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용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
권오용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

우리 경제의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두개의 뉴스가 연초에 잇달아 도착했다. 하나는 신용평가사 무디스의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평가, 우리나라가 전체 5개 등급 가운데 최고인 1등급을 받았다.

또 하나는 미국의 경제 전문매체인 블룸버그가 발표한 '2021년 블룸버그 혁신지수', 우리나라가 90.49점으로 세계 1위를 차지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포함된 ESG의 영역과 효율을 강조하는 혁신은 얼핏 보아 양립하지 못하고 충돌할 듯이 보인다. 우리나라 기업의 생태계에 대입하면 유한양행이 가장 혁신적인 기업이 되어 삼성전자 같은 성과를 만들어 내는 듯한 느낌이다. 그러나 이들이 조합이 되어 나타나면 더 이상 환상적일 수가 없다. 한국 경제가 그 환상적인 조합을 만들어 내고 있다니 참으로 기적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무디스가 지난 1월 18일 발표한 ESG 평가보고서는 세계 144개국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ESG는 친환경, 사회적 책임, 지배구조 개선 등 국가나 기업 경영에서의 비 재무적 요소를 뜻한다.

무디스 ESG 평가에서 1등급을 받은 나라는 한국을 비롯해 독일, 스웨덴, 스위스 등 11개다. 1등급은 ESG 수준이 국가 신용등급 평가에 영향을 줄 정도로 높다는 의미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30개국은 2등급, 중국, 러시아, 일본 등 38개국에는 다소 부정적인 3등급이 부여됐다. 우리나라는 특히 제도, 투명성 및 정보공개 등 G(지배구조)의 4개 항목 모두에서 1등급을 받았다. 

'블룸버그 혁신지수'에서 우리나라가 1등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블룸버그가 혁신지수를 내 놓은 9년 중 7번째 1위다.

우리가 세계에서 정말로 가장 혁신적인 국가일까? 벤처 강국인 이스라엘(7위)이나 실리콘밸리가 있는 미국(11위)을 제치고 조사대상 60개국 중 가장 점수가 높은 것이 사실일까? 그러나 R&D 집중도(2위), 제조업 부가가치(2위), 연구 집중도(3위)등 여러 기반 분야에서 우리나라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독일처럼 제조업의 기반이 강한데다 이스라엘처럼 R&D 투자가 많은 종합적인 결과가 우리나라를 혁신지수 1위로 끌어올렸다. 한 마디로 기업의 미래를 대비하는 방식이 우리를 차별적인 혁신의 국가로 만들어 낸 것이다. 

우리나라 기업이 ESG와 혁신에서 2관왕의 영예를 누린 것은 창업주들의 기업관에 상당부분 기인하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인들은 일찍부터 기업을 사회적 공기로 인식했다. 그래서 이병철 회장은 나라가 잘 되면 삼성은 없어도 좋다고 까지 했다. 정주영 회장은 울산 현대 중공업 담장과 지붕에 나라가 잘 되는 것이 우리가 잘 되는 것이고 우리가 잘 되는 것이 나라가 잘 되는 것이라고 큼직하게 써 붙였다.

최종현 회장이 운명직전까지 집필에 매달렸던 저서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법' 이었다. 그래서 김우중 회장은 아프리카 등 후발 개발도상국가의 국가원수를 만나 “당신네 나라에 한국을 지어 주겠다”며 나라를 통째로 수출해 버릴 듯 경제외교를 펼쳤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도 같은 맥락으로 펼쳐졌다. 기업 이익의 사회환원은 공익법인, 공동모금회, 자원봉사 등 다양한 형태로 펼쳐지고 이어졌다. 지난 해 우리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했음에도 사랑의 온도탑은 114.5도까지 치솟았다. 이중 68%가 기업의 기부금이었다. 기부 선진국은 개인의 기부가 많다고 하지만 같은 맥락으로 보면 한국 기업들은 기부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서 있는 셈이다. 

결국 ESG라는 경영의 한 트렌드가 정립되기 이전부터 ESG가 표방하는 정신은 한국기업들에 상당부분 경영이념과 문화로 체화되고 녹여져 있었다.

여기에 함께 발현된 것이 혁신이었다. 시장이 좁아 규모의 경제가 작동되지 않기에 그들의 눈은 세계를 향했다. 미지의 세계에서 기존의 강자들을 밀어내려면 혁신이 필요했다. 그들과 경쟁해서 살아남을 수 있는 최고의 병기는 혁신이었다.

혁신의 결과로 탄생한 산업이 자동차, 전자, 석유화학, 철강 등 지금 한국을 먹여 살리는 산업군(群)이다. 사회적책임을 다하면서 혁신의 성과를 응집시킨 것이 수출규모 세계 7위, GDP 규모 세계 12위인 대한민국의 오늘이다. 

1세대 기업인들의 기업가 정신을 이어받아 혁신의 성과를 사회와 나누어 가지려는 2세대 경영인들의 발걸음은 한국 경제의 미래를 밝혀주고 있다.

카카오의 김범수 이사회 의장은 자기 재산 10조원의 절반을 사회 문제 해결에 쓰겠다고 선언했다. 통상적 방식이 아닌 혁신적 개념으로 공동체를 건강하게 하는데 접근하겠다고 해 갈채를 받았다. 재벌이 존경의 대상이 될 수도 있음이 그를 통해 입증될 수 있을 것 같다.

김봉진 배달의 민족 창업자도 최고의 경험이자 유산이라며 자기 돈 5500억원을 기부하겠다고 했다.

유한양행의 창업자 유일한 회장은 “기업의 소유주는 사회다. 단지 그 관리를 내가 했을 뿐.” 이라고까지 했으니 IT기업인들의 기부는 우리나라 기업 풍토에서 별난 것이 아니라 자생적으로 뿌리내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 젊어진 전통 대기업의 경영자들도 그들의 기업관을 사회와 연결시키고 있다. 현대차의 정의선 회장은 취임사에서 세계 몇 위의 자동차 회사가 아니라 인류의 행복과 미래의 책임을 얘기했다.

대한상의 회장으로 취임한 최태원 SK회장은 2004년에 이미 “행복극대화”를 그룹의 경영이념으로 도입하고 지배구조 개선, 사업구조 개편 등을 이에 맞춰 추진했다. SK가 ESG경영에서 대표기업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은 ESG가 있어서가 아니라 시대의 조류를 10년이상 앞서 꿰뚫어 본 최고 경영자의 예지의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 기업들이 만들어내는 ESG와 혁신의 성과는 한국 경제를 '진정한 성공'의 길로 이끌어 갈 수 있다. 따라서 연초에 날아온 두개의 뉴스는 결코 우연이 아니며 따로 떼 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것들이다. 한국 경제의 강점인 전통 대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에 혁신의 성과를 사회와 나누어 가지려는 신세대의 경영 문화가 더해진다면 한국경제는 새로운 도약의 원천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블룸버그
출처=블룸버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