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경제신문

창간6주년
2020.08.11(화)
center
이진곤 전(前) 국민일보 주필.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자신의 지휘권 행사에 대한 응답을 재촉한데 대해 윤석열 검찰총장이 건의를 내놨으나 즉각 이를 거부했다. 시킨 대로(문언대로) 하지 않겠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1942년 2월 야마시타 도모유키 대장이 싱가포르를 지키던 아서 퍼시벌 장국에게 항복을 요구하며 했다는 말이 생각난다. 야마시타가 “예스카 노카(예스냐 노냐)”라고 몰아붙이자 퍼시벌은 항복하고 말았다.

잔말 말고 시키는 대로 해!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이 글자 한자 어긋남이 없이 명을 그대로 행해야 하는 그런 관계인 줄을 추 장관이 깨우쳐준 셈이다. 추 장관, 과거에 험한 말 잘 하기로 호가 났었는데, 그 때 기분으로 말을 했다면 이런 식이 되지 않았을까?

“웬 잔소리가 그리 많아. 시키는 대로 해! 내가 보낸 문건의 글자 어느 하나에도 어긋남이 없도록!”

검찰청은 법무부의 외청이다. 법무장관의 직할로 하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다. 장관은 정무직이다. 정치적 정파적 판단을 할 수가 있다. 그런데 검찰은 준사법기관이다. 정치적 독립, 정치적 중립이 특별히 요구되는 검찰의 사건 수사를 법무장관이 직접 지휘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법무부장관은 검찰사무의 최고 감독자로서 일반적으로 검사를 지휘ㆍ감독하고,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는 검찰총장만을 지휘ㆍ감독한다.”

검찰청법 제8조 규정이다. 장관은 수사 지휘를 하지 말라는 규정으로 보는 게 옳다. 다만 검찰총장이 위법하거나 부도덕하게 지휘할 우려가 있을 때 이에 제동을 걸라는 뜻으로 해석돼야 한다. 그게 아니라 총장만 통하면 구체적 사건도 언제든 지휘할 수가 있다고 한다면 굳이 이런 단서를 둘 필요가 없다.

검찰총장 임명절차를 법무장관의 경우보다 더 무겁게 한 까닭도 다르지 않다. 정무직은 대통령이 임명만 하면 된다. 그러나 사건 수사를 총괄할 검찰총장에겐 정치적 중립성이 보장돼야 한다. 그래서 검찰총장 추천위원회의 추천을 거쳐서야 비로소 임명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또 임면권자의 자의적 권한 행사를 방지하기 위해 임기를 2년으로 못박아두기까지 했다.

그런데 정무직인 장관이 사건수사와 관련해서 수사 방식, 수사 배당까지 지시를 했다. 그 정도가 아니라 (말하자면) 토씨 하나에 까지 어긋남이 없도록 따르라고 ‘명’했다. 이에 대해 윤 총장의 대답이 늦어지자 법무부 대변인을 통해 최후통첩을 보냈다.

장관의 도를 넘은 위세 과시

“공(公)과 사(私)는 함께 갈 수 없습니다. 정(正)과 사(邪)는 함께 갈 수 없습니다. 벌써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저도 검찰조직 구성원의 충정과 고충을 충분히 듣고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어느 누구도 형사사법 정의가 혼돈인 작금의 상황을 정상이라고 보지 않을 것입니다. (중략) 더 이상 옳지 않은 길로 돌아가서는 안 됩니다. 9일 오전 10시까지 하루 더 기다리겠습니다.”

이건 ‘법무부 알림’이 아니라 ‘법무장관의 협박’에 가깝다.
장관은 총장의 도덕교사가 아니다. 그런데 공과 사, 정과 사에 대해 가르치듯 말했다.

장관은 일방적 가치판단의 권한을 갖지 않았다. 그런데 자신의 판단만이 옳다고 주장했다.

장관은 상대를, 그것도 대한민국의 검찰총수에게 사적 이익을 추구하고 사악한 길을 가는 악당의 이미지를 씌웠다.

장관은 시한을 정해, 상대방의 항복을 강요했다. 이는 적장의 투항을 요구하는 장수의 화법이다. 야마시타 도모유키 판박이가 아닌가. 장관은 총장의 임명권자가 아닌 만큼 직접 해임을 할 수는 없다. 따라서 감찰을 하고 대통령에게 해임을 건의하는 핑계를 만들자는 것일까?

윤 총장은 추 장관이 최후통첩문에서 정한 시한 안에 ‘건의’ 형식의 답을 예의를 갖춰 했다. 그런데 추 장관은 즉각 거부해 버렸다. 윤 총장으로서는 더 물러설 여지가 없어졌다. 이제 와서 ‘예스’라고 하면 세상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선택지는 ‘노’밖에 없는데 이는 해임당할 각오를 전제로 한다.

이번엔 뭐가 옳은 길인지, 어떤 게 정이고 어떤 게 사인지를 윤 총장이 보여줄 차례다. 당당히 자신의 본분과 책무를 다하는 모습을 기대한다.

(그런데 의아한 일이 더 있다. 총장은 명을 어겼다고 장관으로부터 최후통첩까지 받아야 하는데 총장의 지휘를 ‘잘라먹을’ 정도가 아니라 아예 거부해버린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은 왜 건재할까? 뒤에 추 장관과 문 대통령이 있어서일까?)

정치학 박사 / 前 국민일보 주필
<저작권자 © 글로벌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