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경제신문

창간6주년
2020.09.27(일)
center
이진곤 전(前) 국민일보 주필
25일은 김일성의 전면남침으로 빚어진 6.25참극 70주년 되는 날이다. 전쟁둥이가 만 70세가 되는 해이기도 하다. 그 때 성년에 이르렀던 분들이 돌아보면 참으로 참혹하고 암담한 시절이었다고 기억될 것이다. 어떻게 그 민족적 비극을 견뎌내어 오늘에 이를 수 있었는지 도무지 믿기지 않아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 사이에 동란의 실상과 의미는 굴절되고 뒤틀렸다. 김일성 집단의 만행이라는 사실이 어느 때부터인가 의도적으로 가려져 왔다. 진실은 그 세월을 살아냈던 사람들의 기억 속에만 남겨졌다.

태극문양 배지달기의 배경은?

유난히 북한 집단에 우호적이고 상대적으로 1948년 건국의 대한민국에 대해서는 적대감을 숨기지 않는 세력이 문재인 정권이다. 그런데도 유족의 품에 안기지 못한 전사자들을 기억하는 배지 달기를 공직자들이 실천하고 있다고 한다. 122609위를 기억하고 그 유해를 반드시 찾자는 뜻의 태극문양 배지다. ‘웬일로?’라면서도 위안을 느끼게 된다. “아무려면, 조국과 선열에 대한 고마움을 아주 잊기야 했겠느냐”해서다.

그런데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다. 그 때 전사하거나 부상당하신 분들, 실종되거나 포로가 되신 분들 모두를 기리고 기억하는 날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뿐만 아니라 이름도 모르는 먼 타국에 와서 자유의 땅을 지키다 희생당한 유엔군 장병에 대해서도 똑 같은 감사가 바쳐져야 옳다. 민간인으로서 사망하거나 다치거나 납북되어 가신 분들도 결코 잊어선 안 될 것이다.

게다가 배지안의 숫자가 ‘122609’로 한정된 데는 다른 뜻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문 정권이 내세우는 남북화해‧협력 사업의 성과 가운데 하나가 ‘유해 발굴 사업’이다. 그 점을 온 국민에게 상기시키고자 이런 기획을 한 인상이 없지 않다. 청와대가 특히 좋아하는 퍼포먼스의 일환으로!

북한은 여전히 독기서린 전체주의적 폭정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탈북민들이 저들의 왕조 제체와 김정은 독재의 실상을 알리는 전단을 날려 보낸다고 해서 폭력집단 다운 만행을 바로 며칠 전에 저질렀다. 개성공단 안에 설치됐던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해 버린 것이다.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이 앞에 나서서 표독스럽게 문재인 대통령과 한국 정부를 거듭 비난하고 조롱하고 모욕했다. 이어서 남북협력의 상징인 건물을 폭파해 버리는 무력 시위까지 벌였다. 청와대와 국가안보실 통일부 국방부 등도 이번에는 참을 수 없다는 듯 한마디씩 불쾌감을 표하고 나섰다(유감스럽게도 한국 정부의 대응은 이게 한계다). 북한의 다음 행동에 우리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의 우려와 관심이 집중됐다. 그 와중에 갑자기 김정은의 유화적 언급이 나왔다.

'우리도 성의 보이라'는 황당 훈수

그는 23일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예비회의를 주재하고 대남 군사행동 계획을 보류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폭파 쇼에 이어 문 대통령 사진에 담배꽁초와 머리카락 등을 뿌리고 대남전단 실물을 공개하던 기세와는 아주 딴 판이다. 비무장 지대에 다시 설치하던 대남방송용 스피커도 김정은의 말이 나간 후 해체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경제난이 한계에 이르렀다. 코로나도 기승을 부리고 있을 법하다. 돌파구 마련이 절실한 시기다. 말로만 위협해 봐야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온갖 잘난 척, 정의로운 척, 원칙적인 척 하며 평화의 사도처럼 처신머리 역겹게 하고 돌아가는 그 꼴불견”(문 대통령의 화법에 대한 김여정의 담화)이나 보게 될 뿐이다. 그래서 크게 내지른 다음 곧 솜씨 좋게 수습한다고 김정은이 나선 게 아닐까. 한반도 군사 정세 변화의 이니셔티브를 여전히 자신들이 쥐고 있다는 것을 대내외에 과시한 성과는 이미 거둔 셈이고….

이런 상황에서 참으로 황당한 처방을 내놓은 인사가 있다. 이젠 단국대 석좌교수가 된 박지원 전 의원이다. 그는 김정은의 군사행동 계획 보류에 대해 “격하게 환영한다”며 “우리도 성의를 보여야 한다”는 아부성 훈수를 했다.

배드캅(김여정) 굿캅(김정은) 식 역할 분담이든, 숨고르기이든 그 건 북한이 저지른 분탕질이고 그들 나름의 수습책이다. 거기에 왜 우리가 성의를 보여야 한다는 것인가. 북한은 본능으로만 움직이는 맹수가 아니다. 맹수는 조련할 수나 있다. 북한은 간교한 계산력을 가진 나름의 전략집단이다. 으르렁댄다고 먹이로 달래면 요구의 단위는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성의라니! 무슨 성의?

6‧25 70주년을 맞은 지금까지도 북한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의 처지가 참으로 한심하다. 호국영령들의 용기와 희생정신을 생각한다면 침략자들의 눈치를 보면서 비굴한 평화를 구걸해서는 안 된다. 국제사회를 지배하는 룰은 여전히 정글의 법칙이다.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려는 세력에 대해서는 더 큰 힘으로 맞설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 국민을 좌우로 나누어 이념전쟁을 시킬 생각은 접어두고 김정은 체제 버릇고치기, 진정한 평화구축 방안 찾기에 매진해야 할 때다. 아닌가?

정치학 박사 / 前 국민일보 주필
<저작권자 © 글로벌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