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경제신문

2019.09.19(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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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내에서 서남쪽으로 30㎞ 정도 떨어진 페테르고프를 갔다. 페테르고프는 ‘표트르의 정원’이라는 뜻이다. 1714년에 표드르 대제는 핀란드만을 마주 보는 이곳에 여름 궁전을 짓기 시작했다.

여름궁전은 분수공원을 경계로 상부정원과 하부정원으로 나뉘는데, 특히 138개의 물줄기를 뿜어내는 분수공원은 정말 환상적이다.

오전 10시에 도착하여 그런지 분수공원은 아직 물을 뿜지 않고 있다.

정원 여기저기를 산책하면서 11시까지 기다렸다. 마치 러시아 황족이 된 것처럼 역대 러시아 황제들이 여름을 지냈다는 숙소와 핀란드만을 바라보고, 고즈넉한 숲길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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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궁전 숙소. 사진=김세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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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만 근처. 사진=김세곤

11시가 가까워지자 분수공원 주변에 분수가 가동되는 것을 보기 위하여 사람들이 많이 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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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공원 전경. 사진=김세곤

11시 정각에 러시아 국가(國歌)가 울러 퍼지고 분수들이 물줄기를 뿜어냈다. 특히 가운데에 있는 삼손이 사자 아가리를 찢는 모습의 삼손분수물기둥은 장관(壯觀)이다. 하늘로 솟아오름이 기가 막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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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뿜는 삼손분수. 사진=김세곤

삼손분수는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가 1709년 6월27일 우크라이나의 폴타바 전투에서 스웨덴의 카를 12세를 이긴 것을 기념하여 1735년에 만들었다. 삼손은 러시아, 사자는 스웨덴을 상징한다.

1706년에 스웨덴의 젊은 사자 카를 12세는 폴란드로 진군했다. 스웨덴군은 잇달아 승전보를 올렸다. 이러자 폴란드의 아우구스트 2세는 왕위에서 물러나고 스웨덴에 항복했다.

1707년 12월에 카를 12세는 4만5000명의 병력을 이끌고 모스크바로 진군했다. 첫 전투에서 카를 12세는 표트르 대제를 물리치며 러시아군을 멀리 퇴각시켰다.

그러나 이 퇴각은 청야작전(淸野作戰)을 동반한 퇴각이었다. 스웨덴군은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내리는 눈보라를 뚫고 하루 종일 행군하며 불타 버린 농가와 곡식창고만을 만나는 나날을 거듭해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보급마저 끊겼다. 스웨덴 보급부대가 러시아군의 공격을 받은 것이다.

별 수 없이 카를 12세는1708년 10월에 우크라이나로 방향을 돌렸다. 우크라이나에는 러시아 반군 지도자 이반 마제파와 5000명의 카자크 인들이 합류했기 때문이었다. 스웨덴 군은 남쪽의 초원에서 병력과 물자를 보충하려 했으나, 이번에도 표트르는 청야작전으로 스웨덴군을 고통 속에 몰아넣었다. 1708년 겨울은 스웨덴 군에게 혹독하였다. 수많은 병사가 얼어 죽거나 동상에 걸렸다.

하지만 카를 12세는 절대 기죽지 않았다. 1709년 봄이 되자 카를 12세는 남은 병력 2만 명으로 우크라이나의 요충지 폴타바 성을 포위했다. 하지만 성을 공격한지 3개월이 지나도 성은 함락되지 않았고, 6월에 표트르가 이끄는 5만 명의 러시아군이 도착했다.

카를 12세는 병력 2만 명 중 6000명은 폴타바 성 포위에 남겨두고 1만4000명을 이끌고 표트르와 싸우려고 나섰다. 그런데 6월17일에 카를 12세는 저격병의 총에 다리를 맞아 일어나지 못하였고 계속 고열에 시달렸다. 별 수 없이 그는 칼 구스타브 렌셸드와 아담 레벤하우푸트 장군에게 지휘권을 넘겨 주었다.

6월27일 늦저녁에 스웨덴군은 기습공격을 했다. 스웨덴군의 기습은 성공해 러시아군은 후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표트르는 기병을 투입해 시간을 끌었고, 그 사이에 전군을 후퇴시켜 야전 진지로 들어갔다.

이윽고 레벤하우프트가 지휘하는 스웨덴군은 러시아군 진지를 공격했으나 실패했다. 치명적인 것은 렌셸드의 보병 3000명이 맹렬한 포격을 받아 1000명 이상이 사상 당한 것이다.

표트르 대제는 즉각 반격을 명령했다. 러시아 보병은 스웨덴 보병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러시아 기병도 돌격하자 스웨덴 기병이 무너졌다. 이어서 러시아 기병은 스웨덴 보병을 공격했다. 카를 12세는 패배를 깨닫고 가까스로 1500명의 병력만 수습해서 오스만튀르크로 탈출했다. 승리는 표트르에게 돌아갔다.

러시아군은 스웨덴 군 수천 명의 포로로 잡았고. 이들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건설하는 인부로 동원되었다.

표트르 대제는 폴타바 전투에서 승리한 뒤 이렇게 외쳤다.
‘병사들이여, 이제 조국의 운명을 결정할 때가 왔다.”

시베리아의 곰 러시아가 1700년부터 시작된 북방의 사자 스웨덴과의 전쟁에서 승기(勝機)를 잡은 것이다.

여행칼럼니스트/호남역사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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