을 바꿨다. 그는 19일 경기 안산 스마트제조센터에서 열린 ‘제조업 르네상스 비전 선포식’에서 “제조업 부흥이 곧 경제부흥이다. 제조업 4강(强)과 함께 국민소득 4만 달러 시대를 열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참 별스런 일이다. ‘제조업 4강’은 낙후 업종으로 가능해 지는 게 아니다. 최첨단 미래형 제품을 개발하고 그것으로 세계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자금력, 생산 및 R&D 역량을 제대로 갖춘 대기업들이 앞장서지 않으면 안 된다. 이들과 함께 유능한 중견 및 중소기업들이 협력 체인을 형성해서 나아갈 때 한국 제조업의 새 지평이 열린다.

그런데 대기업에 대해 한이 맺힌 듯한 정권 실세들, 이들에 떠받들려 노동자들의 대부 이미지를 즐기는 인상을 주는 문 대통령이 제조업의 르네상스를 열겠다고 하는 말을 믿어야 할지 흘려듣고 말아야 할지 헷갈린다. 설마 중소기업들과 유력 노동조합들을 앞세워 제조업 4강 시대를 열겠다는 것은 아닐 텐데, 어떤 묘책이 따로 있는지 궁금하다. 요술 같은 비책이 있는 걸까?

정치학 박사 / 前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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