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경제신문

창간6주년
2020.10.2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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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환 원장.
문학을 즐겨 읽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선호하는 작가가 있을 터이다. 내 경우에는 소설가 윤흥길이 그렇다.

그의 작품들은 숙성된 된장 맛을 낸다. 사상의 장독대에서 오래도록 묵혀둔 글감의 깊은 맛은 읽은 이로 하여금 역사의 향기와 토속의 미각을 체감하게 한다. 화자들의 관계를 더딘 걸음으로 추적하지만 독자보다 앞서가지도 감성을 재촉하지도 않는다. 그러다보면 읽은 이들은 스스로 자각하는 힘을 키운다. 스스로가 갖는 꼰대 식 권위 말고 타인이 부여해 주는 권위를 가치 있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긴 장마의 시기에 윤흥길의 글들을 고즈넉이 읽어 볼 것을 권유한다.

장맛비로 실내에 머무는 시간이 부쩍 많아진 근간에 윤흥길의 소설 ‘장마’를 다시 꺼내 들었다. 한국전쟁을 시대 배경으로 인간 군상들의 굴곡진 관계들을 덤덤하게 그려낸 중편소설이다. 읽기에도 부담이 없다. 장마는 한국전쟁에 대한 비유이며, 속절없이 쏟아지는 장맛비는 등장인물들의 억압된 내면 심리를 여실히 보여 주는 상징이다. 전쟁의 공포와 불안은 끈적거리는 습기를 품은 채 인간의 몸과 마음에 스며든다.

본문 중 '밭에서 완두를 거둬들이고 난 그 이튿날부터 시작된 비가 며칠이고 계속해서 내렸다. 비는 분말처럼 몽근 알갱이가 되고, 때로는 금방 보꾹이라도 뚫고 쏟아져 내릴 듯한 두려움의 결정체들이 되어 수시로 변덕을 부리면서 침묵의 밤을 온통 물걸레처럼 질펀히 적시고 있었다'라는 구절은 몹쓸 전염병으로 모두가 움츠려든 오늘의 현실로 치환된다.

윤흥길의 ‘장마’는 끈적거리는 습기를 전쟁의 공포와 불안으로 상징한다. 외출이 줄어든 장마철에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는 우리의 풍경도 그러하다.

바이러스는 외부보다는 실내에서 인체로 스며들 가능성이 크다. 질병관리본부는“장마철에 실내 활동이 많아지며 코로나19 전파는 더욱 늘어날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온도와 습도가 높아지는 장마철에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사멸될 거라는 전문가들의 예측과 반대되는 전망이다.

더운 여름이나 비가 내리는 장마철에 사람들이 실외활동보다 실내에 있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늘어나게 되면서, 밀폐된 공간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 밀폐 접촉으로 인한 코로나19 확산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의사의 시각으로 볼 때에도 질병관리본부의 경고는 매우 타당하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코로나19의 변수는 날씨보다는 사람 간 접촉이다. 기온이나 습도 등이 바이러스 특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전파 확산에 더욱 중요한 ‘사람들 간 접촉의 형태’에 따른 영향이 더욱 높다. 윤흥길의 ‘장마’가 수시로 변덕을 부리며 침묵의 밤을 질펀하게 적셨듯이 밀폐된 공간에서의 코로나19도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다. 마스크와 개인 간 거리두기가 장마철에 더더욱 강조되는 이유이다.

개인의 주장과 존엄성은 점점 커지지만, 정작 내면을 채우는 내용물은 빈약한 궁핍한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문학에서 오늘을 읽는 것은 감염병의 시대를 사는 지혜이다. 윤흥길의‘장마’와 코로나19가 덮친 2020년 8월의 여름 장마, 시간과 결은 다르지만 같은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타인에 대한 바른 태도라는 거푸집의 꼴은 시공간을 떠나 다를 바 없다.

끔찍한 상상이지만 지금 같은 코로나19 확산세라면 자칫 가을 대유행이 아닌 여름 대유행이 될 수도 있다. 장마철, 숨이 차오르더라도 마스크를 쓰면서 거리 두기를 지키는 일과 주기적인 환기 등 기본적인 방역수칙을 잘 준수하는 것은 타인에 대한 예의이다. 축축한 습기로 인간의 존엄이 질퍽해지기 전에.

프레쉬이비인후과·성형외과 강남본원 대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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