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경제신문

2019.09.18(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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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1709년 6월 폴타바 전투에서 스웨덴을 이긴 표트르 대제는 상트페테르부르크 건설에 박차를 가했다. 표트르는 1710년 8월에 칙령을 내려 러시아 각지로부터 4,720명의 장인(匠人)을 가족과 함께 데려와서 도시 건설에 투입시켰다.

표트르는 공사현장에서 인부들과 함께 일하며 도시를 건설했다. 그리하여 여름궁전이 지어졌고, 광장, 운하, 도로 등이 건설되어 도시의 모습이 제대로 갖추어졌다.

1712년에 표트르는 러시아 수도를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옮겼다. 그는 모스크바에 있는 귀족과 상인들에게 이주를 촉구했다.

네바 강 양쪽으로 화강암 깔리고

물 위엔 다리가 놓이고

강물에 떠 있는 섬들은

녹음 짙은 정원으로 뒤덮였다.

- 푸슈킨, 『청동기사』 (1833년)

한편, 표트르는 1711년부터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대동맥인 네프스키 대로 건설을 시작했는데 노브고로드로에서 해군성까지 잇는 네프스키 도로는 1713년에 준공되었다. 네프스키 대로 이름은 국민영웅 알렉산드르 네프스키에서 따왔다. 그는 1240년에 네바 강 전투에서 스웨덴을 격파한 러시아의 국민영웅이다. 마치 서울의 충무로가 구국의 영웅 이순신 장군의 시호를 명명(命名)한 도로인 것처럼.

1714년에 상트페테르부르크는 5만 가구가 사는 대도시로 성장했다. 러시아 최초로 경찰이 존재하고 소방대도 있고, 주요 지역에는 조명도 밝혀 나름 유럽 근대 도시의 면모를 띠었다.

이 젊은 도시의 기세에 옛 모스크바는 빛을 잃고 있었다.

북국의 꽃이자 기적인 이 청년도시는

어두운 숲속에서, 물 고인 늪지에서

화려하게 당당하게 일어섰다.

한때...... 핀란드의 어부가......

낡아빠진 어망을 던지던 곳,

지금은 생기를 되찾은 기슭에

으리으리한 궁전이며 탑들이 빽빽이 들어서고

세계 곳곳에서 선박들이

이 풍요로운 항구를 향해 속속 모여든다.

젊디젊은 왕비를 마주한 홀로 된 대비(大妃)마냥

이 젊은 수도 앞에서

늙은 모스크바는 광채를 잃어버렸다.

- 푸슈킨, 『청동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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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프스키 대로. 사진=김세곤

이윽고 표트르 대제는 1713년부터 1718년까지 5년간 해군성에서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수도원까지 4.5㎞의 네프스키 대로를 추가로 건설했다.

네프스키 수도원은 표트르 대제가 네프스키가 스웨덴을 물리친 지점에 1710년부터 1713년까지 3년 동안에 세운 수도원이다.

18세기 중반 에카테리나 여제 시절 이후 네프스키 대로는 마치 진열장처럼 명품거리가 되었다. 네프스키대로에는 백화점과 호텔, 고급 상점·카페·레스토랑들과 극장들로 장관을 이루었다.

네프스키 대로가 우리들에게 잘 알려진 것은 도스토예프스키(1821~1881)가 1866년에 쓴 '죄와 벌' 때문이다. 빈민가 센나야 거리에서 망상가 라스콜리니코프는 ‘벌레만도 못한’ 전당포 노파를 죽이는데 소설의 배경이 네프스키 도로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네프스키 대로에서 이루어지는 사람들의 만남, 이것 하나 만으로도 책 한권을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1828년에 관료가 되려는 꿈을 안고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온 우크라이나 출신 소설가 고골리(1809~1852)의 단편 '네프스키 대로'는 압권이다.

“네프스키대로만큼 멋있는 곳은 없다. 적어도 페테르부르그에서는 그렇다. 네프스키 대로는 곧 페테르부르그 인 것이다. 여기서는 모든 것이 빛이 발한다. ... 청년이나 장년의 신사에게도 이 거리는 매력으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여인, 오, 그들에겐 이 거리가 더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고골리 단편의 주인공 피스카료프가 네프스키 대로에서 뒤따라간 천사 같은 미녀는 사창가로 들어가는 창녀였으니.

네프스키 대로가 약간 비틀어진 것처럼 19세기 러시아는 부조리와 탐욕, 그리고 허위가 판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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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프스키 대로의 고풍스런 건물들. 사진=김세곤

한편 카잔 성당에서 네프스키 대로로 가는 길목에 쿠투조프(1745~1813) 장군의 동상이 있다. 그는 1812년에 모스크바를 침공한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군을 격퇴시킨 전쟁 영웅인데, 카잔 성당에는 그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또한 에르미타주 박물관에도 쿠투조프 초상화가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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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잔 성당 앞의 쿠투조프 장군 동상. 사진-김세곤


여행칼럼니스트/호남역사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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