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경제신문

2019.08.23(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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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일본경제가 호황을 누렸을 때 미국이 자국의 재정과 무역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 정부에 꺼내든 카드는 엔화절상만이 아니었다. 미국은 1985년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과 함께 G5 재무장관회의를 열어 엔화절상을 내용으로 하는 플라자협약을 맺었다.

일본의 무역흑자를 줄여야 미국의 무역적자 및 재정적자 등 쌍둥이 적자가 감소하기 때문이다. 1달러당 235엔이던 엔화가치는 플라자협약 이후 1년 만에 120엔으로 두 배 가까이 치솟으면서 일본경제 ‘잃어버린 20년’의 서막을 올렸다.

그런데 미국은 무역적자 요인으로 엔화가치와 함께 일본의 장시간근로를 꼽았다. 일본 기업들이 레이버 덤핑(labor dumping)을 통해 세계시장의 돈을 긁어 모으고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일본 기업들은 실제로 장시간근로를 통해 신기술개발과 경쟁력있는 제품을 만들면서 엄청난 흑자를 냈다. 눈덩이 처럼 불어나는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 미국은 엔화절상과 함께 근로시간단축이란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일본 정부에 장시간근로를 선진국 수준으로 대폭 줄이라고 강력하게 압박을 가했다.

당시 일본 제조업의 1인당 연간 근로시간은 2300시간을 넘어 독일 프랑스보다 600시간 이상, 미국보다도 400시간 가량 길었다. 결국 당시 나카소네 정부는 미국의 압력에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다.

미국, 플라자협약때 일본에 “장시간근로” 깨라

일본 후생노동성은 1987년 주 48시간인 법정근로시간을 1997년까지 주40시간으로 줄이는 내용으로 노동기준법을 개정했다. 시행 초기 실근로시간이 많이 줄어 제조업의 경우 1987년 연 2300시간에서 1993년 2100시간으로 200시간 정도 감소했다.

그러나 제조업의 근로시간은 그 후 20년간 거의 줄지 않았다. 법정근로시간은 줄었지만 일본정부가 연장근로를 제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은 최근까지도 기업들이 연장근로를 원한다면 얼마든 가능하도록 허용했다. 지난해에 근로시간 개혁을 통해 월 100시간으로 연장근로를 제한했지만 우리나라의 월 52시간(주 12시간)에 비해선 두배나 많은 수준이다.

선진국 보다 늦게 산업생태계에 뛰어든 일본은 근로시간이 기업의 기술개발과 제품경쟁력의 원천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근로시간을 타이트하게 규제하지 않았다.

우리 정부도 최근 일본의 수출규제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의 일환으로 특별연장근로와 재량근로제를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근로시간을 늘리면 기업의 경쟁력이 높아진다고 여기는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선진국들 유연한 근로시간제도 운영

정부가 주 52시간 규제를 풀면 기업들이 근로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하면 경쟁력있는 소재 부품개발이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기업의 신기술은 업무집중과 끊임없는 연구개발에서 나온다.

따라서 기업들은 정해진 시간보다 일하고 싶을 때 일할 수 있는 유연한 근로시간제도가 필요하다.

일본 뿐 아니라 다른 많은 선진국들도 근로시간제도를 탄력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미국은 아예 근로시간 제한이 없고 관리직 전문직 행정직 등 화이트칼러들에 대해선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 ‘화이트칼라 이그젬션(white color exemption)’제도를 시행중이다.

싱가포르의 연장근로 한도는 1개월간 72시간이지만, 주문량이 많아 추가연장이 필요할 경우 노사간 합의를 통해 100시간 이상도 가능하다. 영국은 근로자와 합의할 경우 1주 48시간을 초과하는 근로가 가능하며 상한 규제는 없다.

일감이 많을 때 법정근로시간을 초과해 근무하는 대신 일감이 적을때는 근로시간을 줄여 근무하는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기간도 선진국들은 말그대로 탄력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단위기간은 적게는 6개월 많게는 3년까지 다양하다.

근로시간규제는 손발묶고 달리기경쟁하는 꼴

일본의 경우에도 1년단위로 운영중이다. 그런데 신기술을 개발하고 경쟁력을 높여야 할 우리나라의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허용기간은 3개월에 그친다. 노동계의 반대에 정치권의 명분이 합쳐진 결과다.

이런 경직적인 제도에 묶여 있는 우리 기업들이 일본 기업을 따라잡기는 쉽지 않다.

주당 68시간까지 허용되던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16시간이나 줄어든 것은 기업들에게는 엄청난 타격을 준다. 그럼에도 제대로 된 의견수렴이나 준비과정을 거치지 않은채 워라밸(일과 생활의 균형)이란 명분과 대중인기만을 의식해 실시한 것은 기업활동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기에 나온 정책이란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없어지는 4차산업혁명시대를 맞아 주 52시간제와 탄력적근로제 3개월 제한은 글로벌경제전쟁에서 손발을 묶고 달리기경쟁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규제중심의 근로시간단축은 기업의 생산활동을 가로막아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고용창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저녁이 있는 삶’을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는 문재인 정권에서 우리 기업들이 필요할때 장시간 근로를 할수 있는 일본 기업을 따라 잡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경쟁력을 갖춘 제품 만들기를 정부가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근로시간제도에 대한 과감한 개혁이 필요하다. 경제학박사/한국좋은일자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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