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정치학 박사 / 前 국민일보 주필
이진곤 정치학 박사 / 前 국민일보 주필

 

“존경한다고 하니까 정말 존경하는 줄 알더라”(작년 12월 7일 서울대 금융경제 세미나 초청 강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인성과 신뢰성이 이 한마디에 농축돼 있다. 다른 사람의 평가가 아니라 자신이 한 말이다. 그의 궤변이 이제 절정에 이른 듯하다. 여당의 대선 후보가 되어 전국을 돌며 수많은 사람을 상대로 원도 한도 없이 많은 말을 하는 가운데 궤변술이 원숙의 경지에 이른 인상이다. 

“이번에 제가 (대선에서) 지면 없는 죄를 만들어서 감옥에 갈 것 같다”(23일 석촌호수 길거리 즉석 연설).

집단적이고 습관적인 허언증

이 말이 역풍을 부르자 그는 잽싸게, 그리고 너무나 쉽게 말을 바꿨다. “검찰공화국이 다시 열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표현했던 것이며 제 얘기는 전혀 아니었다”(24일 YTN 인터뷰). “경제는 과학이 아니라 정치다”, “우리가 존경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의 언급이 논란을 빚은 것과 관련, 그는 서울대 강연에서 “말이라는 것은 맥락이 있지만(있는데) 맥락을 무시한 것이 진짜 문제”라고 역설했다. 그 ‘맥락’이라는 것을 유념하며 듣거나 읽어보자. ‘제가 지면’이라든가 ‘감옥에 갈 것 같다’는 표현 어디에 자신의 이야기가 ‘전혀’ 아니라고 여길만한 맥락이 있는가? 

거리낄 게 없는데 그런 말이 나올까. 역대 대선 후보 아무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유독 이 후보만이 그 같은 우려를 표출했다. 그리고는 금방 말을 뒤집었다. 맥락을 무시하고 억지를 부리며 한 말을 안 했다고 우긴 쪽은 ‘맥락’을 파악 못한 대중이 아니라 그 자신이다.

그의 말 바꾸기는 이미 정평이 나 있다. 자신의 말재간을 너무 믿어서인지, 습관성 허언증 때문인지, 어쨌든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입에서 나온 말을 같은 입으로 부인한다. 대장동 개발사업 설계를 자신이 했다고 자랑하듯 말했다가, 그걸로 꼬투리 잡힐 낌새가 보이자 ‘공익환수 설계만’ 자신이 했다고 둘러댔다. 유동규를 ‘모르는 사람’이라더니 “측근이 아니다”라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말을 바꿨다. 

그가 26일 오전에는 기자회견을 열고 “저 이재명은 앞으로 일체의 네거티브를 중단하겠다. 야당도 동참해 달라”고 말했다. 불과 2시간여 만에 “리더가 주어진 권한으로 술이나 마시고, 자기 측근이나 챙기고” 등의 발언을 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아니라면 누구를 겨냥했겠는가. 이에 앞서 이 후보의 네거티브 중단 선언 후 90분쯤에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윤 후보 부인 김건희 씨의 녹취 음성을 공개하면서 공격했다. 

“내가 네거티브 중단하겠다고 했더니 정말인줄 알더라”는 말이 언제쯤 나올까 궁금하다. 국민의힘 이양수 선대본부 수석 대변인이 한마디 했다. 

급할 땐 어김없이 내미는 사탕

이재명 후보는 선거 때마다 상황에 따라 네거티브에 대한 입장을 바꿔왔다. 2014년 성남시장 선거에서 자신의 쌍욕 욕설 파일이 유포되자 돌연 네거티브 중단을 선언했다. 2017년 대선 경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네거티브 중단을 요청하자, ‘왜 안 되냐. 과도한 네거티브 규정이 바로 네거티브’라며 거부했다. 2018년 ‘네거티브 없는 선거혁명을 이룬다’고 했고, 이번 대선 경선에서 이낙연 후보와 네거티브 공방을 이어오다가 돌연 중단을 선언했다.

