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4일 베트남이 지난해 한국의 무역수지 흑자국 1위로 '등극'했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한국의 대(對) 베트남 수출은 609억8000만달러, 수입은 267억2000만달러로 무역수지 흑자가 342억5000만달러로 집계됐다
이에 따라 베트남은 지난 2019∼2021년 3년 연속 한국의 무역 흑자국 1위였던 홍콩을 제치고 우리에게는 '효자국'으로 자리매김한 셈이다.
연간 기준으로 베트남이 중국과 미국을 뛰어넘어 한국의 최대 무역 흑자국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제로 코로나' 여파로 對中 무역수지 급감...美.印 수출은 오히려 증가
지난 2018년까지만 해도 흑자국 1위 자리를 지키던 중국은 2019년 2위, 2020∼2021년 3위로 하락하다가 지난해에는 22위(12억5000만달러)까지 밀려났다.
대중(對中)무역수지가 20위 밖으로 밀려난 것은 지난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처음이다.
전문가들은 이는 중국의 강도 높은 '제로 코로나' 정책과 지역 봉쇄에 따른 경제 성장 둔화로 대중 수출이 감소한 데다 리튬 등 산업용 원자재 가격 급등 등으로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은 급증했기 때문으로 풀이했다.
전문가들은 이 때문에 중국으로 중계무역이 많은 홍콩과의 무역수지도 함께 축소됐다고 덧붙였다.
중국과 달리 미국과 인도에 대한 수출은 오히려 늘어나 대조를 이뤘다.
지난해 대미 수출액(1098억2000만 달러)은 처음으로 1000억 달러를 돌파했고, 대표적인 신흥 무역 시장인 인도로의 지난해 수출액(188억8000만 달러)도 전년 대비 21.0% 급증하며 사상 최대치에 이르렀다.
한편 지난해 베트남의 무역 규모는 7200억달러로 이 가운데 수출은 3710억달러로 전년대비 1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 2007년 베트남이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15년 만에 무역 규모가 7배나 늘어난 셈이다.
◇ 韓기업 동남아 생산허브 베트남... 삼성전자가 대표 사례
베트남이 한국의 최대 무역수지 흑자국이 된 것은 '로또복권'처럼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은 결코 아니다.
지난 몇 년 간 베트남은 3-4위권에 포함돼 있었다. 토대를 마련했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 산업부 관계자는 "베트남은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에서 글로벌 기업의 생산 기지로 부상하고 있다"며 "베트남에 한국 기업이 활발히 진출하며 긴밀한 경제 파트너로 자리매김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 수는 8000개를 넘어섰다. 이 가운데 절반은 제조업체들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삼성전자. 지난 1995년 남부 중심지 호찌민시에 TV 공장과 판매법인 설립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베트남 공략에 나선 삼성전자는 이후 삼성디스플레이(2014년), 삼성SDI(2009년), 삼성전기(2013년) 등 관련 부문 계열사들이 속속 진출해 동남아권의 허브로 자리매김했다.
현재는 최신 폴더블 스마트폰과 4G·5G 네트워크 통신 장비, TV, 디스플레이, 카메라 모듈, 배터리 등 주력제품을 만든다. 특히 삼성전자 스마트폰 전체 판매물량의 절반가량을 만드는 글로벌 생산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베트남에서 654억달러의 수출실적을 거뒀다. 이는 베트남 총수출의 20%를 차지한다.
삼성전자는 코로나19 여파에 따른 위험 분산 차원에서 인도, 인도네시아 등으로 스마트폰 생산물량을 재할당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지난해 12월 말 수도 하노이에 대규모 연구개발센터(R&D)를 완공하는 등 관심을 버리지 않고 있다.
LG전자도 북부 하이퐁에 전용단지를 운영하면서 디스플레이, TV, 에어컨, 진공청소기, 세탁기, 냉장고 등을 생산해 수출에 주력하고 있다.
또 포스코, 현대차, SK, CJ, 효성, 롯데, 오리온 등 주요 대기업들도 베트남에서 맹활약 중이다. 특히 도요타를 꺾고 현지에서 판매 1위 자리를 차지한 현대차의 경우 타잉콩그룹과 합작 형태로 북부 닌빙에서 연산 10만대의 능력을 갖춘 두 번째 공장을 운영 중이다.
◇ 베트남 浮上, 韓의 철저한 현지화 전략 부산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베트남에 대한 한국의 주요 수출품목은 반도체·평판디스플레이·석유제품 등이다. 제품 생산에 필요한 품목들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이들 품목 못지 않게 K-식품·패션·뷰티·프랜차이즈도 '숨은 공신'으로 평가된다. 이런 평가는 롯데, CJ, 오리온, 오뚜기 등 식품·유통 기업들이 현지에서 유지하는 1등 성적표만 보면 이해가 쉽다.
베트남은 인구 1억명의 무시할 수 없는 시장이다. 진출기업들 가운데 상당수가 수출과 생산 우회기지로서 뿐만 아니라 내수시장으로 중시한다는 얘기다.
더구나 전체 인구의 절반이 35세 미만이고, 4명 당 한 명은 15세 미만이다. 젊은층이 중심인 한류시장의 핵심지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박항서 매직'으로 일컬어지는 K-스포츠와 K-엔터테인먼트는 이미 확실한 토대를 구축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롯데리아와 CJ이다. 롯데리아의 경우 베트남 전역에서 운영하는 매장 수는 270개로 패스트푸드 부문 1위다. 또 38개의 매장을 운영하는 CJ푸드빌의 뚜레쥬르도 현지 베이커리 사업자 가운데 1위다.
롯데리아와 뚜레쥬르는 고급화 이미지를 지향하면서도 현지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는 다양한 상품 개발과 주요 교통수단인 자전거와 오토바이 무료 발레파킹 서비스 등 차별화된 마케팅 전략을 동원했다.
오리온 '초코파이'가 베트남의 제상에 빠져서는 안되는 품목으로 자리매김한 이야기는 식상할 정도다.
이런 성공에 힘입어 다른 후발주자들도 철저한 시장분석과 현지화를 통한 전략에 열심이다.
무역협회 관계자는 중앙일보에 “베트남은 중국을 대체하는 생산기지 역할 뿐 아니라 인구 1억 명, 경제 성장에 따른 구매력 증가로 코로나19 이후 가장 빠르게 회복되고 있는 소비시장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화장품업체 주재원 출신으로 '왜 베트남 시장인가'의 저자인 유영국 나이스 리테일 베트남 법인장도 "베트남은 세계적인 경제위기 속에서도 지난해 8.02%라는 경이로운 성장률을 기록했다"며 "이는 최근 12년 동안 가장 높은 성장률 수지로 전 세계에서 다시 한번 주목받는 시장임을 입증했다"고 평가했다.
유 법인장은 이어 "베트남은 생산에 필수적인 부품 조달, 인프라 등 여전히 부족한 것이 많고, 수출의 74%가 한국 등 외국기업들의 몫이고, 고강도의 사정 노력에도 공직자들의 부정부패가 만연한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나 부정적인 전망에도 베트남이 이를 극복하고 경이로운 성장을 이뤄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며 "중국 진출 외국기업들의 탈중국 대체국으로 베트남이 늘 선두주자인 이유를 잘 헤아려 장기적으로 전략적인 접근을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베트남 주재 기간이 10년이 넘는 대기업 주재원도 "코로나19 사태 여파로 베트남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한국에서 확산하면서 투자가 한때 줄어들었다"면서 "그러나 베트남은 이 사태로 오히려 베트남의 중요성이 커진 만큼 보다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접근 방식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