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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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25(금)

유족의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최대한 조용하고 차분하게 치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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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경 LG 명예회장. 사진=LG 제공
[글로벌경제신문 김봉수 기자]
상남(上南) 구자경(具滋暻) LG 명예회장이 14일 오전 10시경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4세.

장례는 고인과 유족들의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최대한 조용하고 차분하게 치르기로 했다.

이에 별도의 조문과 조화를 정중히 사양하기로 했고, 빈소와 발인 등 구체적인 장례 일정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구자경 명예회장은 구인회 LG 창업주의 장남으로, 1925년 경남 진주시 지수면에서 태어났다.

구 명예회장은 LG그룹 창업 초기이던 1950년 스물 다섯의 나이에 모기업인 락희화학공업주식회사에 입사해 명예회장으로 경영일선에서 은퇴할 때까지 45년간 기업 경영에 전념하며 원칙 중심의 합리적 경영으로 LG를 비약적으로 성장시키고 명예롭게 은퇴한 ‘참 경영인’이었다.

LG 창업주인 연암 구인회 회장이 62세를 일기로 1969년 12월 31일 타계함에 따라 구 명예회장은 45세가 되던 1970년 1월 9일 LG그룹의 2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공장에서 20년간 생산현장을 지키다 서울로 근무지가 바뀐 지 불과 1년 수 개월 만에 부친의 유고로 마음의 준비 없이 회장 자리에 오른 구 명예회장은 이후 두 차례의 석유파동과 나라 안팎의 어려운 경영환경을 극복하고, 화학·전자 산업 강국을 위한 도전과 21세기 선진 기업 경영을 위한 혁신의 시대를 펼쳤다.

특히 구 명예회장은 ‘기술입국(技術立國)’의 일념으로 화학과 전자 분야의 연구개발에 열정을 쏟아 70여 개의 연구소를 설립했으며, 수많은 국내 최초 기술과 제품을 개발해 LG의 도약과 우리나라의 산업 고도화를 이끌었다.

또 그는 과감하고 파격적인 경영 혁신을 추진해 자율경영체제 확립, 고객가치 경영 도입, 민간기업 최초의 기업공개, 한국기업 최초의 해외 현지공장 설립 등 기업 경영의 선진화를 주도한 혁신가였다.

구 명예회장이 25년 간 회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LG그룹은 매출 260억원에서 30조원대로 약 1150배 성장했고, 임직원 수도 2만명에서 10만명으로 증가했다. 주력사업인 화학과 전자 부문은 부품소재 사업까지 영역을 확대해 원천 기술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수직계열화를 이루며 지금과 같은 LG그룹의 모습을 갖출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었다.

구 명예회장은 70세이던 1995년 스스로 회장의 자리에서 물러나 임종을 맞을 때까지 자연인으로서 소탈한 삶을 보냈고, 인재 양성을 위한 공익활동에 헌신하는 열정으로 충만한 여생을 보냈다. 구 명예회장은 경영자로의 업적은 물론 은퇴 후의 삶까지 재계의 귀감으로 존경을 받아 왔다.

슬하에 장남 故 구본무 LG 회장을 비롯해 구훤미씨,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구본준 LG 고문, 구미정씨, 구본식 LT그룹 회장 등 4남 2녀를 두었다.(부인 故 하정임 여사는 지난 2008년 타계)

◇ 창업 초기부터 회장 취임 전까지 20년간 생산현장 지키며 LG의 비약적인 성장에 중추적 역할

구 명예회장은 LG그룹의 창업 초기부터 회사 운영에 합류해 부친인 구인회 창업회장을 도와 회사를 일궜다. 1970년 그룹 회장에 취임할 때까지 20년간 생산현장을 지킨 연유로 한국의 2세 경영인 가운데 구 명예회장만큼 현장을 잘 알고 기술을 잘 이해하는 기업인은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구 명예회장이 진주사범학교를 마치고 교직을 천직으로 생각하며 교사로 근무 중이던 1947년, 부친이 LG의 모기업인 락희화학공업사(現 LG화학)를 설립해 럭키크림 화장품 사업을 시작했는데, 사업이 날로 번창해 일손이 모자라자 구 명예회장은 낮에는 교사로, 밤에는 부친의 사업을 도우며 지냈다. 그러던 중 아예 회사에 들어와 사업을 도우라는 부친의 부름에 1950년 교편을 놓고 본격적으로 기업인으로의 길을 걷게 되었다.

구 명예회장은 럭키크림 생산을 직접 담당하면서 현장경험을 쌓기 시작했다. ‘이사’라는 직함에 어울리지 않게 손수 가마솥에 원료를 붓고 불을 지펴 크림을 만들고 박스에 일일이 제품을 넣어 포장해 판매현장에 들고 나가기도 했다.

