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경제신문

5주년창간
2020.03.30(월)

쇼스타코비치, 오히스트라흐 등과 활동한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겸 교육자

center
살아있는 바이올린계의 전설로 통하는 세르게이 크라브첸코. 그는 현재 러시아 차이콥스키 국립 음악원 교수로 재직중이다. /사진=양윤모 기자
[정병휘 기자]
그를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무엇일까 한참의 고민 끝에 나온 결론은 ‘전설’이었다.

세르게이 크라브첸코!

클래식 음악 애호가라면 특히 바이올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21세기 바이올린계의 살아있는 전설 크라브첸코.
쇼스타코비치, 하차투리안, 다비드 오히스트라흐, 콘스탄틴 모스트라스, 레오니드 코간, 로스트로포비치 등 그 이름만 들어도 가슴 뛰는 클래식 음악의 전설들과 함께 연주하고 교류했던 그는 ‘살아 있는 클래식계의 전설’로 불리운다.

1947년 러시아 출생인 그는 모스크바 차이코프스키 국립음악원에서 바이올린계의 영원한 스승으로 평가받는 콘스탄틴 모스트라스로부터 바이올린을 배운다. 모스트라스 사후 역시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이자 교육자였던 레오니트 코간을 사사한 후 파가니니 국제 콩쿠르, 롱티보 국제콩쿠르 등 세계적인 콩쿠르에서 입상했고 현재는 모스크바 차이콥스키 국립음악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러시아에는 유독 훌륭한 연주자가 많았다. 하지만 현재 많은 연주자들이 세상을 떠났다. 크라브첸코는 살아 있는 연주자중에서도 연주 활동을 가장 많이 하는 연주자로 꼽힌다. 한국 나이로 74세. 결코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그의 연주는 변함이 없다. 오히려 사랑과 슬픔, 고뇌와 환희, 열정과 적막 같은 인생의 희노애락이 고스란히 담겼다. 인자하고 포근한 동네 할아버지 같은 친숙함과 음악을 넘어 세상의 일에 도(道) 통한 철학자의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하얀 눈썹 아래 푸른 눈동자는 반짝였고, 음악을 이야기하는 그의 목소리는 뜨거웠다.

지난 7일 아내와 함께 한국을 찾은 그를 강남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그의 음악과 살아온 인생 이야기가 궁금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문) 만나 뵙게 되어 기쁘다. 한국에는 자주 오시는 걸로 알고 있다. 이번 방한의 목적은 무엇인가?

올해가 한·러 수교 30주년이되는 해다. 작년 연말 러시아에서는 수교 30주년 기념 공연이 시작됐다. 한국와 러시아 두 국가에서 많은 연주회와 행사가 열리게 된다. 준비할 것도 있고 건강 검진 등 개인적인 일정도 포함되 있다.

문)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부분인데 악기는 어떤 것을 사용하나

1694년도 과르네리를 사용하고 있다.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오이스트라흐의 제자 중에 악자노바라는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가 있다.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분이다. 그분이 사용하던 악기다. 오히스트라흐도 사용했었고 지금은 내가 사용하고 있다.

문) 연주자에게 있어 악기는 어떤 의미인가?

연주자가 단숨에 좋은 악기를 가질 수는 없다. 처음 시작하면서 다음 악기는 어떤 악기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시간과 경험이 쌓여가며 점점 자신에게 맞는 악기를 찾게 된다.

특히, 수준 있는 바이올리니스트의 경우 자신과 맞지 않은 악기로 연주하게 되면 자기 실력을 다 보여주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훌륭한 악기가 필요한 순간이 바로 그때다. 좋은 악기를 가지고 있으면 자기가 표현하고 싶은 만큼의 표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악기뿐만 아니라 활도 매우 중요하다. 바이올린과 활 두개가 합해져 소리를 내기 때문이다.

내 경우를 조금 이야기 하자면 난 일생동안 바이올린 활을 모으고 있다. 예를 들어 베토벤 협주곡을 연주한다면 그 음악에 맞는 활을 사용하고 있다. 무겁거나 가벼운 소리를 내거나 맑은 소리를 내기 위해 곡에 따라 활을 골라서 쓰고 있다. 활도 음악에 좋은 역할을 한다.

