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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의 세계문화기행] 예술과 혁명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12) 에르미타시 박물관(6)-루벤스 방

승인 2019-10-10 09:3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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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이제 루벤스 방(247번 방)으로 옮긴다. 벽에는 그림들이 많이 걸려 있다. 그런데 풍경화 앞에 사람들이 몰려 있다. 베네치아 화가 카날레토(1697~1768)가 그린 ‘프랑스 대사의 접견 1726~1730’ 이라는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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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1726년 11월 2일 이탈리아 베네치아 두칼레 광장 입구에서 열린 프랑스 대사 랑구에의 환영 행사를 그린 것이다. 배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는 두칼레 광장과 멀리 산타마리아 살루테 성당 그리고 항구 등 베네치아 중심가의 모습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놀라운 것은 두칼레 광장 발코니에서 서로 인사를 나누는 베네치아 주요 인사들까지 세밀히 묘사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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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날레토의 그림. 사진=김세곤


예술가의 날카로운 시선을 통해 역사 현장을 마치 사진처럼 정확하게 재현한 베네치아 화가 카날레토. 그의 그림은 사진이 없었던 시절에 세밀화로 각광을 받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루벤스(1577~1640)의 그림을 감상한다. 루벤스는 렘브란트와 함께 바로크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다. 두 사람의 차이는 루벤스는 인생을 가장 멋지고 화려하게 살았고, 렘브란트(1606~1669)는 초년엔 화려하다가 두 아내와 사별하고 파산까지 당하여 너무 초라하게 죽었다.

루벤스 방 벽에도 그림이 여러 장 걸려 있다. 아기 예수를 경배하는 그림, 알 수 없는 그리스 로마 신화 그림들이다. 주마간산으로 그림을 보면서 사진을 연거푸 찍었다. 귀국하여 루벤스 책을 보니 사진에 찍힌 그림들이 ‘땅과 물의 만남’과 ‘바쿠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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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과 물의 만남'(아래 왼편)과 '바쿠스'(아래 오른편)

그러면 ‘땅과 물의 만남’부터 감상해보자. 1618년에 그린 이 그림은 뿔을 들고 있는 땅의 여신 키벨레와 삼지창을 들고 있는 바다의 신 넵튠(그리스 신화는 포세이돈)이 서로 손을 잡고 있다. 항아리에는 물이 넘쳐흐르고, 두 아이가 헤엄치고 있다. 키벨레 위에는 승리의 여신 빅토리아가 월계관을 들고 있고, 물 아래에는 트리톤이 고동 나팔을 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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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과 물의 만남'. 사진=김세곤

그런데 이 그림에는 ‘스헬데와 안트베르펜’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1618년 무렵에 플랑드르 도시 안트베르펜은 스헬데 강을 통해 바다로 나가는 항로가 차단당했다. 루벤스는 이 그림을 통해 땅과 물이 만나듯이 항로가 열려 안트베르펜이 번영하길 기원하고 있다.

그러면 안트베르펜에 대하여 살펴보자. 1560년경 안트베르펜은 인구 10만 명의 국제적인 경제중심지였다. 독일 ·포르투갈 · 영국 · 이탈리아 출신의 외국 상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1517년에 루터로부터 시작된 종교개혁으로 안트베르펜은 루터파의 거점이 되었고, 1550년부터는 칼뱅주의가 교세를 확장하여 1560년경에는 겐트·발랑시엔 등 프랑드르 지방 전체로 확산되었다.

1566년에 칼뱅교도들은 안트베르펜에서 성상(聖像)을 파괴하고 성화(聖畵)를 불태웠다. 우상숭배라는 것이다. 이러자 프랑드르 지역을 통치하고 있는 스페인 왕 펠리페 2세(1527~1598)는 1567년에 강력 진압을 하였고 이후 공포정치가 시작되었다.

펠리페 2세의 공포정치는 열렬한 칼뱅주의자인 루벤스의 아버지 얀 루벤스에게 영향을 미쳤다. 재판관인 얀 루벤스는 1568년에 안트베르펜을 떠나 종교적 관용이 보장된 독일 쾰른으로 이사했다.

쾰른에서 얀 루벤스는 오라녜 공 빌렘 1세의 부인인 작센의 안나 공주의 법률 고문이 되었다. 그런데 얀 루벤스는 안나 공주의 연인이 되었고,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얀은 투옥되었다. 다행히도 아내 마리의 중재로 얀은 목숨을 건지게 되었고, 루벤스 가족은 독일 지겐에 유배되었다. 1574년에 지겐에서 형 필립이 태어났고 1577년에는 루벤스가 태어났다. 1587년에 아버지가 죽었다. 이러자 원래 가톨릭 신자인 어머니는 다시 안트베르펜으로 돌아왔다.

1588년에 신교를 옹호한 프랑드르 북부 지역 7개주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하지만 안트베르펜을 위시한 남부 플랑드르는 펠리페 2세에 의해 가톨릭 지역으로 자리 잡았다.

1600년 초부터 프랑드르 북부 7개주와 스페인 간에 종교전쟁이 일어났다. 이로 인해 안트베르펜은 몰락의 길을 걸었다. 바닷길이 봉쇄된 것이다.

여행칼럼니스트/호남역사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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