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경제신문

5주년창간
2020.04.10(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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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곤 전(前) 국민일보 주필.


공직자나 연예인들은 카메라에 거의 무방비 상태다. 언제 어디서 렌즈에 포착될지 모른다. 늘 긴장하고 있을 수는 없다. 잠간 방심하는 사이에 카메라 렌즈는 사정없이 그 장면을 담고 만다.

오래전에 국회부의장 하던 분으로부터 들은 말이 생각난다. “국회의원만 없으면 장관 해볼 만하고, 기자 없으면 국회의원 해볼 만하다”는 우스개였다. 본회의 개회 시간인 오후 두시는 식곤증으로 졸음이 쏟아지는 시간이다. 아무리 눈에 힘을 줘도 깜빡하게 마련인데, 어김없이 다음날 신문에 그 사진이 실리니 기자 무서워 국회의원하기가 힘 든다는 푸념이었다.

대통령의 노란마스크 안쪽엔…

지금은 더하다. 굳이 기자일 필요도 없다. 온 사방에 카메라 천지다. 그 카메라들의 렌즈가 겨냥하지 못할 대상은 없다. 대통령도 피해가지는 못한다. 오히려 더 자주 적대적, 혹은 비판적 샷에 시달리곤 한다.

최근의 인상적이었던 사진은 ‘짜파구리 파티 와중의 파안대소’였다. 국민들이 코로나 바이러스 공포에 빠져들고 있던 시점에 청와대에선 너무 밝고 큰 웃음소리가 나왔다고 해서 말이 많았다.

그 후로 많이 조심했겠지만 또 걸렸다. 연합뉴스 카메라가 ‘문재인 대통령의 마스크’를 잡았다. 지난 19일 1차 비상경제회의에 참석했을 때였다. 마스크를 벗는 순간이었다. 노란색 마스크여서 눈길을 끌었는데 그 안쪽에 부착된 필터가 노출되고 말았다.

“청와대가 국민들에게는 면 마스크 써도 된다고 하면서 대통령이 솔선수범하듯 하더니 필터 부착된 면 마스크를 쓰다니!”

그래서 또 논란이 일었다. 대통령도 면 마스크를 쓴다는 사실을 부각시키려던 일이 역효과를 내고 만 것이다. 대통령의 건강은 그 지위와 직책상 당연히 더 세심하게 챙겨져야 한다. 그건 상식이다. 따라서 대통령이 더 좋은 마스크를 착용했다고 해서 문제될 게 전혀 없다. 문제는 청와대가 ‘보여주기’에 집착한 데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7일 처음으로 이 마스크를 하고 국무회의를 주재했었다. 대통령이 쓴 마스크가 유달리 커 보이는데다 노란색이어서 세간엔 ‘나노 마스크’ ‘세월호 마스크’라는 말이 돌았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곧바로 “오늘 대통령이 착용한 노란 마스크는 대전 마을공동체 활동가들이 만든 것으로 취약계층 등에 전달되는 것”이라고 밝히고 “이 마스크가 대통령에게 전달돼 (대통령이) 고마운 마음에 착용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윤재관 청와대 부대변인의 말이었는데, 그는 “나노섬유 필터 마스크가 아니다”라고 애써 부인했다. 그렇게 넘어가려 했겠지만 기본이 안 된 해명이었다. 오해받을 일을 했으면 솔직히 사과할 일이었는데 거짓말로 그걸 덮으려 한 것이다.

그 숱한 약속들은 다 어디 갔나

문 대통령이나 청와대‧여당은, 거의 습관적으로 식언‧허언을 거듭한다. 문 대통령의 경우, 취임사에서 온갖 좋은 약속은 다했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 ‘광화문 대통령 시대’ ‘국민과 수시 소통’ ‘퇴근길 시장에 들러 시민과 대화’ ‘광화문 광장에서 대토론회’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 최대한 분산’ ‘한미동맹 강화’ ‘야당과의 대화 정례화’ ‘전국적으로 고른 인재 등용’ ‘유능한 인재 삼고초려’…. 그런데 대통령 자신조차도 이를 기억하는 것 같지 않다.

여당은 또 어떤가. 비례정당은 절대로 안 만들겠다면서 야당을 격렬하게 비난했다. 그리고는 뒤돌아 앉아 더불어시민당을 만들어냈다. 다른 정당들과의 연합체이기 때문에 ‘비례민주당’이라고 할 수는 없다던가.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미래통합당이 미래한국당을 만들어 소수정당의 의석을 ‘도둑질’하려 한다고 되레 비난을 퍼부었다. 그 도둑질을 응징하기 위해 더불어시민당에 참여하기로 했다는 주장이다. 도둑을 응징하기 위해 도둑질을 하겠다? 견강부회로도 너무 지나치지 않은가.

청와대는, ‘필터 면 마스크’와 같은 부정직한 퍼포먼스 논란을 대수롭잖은 실수 정도로 여겨서는 안 된다. 위정자에게 국민을 속이는 것보다 더 나쁜 일은 없다. 국민에 대한 신의를 의도적으로 저버리면 국민도 자신들을 외면할 것임을 명념할 일이다.

자공(子貢)이 정사(政事: 나라를 다스리는 일)에 대해 물었다. “식량을 풍족하게 하고, 군비를 튼튼히 하며 인민이 위정자를 믿게 해야 한다.” 자공이 부득이 버려야 한다면 어느 것을 먼저 버려야 하느냐고 물었다.

공자는 만부득이할 땐 군비, 그래도 안 되면 식량까지는 버릴 수 있지만 신의는 절대로 버리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민무신불립(民無信不立), 그러니까 민과의 사이에 신의가 없으면 천지 사이에 몸 둘 곳이 없다”는 말이었다.(논어 안연편)

흔히들 흉내 내는 말이지만 그 뜻은 언제나 새롭다.

정치학 박사 / 前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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