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퀵커머스 시장이 재편되는 모양새다. 기존에 시장 성장을 이끌던 배달 대행 플랫폼들은 자본력 싸움에서 밀리며 시장에서 발을 빼고 있는 반면, 주요 배달 앱들은 투자를 확대하며 선두 경쟁에 열을 올리고 있는 상황이다.

유통산업발전법 규제 완화로 영업시간 외 배송이 가능해진 대형마트 업계 역시 퀵커머스 시장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퀵커머스는 소비자가 상품을 주문하면 통상 2시간 이내 배송을 완료하는 즉시 배송 서비스다. 주요 품목은 신선식품·생필품 등 소형 상품이다.

배달 오토바이.(사진=연합뉴스)
배달 오토바이.(사진=연합뉴스)

2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배달대행 플랫폼 바로고가 직배송을 담당했던 '바로고앤'을 흡수 합병했다. 바로고앤은 바로고가 음식 외에도 비식품이나 완제품 등을 배달하는 도심 물류 배송사업을 위해 설립한 회사다.

합병비율은 바로고 1대 바로고앤 0이며, 무증자 합병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번 흡수 합병은 운영 효율화가 아닌 사업 중단을 위한 것이다. 이에 따라 바로고앤의 퀵커머스 서비스인 '텐고' 역시 운영을 중단했다.

지난해 7월 시리즈 E를 유치하면서 기업가치 5000억원을 인정받은 '메쉬코리아'는 현재 회생 절차를 밟고 있는 상황이다. OK캐피탈로부터 받은 주식담보대출 약 360억원을 갚지 못했기 때문이다.

메쉬코리아는 새벽배송 진출, 도심 내 소규모 물류거점인 마이크로 풀필먼트 센터(MFC) 등 사업 영역을 넓히는 과정에서 자금을 모두 소진하면서 OK캐피탈로부터 대출을 받게 됐고, 이를 갚지 못해 현 상황에 놓인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배달 대행 플랫폼이 급성장하면서 대규모 투자를 유치할 수 있었고, 이를 기반으로 공격적인 사업 확장이 가능했었다"며 "그러나 엔데믹 전환 이후 배달 수요가 감소하면서 시장 전망이 나빠졌다. 여기에 투자시장까지 위축하면서 배달 대행 플랫폼들이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다. 신사업은커녕 운영 효율화를 통해 생존을 우선시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사진=우아한형제들)
(사진=우아한형제들)

반면 배달의민족, 요기요, 쿠팡이츠 등 국내 주요 배달 앱들은 퀵커머스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배달의민족은 2018년 선보인 B마트와 2021년 선보인 배민스토어 중심으로 관련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서울 지역에서 시작한 이 서비스들은 현재 수도권 외에도 부산과 대전 등에서 운영 중이다.

품목도 다양하다. B마트의 전신이던 배민 마켓 시절에는 신선식품을 중점으로 다뤘으나, 배민스토어를 론칭하면서 꽃과 화장품, 의류 등 7000여 가지 상품을 취급하고 있다.

배달의민족의 퀵커머스 서비스는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앞서 배달의민족 운영사인 우아한형제들은 지난해 10월 19일 B마트와 배민스토어를 중심으로 사업을 확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김범준 대표는 "배민은 음식을 넘어 필요한 물건을 문 앞에 전달하는 회사라는 비전을 가지고 있다"며 "당장 커다란 침대를 배달하는 것은 곤란하겠지만 물리적 한계가 없다면 즉시 필요한 옷이나 휴대폰 당일 개통 등 세상의 모든 영역으로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요기요 역시 퀵커머스를 강화하고 있다. 업계 최초로 편의점 배달 서비스를 시행한 요기요는 이달 전국 GS25 매장을 거점으로 하는 '요편의점'을 론칭했다.