과연 명불허전(名不虛傳)이다. 하긴 이 후보만의 성향 혹은 행태는 아니다. 민주당의 집단적 허언증도 이미 호가 나 있다. 민주당은 2015년에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그 직위를 상실하여 재·보궐선거를 실시하게 된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아니한다”는 규정을 당헌(제96조2항)에 신설했다. 문재인 당시 당 대표는 그해 고성 군수 보궐선거 때 귀책사유가 새누리당에 있는 만큼 후보를 내지 말아야 한다고 공격했었다. 

5년 후 상황이 달라졌다. 민주당 소속의 서울시장, 부산시장 공히 여직원 성추행 문제로 자리를 비웠다. 당연히 후보를 내지 말았어야 했지만 민주당은 20년 11월 해당 조항에 “단, 전당원투표로 달리 정할 수 있다”를 삽입하는 당헌 개정을 강행했다. 이낙연 당시 대표는 “후보자를 내지 않는 것만이 책임 있는 선택은 아니며, 오히려 후보를 내서 시민들로부터 심판을 받는 게 책임 있는 도리”라는 해괴한 궤변으로 허언정당임을 자인했다. 민주당은 기어이 두 도시에 시장 후보를 공천했고 보기 좋게 참패했다.  

그 정당이 다시 ‘불출마’ ‘무공천’ 카드를 들고 나왔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25일 차기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아울러 대선과 함께 치러지는 국회의원 보궐선거 지역 가운데 민주당 차지였다가 공석이 된 3곳에 후보를 내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윤미향·이상직·박덕흠 등 3명의 의원직 제명안을 신속 처리하겠다고 공언했다. 

잘 울면 대통령 될 수 있을까?

상식인이라면 창피해서라도 이런 상투적 서약서를 꺼내 흔들지는 못한다. 출마하든 말든, 공천을 하든 말든 자기들이 알아서 하면 된다. 대선에 패배할 경우 당 대표는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그 3곳의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이 이길 가능성도 현재로서는 희박하다. 게다가 더 고약한 것은 윤미향·이상직의 의원직 제명 약속이다. 그간엔 뭘 하다가 이제 와서 결심했다는 것인가. 국민을 예사로 우롱하다가 급해지니까 표와 바꾸자고 한다. 

선거전은 갈수록 윤 후보의 우세가 뚜렷해지는 쪽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래서 그렇겠지만 이 후보는 국고를 다 헐어 국민들에게 나눠줄 것처럼 손 큰 공약을 따발총처럼 쏟아내고 있다. 국민 혈세가 주머닛돈인 양 국민에게 말 인심을 쓰는 재주가 놀랍다. 말에 관한한 재간꾼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그 때문에 신뢰성은 많이 퇴색되는 것 같지만….

그의 읍소작전도 갈수록 치열해지는 인상이다. 사과를 거듭하면서 울음을 터뜨리는가 하면 극빈의 가족사 소개로 청중의 감성에 파고든다. “아픈 가족들의 상처를 그만 헤집어 달라”고 애절한 목소리로 호소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셋째형에 대한 비난은 멈추지 않았다. 도무지 요령부득(要領不得)이다. 그 형과 형수의 상처만 헤집으라는 것인지 뭔지…. 국민을 남의 가족사나 헤집는 사람들로 치부하는 것도 어이없다. 

형편이 나아지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태도가 돌변할 사람들이다. 거짓 약속, 거짓 울음은 한번 시작하기가 어렵지 그 후로는 아주 쉽다. 그간의 경험으로 미루어 민주당의 후보나 당 지도부는 허언증을 공유하고 있을 개연성이 높다. 

향후 5년간, 대한민국호의 선장이 될 대통령 감을 고르는 선거다. 안전 운항도 중요하지만 새 항로 개척, 새로운 목적지 설정이야말로 그에게 부과되는 역사적 책무다. 국민과 국가의 명운이 그 한 사람의 어깨에 얹힌다. 당연히 선택 기준은 아주 높아야 한다. 극빈의 성장기, 아픈 가족사, 사과, 눈물…이런 것을 대한민국 대통령의 요건이나 자질로 삼을 수는 없는 일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