학생들에게 좋은 악기가 없을 경우 활을 바꿔서 사용하면 표현하고 싶은 음악을 잘 표현할 수 있다고 알려주고 있다.

center
크라브첸코와 한국과의 인연은 1990년이었다. 그는 당시 한국 정부와 서울대의 초청으로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사진=양윤모 기자

문) 한국과는 많은 인연이 있다. 그 인연의 시작이 궁금하다.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1985년 선언된 구소련(러시아)의사회주의 개혁 이데올로기)이후 정치적으로 해재가 풀리고 한국과 러시아가 처음 추진 한 것이 문화교류였다.

서울대학교에서 모스크바 차이코프스키 국립 음대의 교수들을 한국에 초청한 것이 인연의 시작이었다. 1990년 8월달에 한국에 처음 방문했었다. 그 당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다린스키, 첼리스트로는 로스트로포비치의 제자인 나탈리아 샤캅스카야, 바이올리니스트로는 내가 방한을 했다.

당시 한국을 방문한 이 3명의 연주자들은 모두 러시아 차이코프스키 오케스트라의 악장을 맡고 있었다. 한국 정부가 그래서 초청한 것으로 알고 있다.

문) 러시아 악파의 전설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드 코간(Leonid Kogan,1924~82)의 제자로 그 매력적인 음색을 그대로 물려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코간과의 음악적 인연과 에피소드가 궁금하다.

모스크바 음악원에 입학하려고 우쿠라이나 오데사에서 고교 졸업 후 모스코바에 왔었다.

내가 처음 모스크바 음악원에 왔을 때 콘스탄틴 모스트라스라는 유명한 교수님이 계셨었다. 그 교수님 클라스에 들어가기 위해 모스크바에 왔던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배우고 싶다고 배울 수 있던 시대가 아니었다. 공산주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한국분들이 모스트라스에 대해 모르시는 분들이 많은데, 모스트라스가 어느 정도 유명하냐면 현재 가장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지휘자인 핀커스 주커만과 이자크 펄먼 등 20세기 후반 미국을 대표하는 바이올리니스트들의 대부로 인식되어온 줄리아드 음대 이반 갈라미안(1903~81)이 모스트라스의 첫 제자다.

이반 갈라미안이 모스트라스의 첫 번째 제자였다면 나는 그분의 마지막 제자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내가 입학하고 1년 후에 모스트라스 교수가 돌아가셨다.

이후 바리스 꾸지니코프 교수에게서 배웠는데 이분도 나이가 많아 돌아가시면서 오이스트라흐와 함께 당대를 풍미했던 레오니드 코간 교수에게 배우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모스크바에서 공부 후 당연히 우크라이나로 돌아갈 줄 알았다. 하지만 코간 교수의 요청과 지원으로 대학 강의를 하게 됐다. 그 이후 코간 교수님과 내가 음악원의 학생들을 나눠서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때 내 나이가 24세였다. 코간 교수님이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셨고 그 나이에 교수가 된 것은 전례가 없었던 일이기도 했다.

코간 교수님과의 에피소드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함께 생활을 같이 했기 때문이다.

한 가지를 말씀 드리자면 코간 교수님은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정말 훌륭한 연주자이자 교육자다.

하지만 코간 교수는 개인적으로 기계 만지는 것을 정말 좋아했고 또 잘했었다.

시계를 사면 전부 분해한 후 다시 조립했고, 자신의 벤츠 승용차도 분해 후 다시 조립 하곤 했었다.

한번은 코간 교수님이 하차투리안의 집에 가서 하차투리안이 작곡한 협주곡을 연주하는데 그집의 시계가 멈춰있었다. 코간이 하차투리안에게 시계가 왜 멈춰있냐고 물으니 하차투리안이 “저 시계가 17세기 시계인데 그 어떤 시계수리공도 못 고치고 그냥 갔다”고 했다. 코간 교수가 자신이 고쳐주겠다고 하고 가져가 1주일 만에 고쳐 왔다.. 하차투리안은 아르메니아 사람인데 콘서바토리에서 일하며 모스크바에 살고 있었다.

