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명 윤기설 경제학박사/한국좋은일자리연구소장
- 입력 2025.11.25 17:00
- 수정 2025.11.25 18:01
-원·하청,하청노조끼리도 교섭단위 분리 가능
-협력사만 수천곳...기업들 1년 내내 교섭 시달려

내년 3월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 시행을 앞두고 정부가 24일 입법 예고한 시행령이 하청노조의 분리교섭 가능성을 대폭 넓히는 내용으로 이뤄져 노사현장의 혼선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노란봉투법은 하청 노조도 원청 회사와 교섭을 가능하게 한 반시장법으로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힘든 입법이다. 경영계의 반발이 거세지자 노동부는 시행령 등을 통해 보완하겠다고 했지만 실제 발표된 시행령에서는 보완된 내용을 찾아보기 어렵다.
시행령에 따르면 하청 기업 노조는 원청에 직접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있게 된다. 대기업 원청 노조와 하청 노조는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만큼 각각 따로 교섭(교섭단위 분리)하도록 하고, 하청 노조의 경우 특성과 상황에 따라 창구 단일화를 통해 교섭하도록 한 것이다.
교섭 창구 단일화가 원칙이었던 기존 노동조합법에서도 교섭단위 분리는 가능했으나 제한적으로 인정되었다. 그런데 직무·이해관계·노조 특성에 따라 교섭단위를 분리할 수 있는 기준을 대폭 완화함으로써 하청 노조도 원청 회사에 교섭을 요구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즉 직무 차이, 사업장 구분, 근로조건 등의 이유만으로도 하청 노조가 쉽게 분리교섭을 요구할 수 있어 하청노조가 원하면 따로 협상해 주라는 것이다.
시행령은 원청과 하청 노조가 자율 협의에 실패할 경우 노동위원회가 근로조건·고용형태·교섭관행 등을 기준으로 교섭단위의 통합 또는 분리를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동일 직무군을 묶어 교섭 창구를 단일화하더라도 부품 종류나 사업장 차이, 근로조건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교섭단위 분리를 주장할 수 있도록 돼있어 교섭 대상 노조는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시행령대로 노란봉투법이 실시되면 교섭창구 단일화는 사실상 유명무실하게 돼 기업의 부담이 크게 늘어나게 된다.
노동부는 분리교섭 이유로 “하청 노조의 실질적 교섭권 보장”을 들고 있다. 하지만 이는 사용자의 대항권과 노사관계 안정을 외면한채 노동조합의 권익과 파업권만을 확대함으로써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겠다는 것에 다름아니다. 2011년 복수노조가 허용됐을 때 교섭 창구 단일화는 노사 갈등을 최소화하는 안전장치로 기능해 왔다.
벌써부터 “원청 기업이 교섭에 나서라”는 하청노조의 압박이 늘어나는 상황이어서 관련 법 시행을 앞두고 하청업체가 많은 자동차,조선 산업 기업들은 걸린 상태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1차 협력사가 300여 곳, 2·3차 협력사 등까지 포함하면 8500여 개의 하청 업체를 두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1차 협력사만 2420곳, 삼성중공업은 1430곳, 한화오션은 1334곳에 이른다.
이들 하청 노조가 원청을 상대로 개별교섭을 요구하고, 교섭에 응하지 않을 경우 집단행동을 벌이게 되면 대기업들은 1년내내 교섭을 둘러싼 노사갈등에 발목을 잡힐 수밖에 없다. 또 불법 쟁의 행위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제한과 노동쟁의대상 확대 등도 하청 노조들의 과도한 행동을 유발해 노사갈등을 부채질 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재명 정부의 오락가락하는 정책방향이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는 점이다.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기위해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도 실제로는 반시장정책을 펼치고 있어 정책의 진정성까지 의심받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3일 대통령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규제·금융·공공·연금·교육·노동 등 6대 분야에 대해 과감한 구조개혁을 추진해 대한민국의 당면한 최대 과제인 잠재성장률을 반등시키겠다”고 말했다. 현재의 경직된 경제시스템으로는 급격히 떨어지는 한국의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어려워 개혁을 하겠다는 다짐이다. 백번 옳은 얘기다.
그런데 잠재성장률 제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수 있는 노란봉투법 시행령을 입법예고한대로 시행한다면 국가경제의 성장동력과 기업의 경쟁력은 급격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이제라도 노란봉투법 시행령을 기업의 경쟁력에 초점 맞춰 대대적으로 손질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이재명 대통령이 잠재성장률 제고를 위해 꼭 필요하다며 약속한 노동 등 6대분야의 구조 개혁 추진 방향과도 걸맞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