밤에는 하루걸러 숙직을 하며 아침 5시 반이면 몰려오는 도매상들을 맞았고,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에 공장가동을 준비하는 등 현장에서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판자를 잇대어 벽을 만든 공장에서 숙직할 때면 판자벽 사이로 모래바람이 들어와 자고 나면 온 몸이 모래투성이였고, 겨울에는 그 틈으로 찬바람이 쏟아져 슬리핑백을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잠을 자야 했다. 잦은 모래바람에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허름한 야전점퍼에 기름을 묻히고 다니면 그 모습은 영락없는 현장 근로자였다.

배달 과정에서 뚜껑이 파손되는 일이 생기자 구 명예회장은 깨지지 않는 플라스틱 크림통 뚜껑 개발에도 참여하기도 했다. 당시 플라스틱에 관한 풍부한 지식과 정보가 없던 때라 집 뜰의 가마솥에서 베이클라이트나 요소수지 등의 원료를 녹이면서 실험에 열중했었다.

구 명예회장은 락희화학과 금성사의 부사장에 이르는 동안 부산의 범일동공장, 부전동공장, 연지동공장, 온천동공장 등 시설확장의 중심에 한결같이 서 있었다.

당시 구 명예회장은 설비를 점검하고 기계를 발주하는 등 공장 신·증축을 직접 해 내면서 화학·기계·전기 등에 관해 많은 지식과 경험을 습득하게 되었는데, 이는 후에 화학과 전자 사업을 발전시키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 시절 치약 튜브는 납 표면에 주석을 입히고 그 위에 인쇄를 했었는데, 생산이 뜻대로 되지 않자 구 명예회장은 과거 공장에서의 도금 경험과 주변 기술자들로부터 흘려 들은 단편적인 기술들을 모아 몇 차례 시행착오 끝에 냉간 압착 튜브 코팅기술을 개발하는데 성공하기도 했다.

락희화학에서의 플라스틱 가공 경험은 훗날 금성사의 성장에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구 명예회장은 플라스틱 가공에 필수적인 자체 금형 기술 확보와 인력 양성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는데, 이때 축적된 금형 역량을 바탕으로 라디오, 선풍기, 모터 등 당시로서는 높은 정밀도를 필요로 하는 전자제품의 금형 기술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

이처럼 구 명예회장은 국내최초의 플라스틱 생활용품, 비닐제품, 라디오, 선풍기, TV 등 새로운 화학과 전자 제품의 탄생과 호흡을 늘 같이 해 왔다.

흔히 경영수업이라고 하면 영업이나 기획, 해외지사에서 출발해 몇 년간 실무를 보다가 기획조정실장 등을 거쳐 경영자로 나가는 것이 익숙한 과정으로 여겨졌다.

이에 반해 구 명예회장은 십 수년 공장 생활을 하며 ‘공장 지킴이’로 불릴 만큼 현장 수련을 오래 했다. 사람들이 부친인 구인회 창업회장에게 “장남에게 너무한 거 아니냐”고 할 정도였으나, 창업회장은 “대장간에서는 하찮은 호미 한 자루 만드는 데도 수 없는 담금질로 무쇠를 단련한다. 고생을 모르는 사람은 칼날 없는 칼이나 다를 게 없다”며 현장 수업을 고집했다.

구 명예회장이 여느 2세 경영인과는 달리 창업과 성장을 함께 주도한 1.5세대 경영인으로 평가 받는 이유도 그가 부친의 창업 초기부터 합류해 20년간 생산현장을 도맡으며 사업을 정착시켜 공고히 성장시키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에 있다.

구자경 명예회장은 ‘강토소국 기술대국(疆土小國 技術大國)’의 신념으로 기술 연구개발에 승부를 걸어 우리나라 화학, 전자 산업의 중흥을 이끈 경영자였다. 그가 열정을 쏟은 연구개발의 결과로 축적된 기술력 덕분에 끊임없는 신제품 개발과 사업 확장이 가능했고, 오늘날 세계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화학, 전자 산업의 기틀이 마련될 수 있었다.

구 명예회장은 늘 “우리나라가 부강해지기 위해서는 뛰어난 기술자가 많이 나와야 한다”, “세계 최고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서 배우고, 거기에 우리의 지식과 지혜를 결합하여 철저하게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많은 이들이 사업보국(事業報國)을 외쳐댈 때에도 기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공염불에 그치게 된다며 ‘강토소국 기술대국’의 믿음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구 명예회장의 기술에 대한 믿음은 어린 시절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작물을 가꾸는 방식에 따라 열매의 크기와 수확량이 달라지는 것을 관찰하면서 과학과 기술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후 교직생활을 할 때도 구 명예회장은 제자들에게 늘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했었다.

그런 이유로 회장에 재임하던 25년 동안에도 ‘연구개발의 해’, ‘기술선진’, ‘연구개발 체제 강화’, ‘선진 수준 기술개발’ 등 표현은 달라도 해마다 빠뜨리지 않고 ‘기술’을 경영 지표로 내세웠다.

김봉수 기자 bsk@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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