나 또한 하차투리안과 같이 일을 많이 했다. 쇼스타코비치, 코간, 나 이렇게도 같이 일을 많이 했다. 쇼스타코비치의 집에 가서 같이 연주도 하고 그의 별장에 같이 놀러도 가고 했었다.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와는 콰르텟으로 연주를 많이 했었다.

문) 쇼스타코비치와의 에피소드도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실 것 같다.

쇼스타코비치는 매우 개방적인 사람이었다. 성격이 아주 개방적이었다. 거리에서 만나는 누구와도 인사하고 악수를 했다. 오히려 자신이 먼저 다가가 말을 걸 정도의 열린 사람이었다.

한번은 자기가 작곡한 심포니 연주를 위해 리허설을 하러 온 적이 있었다. 그런데 학교근처에서 어떤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분들이 술 한잔 마시자고 했다고 한다. 3명이서 보드카를 나눠 마시느라 리허설에 조금 늦었다.(웃음) 그 정도로 쇼스타코비치는 열린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의 인생은 굉장히 어려웠다. 왜냐하면, 당시 러시아는 스탈린 체제하의 공산주의 시대였다. 스탈린이 어느 순간에는 그를 좋아했다가도 싫어지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감옥으로 보내는 등 작곡을 비롯한 음악활동을 못하게 했다. 쇼스타코비치, 프로코피에프 등은 그 시절 어려움을 가장 많이 격은 음악인들이다.

문) 공산주의 시절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러시아에서는 세계적인 음악인이 많이 나왔다. 그 이유가 있다면?

러시아는 음악과 예술에 대한 국가의 지원이 많다.

또 당시 스탈린이 클래식을 정말 좋아했다. 스탈린이 가장 좋아하고 사랑하는 연인이 모스크바 음악원의 교수였다. 그런 이유에서 인지 굉장히 후원을 많이 했다.

예를 들어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등 세계적인 콩쿠르가 열리면 러시아에서 우승을 해야만 한다면서 국가 차원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많이 했던 시절이었다.

가장 좋은 악기를 국가가 구입해서 학생들에게 지원을 해줬다. 많은 러시아 음악인들뿐만 아니라 나 역시 국가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았기 때문에 재능 있지만 어려운 젊은 음악인들을 많이 도와주려 하고 있다.

나야 말로 아무 것도 없이 모스크바에 왔었다. 음악을 하려는 내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 순간 국가가 악기와 선생님까지 붙여 주면서 지원을 해줬었다. 스탈린이 많은 예술가들을 탄압하기도 했지만 순수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을 통해 러시아 음악의 발전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현재는 국가의 지원이 많이 줄어들어 예전 만큼은 못하다.
center
크라브첸코는 문화예술에 대한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과 육성 필요성을 강조한다. /사진=양윤모 기자

문) 1947년생으로 한 세기 가까운 음악활동을 하고 계시다. 그만큼 많은 경험과 변화를 목격 하셨다. 음악적 경험과 연륜은 연주자에게 어떤 의미인가?

나에게 음악이란 직업이기도 하고 취미이기도 하다. 직업이라고만 생각했다면 힘들었을 텐데 음악이 좋았고 하루하루 발전해 가고 무대에서 음악을 표현 할 수 있는게 즐겁고 감사할뿐이다.

문) 얼마 전 오스트리아 비엔나 국립음대에 동양인 최초로 종신 교수가 된 바이올리니스트 정상희가 크라브첸코 교수를 가장 존경하는 바이올리니스트로 꼽았다.

매우 기쁘고 감사하다. 한국의 클래식 음악가의 수준은 이미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라와 있다. 앞으로도 재능있고 실력있는 한국의 연주자와 음악인이 세계무대에서 활동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문) 한국의 많은 학생들과 음악인들이 러시아에서 공부하고 있다.

