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라열 힐스톤파트너스 대표.
황라열 힐스톤파트너스 대표.

블록체인이 이슈가 되면서 '탈중앙화'라는 개념이 갑자기 유행하게 된지도 벌써 몇 년이 되었다. 아직도 마치 종교적 교리처럼 탈중앙화의 개념을 신봉하는 이들이 강한 신념으로 탈중앙화가 세상을 바꿀 것이라 주장하고 있으나, 이는 어찌보면 역사에 대한 무지에서 오는 오류의 일종이다.

인류의 역사가 진행되어 오는 과정에서 어떤 한 집단이 중앙화를 고집하고 그 기득권을 강제한 경우는 극히 드물다. 문화 영역에서, 예술 영역에서 그 외 수많은 분야에서 탈중앙화의 시도는 끊임없이 시도되어왔지만, 사실 중앙화가 가지고 있는 효율성과 적확성, 경제성 등이 너무나 월등하여 자연스레 중앙화 방식으로 진화되어온 것이지, 중앙화와 탈중앙화의 선택에 대한 문제는 우리에게 주어진 적이 없다.

포스트모던이 어떤 문화의 한 기류로 일정 포션을 차지한 적도 있으나, 그 탄생의 맹렬한 기세만큼이나 메인스트림을 집어삼킬만한 변화는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우리는 지금까지 천천히 지켜봐왔다. 블록체인 기술 신봉자들이 주장하는 탈중앙화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한 기술 왕국을 건설하려는 이상 또한 이와 비슷한 방향으로 진행되어 간다.

오히려 사람들은 탈중앙화에 대한 욕구가 아닌, 존재하지도 않는 누군가에 의한 검열에 대한 저항을 하고 싶기에 블록체인 열풍의 본질은 '탈중앙화'가 아닌 '검열 저항성'에 있다는 일부의 주장들이 지금에 와서는 더 설득력이 있다. 기술 왕국의 왕이 사라진다고 레짐(가치나 규범)이 소멸하지는 않는 것과 같은 논리다.

누구도 통제하지 않는 시스템에서는, 그 누구도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다.

미들맨(중계인)이 비즈니스에서 무슨 역할을 하는지, 그에 따라 비즈니스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뭘 실전에서 겪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미들맨을 그냥 중간 착취자로만 생각하고 이걸 없애느니, 분산시키느니, 새로운 개념의 미들맨이 등장해야 하느니하는 거친 주장들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미들맨이 과도한 이득을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냥 지금의 필드에서 이것을 개선을 하기만 해도 되는 일이다. 당장에도 할 수 있는 일을 가지고 굳이 블록체인 기술을 끌고 들어오면서 호들갑을 떨 이유가 없다. 미들맨을 제거하는 일은 블록체인 기술을 쓰지 않으면 오히려 더 편하고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낼 수 있다.

미들맨을 없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얼마나 더 미들맨들을 잘 활용하고 또 미들맨들에게 모티베이션을 주어 비즈니스를 활성화시킬 것인가, 비효율적이거나 비도덕한 미들맨들의 운용에 대해 어떤 식으로 개선할지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하는 것이 사실은 더 중요하다.

미들맨의 중요성에 대해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의 맹목적인 중앙화 시스템에 대한 부정적 태도와 불신, 그리고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이 이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해 줄 것이라는 맹신이 블록체인 기술이 한 발 앞으로 나아가는데 있어 가장 큰 장애물이 되어가고 있다. 유저에게 수수료를 걷어내주는 것 또한 비즈니스의 전부가 아니다. 제로페이는 수수료가 0%임에도 불구, 유의미한 유저의 활성화가 지금껏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과연 블록체인 기술은 쓸모가 없는 것일까. 비트가 될지, 이더가 될지, 트론이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암호화폐는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큰 이유는 없다. 그냥 지금도 너무나 잘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암호화폐는 지금까지 해왔던 정도의 역할만으로도 이미 포지셔닝을 완료했다고 생각한다. 마약 대금 거래, 도박 환전, 불법 외환 송금, 자금 세탁 등에서 대체불가능하다고 느껴질만큼의 독보적인 사용처를 가지고 있다.

'왜 암호화폐가 실생활에 사용되지 않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아주 심플하게 답을 할 수 있다. 애시당초 암호화폐의 용도 및 목적이 실생활에서의 사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지금의 크립토 시장을 만든 것은 8할 이상이 암호화폐를 통한 차익 실현을 꿈꾸는 투기꾼들이었고 앞으로도 쭉 그럴 것이다.

투자의 목적으로 구매하여 거래소 지갑에 잘 모셔둔 코인을 동네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사먹고, 커피숍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시기위해 소비할 것이다? 왜? 당장 지갑에 현금이 있고 카드가 있는데? 더군다나 코인의 가격이 오르면 팔아서 수익을 얻기 위해 거래소 지갑까지 만들어가며 사 두었던 코인인데 도대체 왜 코인으로 결제를 해야한단말인가. 스테이블코인이니 기축통화니 이상한 신조어들을 가져다 붙일 필요조차 없다.

현재 펀드를 운영하는 입장에서도 '투자하는 포트폴리오에 얼마든지 돈을 던질테니 VC 물량을 쉐어하자'는 딜은 매일같이 들어와도, 센터나 연구소를 만들어서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블록체인 기술 기업들에게 초기 투자를 해 나가자는 말에는 아무 관심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문제를 이론적으로라도 극복하기 위해서는 코인들이 기존 법정화폐의 사용처를 어설프게 뒤따라 갈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유용성을 발견해야만 한다. 그 답은 지금 현재 법정화폐로 하지 못하는 것들을 찾는 것부터 출발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 답을 찾는 사람이 결국 커버린 글로벌 시장의 승자가 될 것이다.

한국의 블록체인 기술력은 현재 중국, 미국에 비해 꽤나 많이 뒤쳐져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굉장히 우수한 개발 인프라와 인력들을 보유하고 있고, 이 산업 분야의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은 어찌보면 위기이자 기회다. 게다가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대한민국은 암호화폐 산업에 있어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시장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명확한 방향성을 하루라도 빨리 잡아 기술 개발에 집중한다면 블록체인 시장에서 대한민국이 놀라운 기회를 잡고 시장을 선도하는 것도 전혀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는다.황라열 힐스톤파트너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