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안팎의 관심 속 드디어 금융당국이 고심 끝에 마련한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관련 분쟁조정 기준안이 공개됐다. 분쟁조정 기준안은 말 그대로 향후 분쟁조정이 진행될 때 활용할 기준으로서 금융당국이 은행 등 판매 금융사에 제시하는 일종의 ‘피해 배상 가이드라인’이다.

금감원은 배상비율 산정할 때 크게 ‘판매사별 공통 적용 기준’과 ‘투자자별로 고려되는 개별 기준’으로 나눠 적용토록 했다. 투자자별로 확정된 손실에 대해 판매원칙 위반 등 판매자 요인과 투자자별 가산‧차감 요인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산출한 각 투자자별 배상비율을 적용해 최종 배상금액 결정하는 식이다.

금감원은 대다수가 배상비율 20∼60% 범위 내일 것으로 보고 있으나, 경우에 따라서는 배상을 한푼도 받지 못하는 사례가 나올 수도 있으며 반대로 100% 모두 배상받을 가능성도 열려있다.

예컨대 ELS 상품 가입 경험이 20회 이하인 만 80세 이상 초고령자가 예·적금 가입목적으로 은행에 방문했다가 은행직원으로부터 ELS 상품을 권유받아 5000만원 미만으로 가입했다면 손실에 대한 최종 배상비율이 75%에 이를 수 있다. 가입 과정에서 설명의무 위반과 내부통제 부실 소지가 있었고 적합성 원칙 위반, 부당권유 금지 위반 및 고령자 보호기준을 준수하지 않은 사실이 추가로 발생했다는 전제다.

ELS 가입경험이 총 62회에 이르고 과거 ELS 투자로 얻은 누적이익이 이번 손실규모를 초과하는 등 다수의 ELS 투자경험이 있는 50대 중반의 투자자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경우 은행 측이 ELS 상품을 설명하면서 투자위험 일부를 누락하거나 내부통제 부실 소지 문제 및 투자권유자료를 보관하지 않은 사실이 있더라도 손실에 대한 배상비율이 0%가 될 수 있다.

이같은 분쟁조정안을 받아 든 은행들도 가입자들도 누구 하나 만족스럽지 않은 표정이다. 조정안은 강제성이 없어 어느 한쪽이든 받아들지 않으면 법정 다툼 등 장기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동안 금융당국의 선제적 배상 압박에도 은행들은 일단 현장검사 결과와 가이드라인부터 받아 보고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워낙 사례가 다양해 가이드라인 없이 은행별로 제각각 자체 배상안을 만들기 어렵고, 더욱이 검사결과 나오기도 전에 먼저 배상에 나서는 것이 자칫 불완전판매를 인정하는 꼴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여기에 자율배상에 따른 배임 소지가 제기될 수 있다는 점도 우려했다.

금감원은 이제 분쟁조정안이 나온 만큼 이를 바탕으로 판매사들이 신속히 사적 화해에 나설 것을 기대하고 있지만 은행별로 처한 상황이 달라 여전히 속내가 복잡하다. 은행들은 조정안이 이제 막 나온데다 이사회 승인도 받아야 하는 사안인 만큼 일단 배상비율 적정성을 살펴보고 법률 검토까지 진행한 뒤 수용할지 말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한쪽에선 감독당국과 각을 세우는 부담을 지느니 자율배상에 적극적으로 임함으로써 향후 제재나 과징금을 낮추는 게 유리할지에 대한 주판알도 같이 튕겨보고 있다.

은행들이 어떤 결론을 내리든 100% 배상을 원하는 가입자 측과의 갈등과 마찰을 피할 길은 없어 보인다. 이에 이번 홍콩 ELS 사태의 매듭을 짓기까지 상당히 긴 시간이 소요되는 것도 자명해지고 있다. 조용병 은행연합회 회장은 이번 홍콩 ELS 분쟁조정안이 당국, 소비자, 은행 간 ‘소통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으나 앞으로 나아갈 길은 여전히 짙은 안갯속으로 순탄치 못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