한국 클래식의 시작은 1945년 해방 이후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짧은 기간 동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클래식 음악 수준을 하이 클라스로 끌어 올린 국가다.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 보더라도 한국의 성장은 놀라울 정도다. 그것은 한국인이 가진 힘과 에너지 때문이다.

유럽은 오랜 전통과 클래식에 대한 역사가 있고 자신들의 음악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계보로 본다면 한국은 무척 젊은 나라다. 수많은 국제 콩쿠르에서 한국인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때마다 나를 포함한 많은 심사위원들이 높은 수준으로 발전한 한국의 음악에 대해 아낌 없는 칭찬과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국인들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성취하는 근성이 있는 것 같다. 국제 음악계에서도 폭넓고 깊이 있게 성장하는 한국음악에 대한 관심이 높다. 다만, 최근 한국 클래식계가 조금 주춤하는 상황에 대해서는 다소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과거 세계 유수의 콩쿠르와 무대에서 한국인들이 넘쳐 났었는데 최근 들어 한국 클래식 음악계가 조금 다운된 느낌을 받고 있어 안타깝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학생들이 국제적으로 자신의 실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것은 한국 선생님들의 부단한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해외의 좋은 선생님들을 한국으로 초청해 자기 제자들을 보여주고 가르치며 굳이 해외에 나가지 않더라도 한국에서 배울 기회를 주고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문) 최근 러시아를 비롯한 세계 클래식 음악계의 변화와 특별한 이슈가 있다면?

가장 큰 문제는 클래식을 공부하는 학생들의 수가 줄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미국을 포함해서 전세계적으로 클래식 학생들의 수가 줄어들고 있다.

그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클래식이라는 것이 노력한 것에 비해 보상이 적기 때문이다. 클래식을 공부하려면 부모님과 가족, 지인들이 오랜 기간 돌봐 줘야 하고 투자도 해야 하는데 만족할 만한 결과가 없다 보니 그런 것 같다. 많은 학생들이 안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직업을 찾고 있다. 방송연예, 스포츠, 팝, IT분야, 비즈니스 등이 그것이다.

러시아의 경우 클래식 전공 학생들을 교육하고 배출된 학생들이 들어가서 일 할 수 있는 음악단체들이 많아 흔히 말하는 ‘자급자족’이 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러시아는 재능있는 음악인을 국가가 지원해 주는 시스템이 잘 구축되어 있다.

문화예술 분야는 정부와 국가 기관의 전폭적인 지원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몇 명의 탁월한 예술가를 제외하면 많은 문화예술인들은 예술활동과 경제적인 면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문) 연주자로서 뿐만 아니라 훌륭한 교육자로서도 유명하시다. 음악교육은 단순히 기술과 테크닉만을 교육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음악은 사람과 사람이 서로 교감하고 특별한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하며 기쁨과 슬픔을 비롯한 다양한 감정을 표현해 주기도 한다. 이런 감정을 표현할 훌륭한 연주자를 배출하기 위해서는 어떤 교육이 이뤄져야 할까? 음악교육의 특별한 방법이나 철학이 있으시다면?

내가 학생들을 위해 가장 노력하는 부분은 이 시대에 맞는 음악을 가르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전기가 있던 시대와 전기가 없던 시대, 즉, 바흐가 살았던 시대는 음악 템포가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 나는 시대에 맞는 음악을 만들기 위해 같은 곡이라도 스타일을 바꾸고 학생들에게 그것을 전수해 주고 있다.

또, 음악에 있어 중요한 부분은 작곡자가 원하는 의도를 얼마만큼 이해하느냐에 있기도 하다. 작곡자의 의도를 이해하고 연주하기 위해서는 어렸을 때부터 많은 준비와 노력을 해야만 한다.

특히, 바이올린은 기초교육이 무척 중요하다. 바이올린 활을 편안하게 써야하고 많은 것을 보고 느끼면서 상상력도 키워야 한다. 그래야 악보를 봤을 때 작곡자의 생각과 음악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생길 수 있다.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나는 이러한 나만의 교육 시스템을 남겨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내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가 생각난다. 당시 한국 학생들의 수업을 보면 정말 로봇처럼 연주를 하는 학생이 많았다. 테크닉과 기교는 좋았지만 음악을 대하는 열정과 작곡자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해 음악적으로 표현을 할 줄 모르는 것을 보고 너무 안타까웠다.