요편의점은 요기요의 배달·포장 플랫폼 운영 노하우와 GS 리테일의 전국 기반 유통망 등 협업 시너지를 집약해 만든 퀵커머스 서비스로, 하나의 앱으로 전국 단위 배송 인프라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요기요는 현재 500개 수준인 가맹점을 올해 상반기 내로 6000개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요기요 역시 '스토어'를 통해 골프용품, 사무용품, 반려동물용품 등 다양한 상품을 취급하고 있다. 다만 요기요는 B마트처럼 직접 도심 내 거점을 마련하는 대신 골프존마켓, 오피스디포, 아가방앤컴퍼니 등과 제휴해 배달을 중개하는 형태를 택했다. 이를 통해 비교적 빠른 기간 내 퀵커머스 상품 카테고리를 확장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쿠팡이츠도 2021년 7월 '쿠팡이츠 마트'를 출범해 서울 일부 지역인 강남, 서초, 송파에서 시범운영 중이다.

주요 배달 앱 업체가 퀵커머스 시장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시장 성장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퀵커머스 시장 규모는 2020년 3500억원에서 2021년 1조2000억원으로 급증했다. 2025년 5조원대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독일의 딜리버리히어로는 전 세계 퀵커머스 시장 규모가 2030년 600조원으로 늘어날 것이라 내다봤다.

본업인 음식 배달 서비스 수요의 감소도 이들 업체로 하여금 퀵커머스에 관심을 두게끔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통계청이 이달 발표한 온라인쇼핑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음식서비스 거래액은 2조23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3% 감소했다. 관련 통계는 5개월 연속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음식 배달 수요는 줄었지만 빠른 배송에 관한 수요는 여전하다"며 "상품군을 더욱 다양하게 마련하면 이미 배송 인프라를 갖추고 있는 배달 앱들의 경우 성장세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마트 강변점 스마트스토어의 바로배송 스테이션.(사진=롯데쇼핑)
롯데마트 강변점 스마트스토어의 바로배송 스테이션.(사진=롯데쇼핑)

한편 대형마트 업계에서도 퀵커머스 시장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기존에 빠른배송을 운영 중이었지만 유통산업발전법에 의한 규제로 새벽시간 및 의무휴업일엔 서비스 제공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지난해 말 중소벤처기업부와 국무조정실, 산업통상자원부, 전국상인연합회,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한국체인스토어협회 등이 '대·중소유통 상생발전을 위한 협약'을 체결하면서 규제 완화가 가시화됐다.

이에 따라 영업시간 외에도 전국에 있는 점포를 물류 거점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이는 대형마트들이 이미 퀵커머스 시장에 진입한 배달 앱들과의 경쟁에서도 밀리지 않는 기반을 갖추게 된 것을 의미한다.

대형마트 업계가 새벽배송보다 퀵커머스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투자비용을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새벽배송의 경우 주요 취급 품목인 신선식품의 신선도 유지를 위해 냉동·냉장 물류센터 및 배송차량 등 '콜드 체인'(저온유통체계)을 갖춰야 하는데, 물류비 상승 및 엔데믹 전환 이후 줄어든 관심 등으로 시장 전망이 불안정해지면서 투자 대비 수익성이 높지 않은 사업 모델로 인지되는 상황이다.

반면 퀵커머스의 경우 기존 점포를 거점으로 활용해 초기 비용을 아낄 수 있어 즉각적인 배송 서비스가 가능하다. 

무엇보다 새벽배송의 경우 이미 쿠팡이나 컬리 등 선두주자들이 존재해 시장 신규 진입 시 점유율 확보가 어렵지만, 퀵커머스에는 절대적인 강자가 없어 후발주자라도 높은 점유율을 확보할 가능성이 있다.

업계 관계자는 "대형마트는 전국에 점포를 갖추고 있다. 이는 이용자 수를 이유로 수도권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배달 앱과는 차별화되는 대형마트만의 강점"이라며 "대형마트가 퀵커머스에 본격 진출하면 금방 배달 앱의 점유율을 따라잡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