어릴 때부터 좋은 시스템으로 배워야 한다. 음악으로 빨강, 검정, 회색, 보라색의 소리를 낼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그리고 교육자들은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발굴해 줘야한다. “이건 안돼”라고 하면서 학생의 좋은 점을 꺽지 말아야 한다. “스승인 내 것 그대로 해”라고 하는 순간 그것은 음악이 아니다. 학생의 그 특징을 살려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굉장히 오래전 일이다. 한국 여학생 제자가 하루는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했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포르테(음악에서 ‘세게’)로만 한 번도 틀리지 않고 연주한 적이 있었다.

한국 학생들은 음악적 열정과 강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클래식 음악을 원하기도 하고 열정도 강하다.

바이올린의 경우 4개의 현으로 인생을 표현해야 한다. 항상 사랑을 할 수도 없고 화만 낼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음악도 처음부터 끝까지 아름답지만은 않다.

음악 안에서도 다른 소리와 성격을 보여줘야 한다.
center
그는 훌륭한 연주자가 되기 위해서는 끊임 없는 연습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사진=양윤모 기자

문) 유럽과 비교했을 때 한국의 클래식 문화와 음악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

확실히 다르다. 하지만 그 다름은 좋은 것이다. 각각의 국가는 고유한 역사와 문화, 그리고 예술을 가지고 있다. 내 경우에는 어떤 작곡가의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 작곡가의 나라로 여행을 가거나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역사 공부를 따로 하기도 한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찾아 그 나라의 문화와 예술 작품을 찾아보기도 한다.

기쁨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기쁨이 아니다. 예를 들어 축구 경기에서 이겼을때의 기쁨과 크리스마스때 예수님의 탄생을 조용하고 경건하게 기뻐하는 것은 다르다. 고요한 기쁨, 화려한 기쁨 등 어떤 기쁨이냐에 따라 다른 것이다. 나는 학생들에게도 이런 점을 강조한다.

<그는 한국 나이로 74세다. 차이콥스키 음악원에서는 그가 70세 되던 해 특별한 선물을 주기도 했다. 모차르트가 작곡한 바이올린 전곡을 녹음해 음악원에 영원히 남기게 했다. 그리고 올해 가을에는 베토벤 전곡을 학교에 남기기로 하고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현대 작곡가인 까르친스키가 작곡한 ‘예수님의 7개 말씀’이라는 곡을 초연한 것도 그다. 까르친스키가 그의 60세 생일 선물로 작곡해서 준 곡인데 현재 이 곡은 아름다운 멜로디와 깊이 있는 주제로 수 많은 광고와 드라마 등에 사용되고 있기도 하다.>

문) 한국과 러시아는 음악을 통한 우정을 오랜 시간 쌓아오고 있다. 특히, 올해는 한·러 수교 30주년이다. 차이콥스키, 라흐마니노프, 무소르그스키, 하차투리안 등의 곡은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클래식 곡으로 꼽히기도 하다. 한국인이 러시아 출신 작곡가들의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무엇이라 생각하나?

나는 마음속에 동화되는 비슷한 정서가 통하지 않나 생각한다.

두 민족이 가지고 있는 따뜻함 그리고 가슴과 심장을 흔드는 어떤 정서가 비슷하다고 본다. 두 나라 모두 전쟁을 많이 겪었고 아들과 부모 등 가족을 역사적 사건으로 잃은 경험이 많다.

한가지 예를 들자면 내가 유럽에서는 굉장히 열정적인 곡을 연주해야 큰 박수를 받는데, 한국에서는 조금 슬프고 애잔한 곡을 하면 더 좋아하시는 것 같다. 한국인들의 마음속에 흐르는 어떤 정서가 러시아와 비슷한 것 같다.

문) 교수님은 지위와 명성에 연연하지 않고 오직 연주와 교육에 집중하시는 걸로 정평이 나있다. 스스로 나태해지지 않고 음악에 몰입하기 위해서 갖춰야할 연주자의 자세는 어떤 것일까?

학생을 가르치는 일과 음악을 사랑하다보면 나태해질 시간이 없다. 그리고 연주자는 항상 연습 해야만 한다. 내 경우 만약 작년에 멘델스존 협주곡을 했다면 올해는 다른 멘델스존을 보여주기 위해 손가락 번호를 전부 바꾸기도 한다.

나 스스로 음악을 좋아하고 내 일을 사랑한다. ‘내가 만족 해 하는 나’를 계속 유지하고 교육자로서 학생들에게 많은 것을 주려면 항상 노력해야만 한다. 그래서 늘 시간이 부족하다.

<그는 항상 연구하고 노력하는 연주자로 정평이 나있다. 인터뷰 하는 동안 그의 음악과 철학적 깊이에 감동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는 평소 많은 독서량을 자랑한다. 인문, 예술, 철학책을 탐독하고 시간을 쪼개 박물관과 미술관을 찾는다. 역사와 문화적 이해를 넓히고 인간에 대해 끊임 없이 탐구한다.

그는 클래식 음악계의 철학가로도 통한다. 깊이 있는 사유와 스스로에 대한 성찰은 바이올린 현을 타고 관객의 심장을 울린다. 그가 켜는 음표 하나하나는 시가 되고 노래가 되어 기쁨과 슬픔을 전달한다. 온몸을 전율케하는 그의 음악은 이런 노력의 산물이다.

그의 아내는 한국 사람이다. 수 십년 그와 동행해온 음악적 친구이자 동반자다. 또한, 그가 만들어 내는 음악의 최초의 청중이자 혹독한 비평가이기도 하다.>
center
그는 한국 클래식 음악계의 전망을 밝게 봤다. 항상 노력하는 학생들과 이들을 지원해 주는 좋은 선생님들이 한국 클래식계를 든든하게 받쳐줄 것이라고 내다봤다./사진=양윤모 기자

문) 그 동안의 음악 인생에서 만족한 점과 아쉬운 점이 있을 것 같은데

음악가 중에는 다른 음악가와 자신을 비교하면서 현재의 위치를 스스로 평가절하 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저 사람보다 내가 더 잘했는데”라면서 말이다. 나와 함께 활동했던 연주자들 중에는 세계적으로 명성을 뽐낸 수 많은 연주자들이 있지만 나는 그들을 부러워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모든 사람에게는 자기에게 맞는 자신만의 자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조금 높던 낮던지 간에 신께서 이 만큼 주신 것에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는게 옳지 않겠나라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늘 감사하다.

문) 러시아를 포함해 전세계적으로도 현역에서 뛰는 몇 안되는 전설의 연주자이시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웃으며) 앞으로도 계속 연주하고, 학생 가르치고 또 가르치고 할 것이다. 제자들이 잘되면 기뻐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함께 슬픔을 나눌 것이다. 지금껏 살아온 것처럼 살 것이다.

나는 축구선수가 될 계획은 없다. 염려 마라 (웃음)

문) 한국 클래식 음악의 발전과 한 단계 성장을 위해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나는 한국의 클래식이 더욱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클래식과 항상 함께 하는 나라가 한국이고 한국인들이다. 현재 한국 클래식계가 다소 침체에 있기는 하지만 다시 좋아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세르게이 크라브첸코 교수는 오는 10월 10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한·러 수교 30주년 기념 연주회를 개최한다. 이미 작년 10월에는 한국의 연주단체가 러시아로 건너가 수교 기념 공연을 개최한 바 있다. 한국과 러시아에서는 올 한 해 수교를 기념해 크고 작은 연주회와 행사가 개최될 예정이다. 크라브첸코 교수는 10월 연주회에서 차이콥스키의 곡들로 관객들과 만난다. 올해는 차이콥스키 탄생 180주년 기념해이기도 하다.

정병휘 기자 icarus610@getnews.co.kr
<저작권자 © 글로벌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