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정치학 박사 / 前 국민일보 주필.
이진곤 정치학 박사 / 前 국민일보 주필.

선거구경이나 투표나 할 만큼 했다고 생각되는데도 이번 같은 선거는 정말이지 처음이다. 세상에! 주권재민의 민주원리를 정기적으로 재확인하는 선거가 특정인들의 복수혈전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선거를 통해 권력을 장악하고, 그 힘으로 사적인 복수극을 벌이겠다는 의도로밖에 볼 수가 없는 정치‧선거 언어가 난무하고 있다. 

대의민주정치의 가장 취약하고 위험한 행태다. 이런 의도를 공공연히 말로 드러내도 이를 저지, 제재할 수 있는 마땅한 제도적 장치가 없다. 이런 간 크고 수치심을 모르는 정치꾼들의 민주정치 둘러엎기에 범법‧부패연대라고 불려도 할 말이 없을 일군의 권세‧재물 사냥꾼들이 가세하고 있다.

2심 징역형 선고 받고도 비례 후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조국혁신당’ 창당과 이 당의 비례대표 출마(2번)가 전형적인 예다. 그가 내건 신당의 목표가 ‘윤석열 정부 조기종식’이다. 그는 문재인 청와대의 민정수석비서관을 거쳐 법무부 장관에까지 올랐다가 국민적 지탄을 감당하지 못하고 취임 35일 만에 사퇴했었다. 

대학교수 시절 SNS를 통해 보수정권의 요인들을 비난하고 모욕 주는 데 발군의 실력을 과시했다. 그게 부메랑으로 자신에게 고스란히 돌아갔다. 그래도 뉘우치는 빛이 없이 말장난 같은 자기 합리화로 일관했다.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징역 2년 형을 선고받았지만 지금까지 반성의 말 한 마디가 없다. 부인 정경심 전 교수가 자신의 죄과와 거의 대부분 겹치는 혐의로 4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아 복역을 했지만 그는 남을 비난하고 자기 가족의 고통을 주장하는 것으로 일관했다.

그가 정당을 창당하고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한 것 자체가 대한민국 대의민주정치사의 역설이다. 상식적으로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법무장관을 지낸 사람이 국가 형사사법 체계를 조롱하고 모욕해도 선거라는 이름으로 용인되고 있다. 

그는 자신과 가족의 대학입시 비리행위로 상실감 박탈감에 떨었을 학부모와 수험생들의 고통을 외면한 채 온 가족이 도륙을 당했노라며 분노했다. 이런 경우가 바로 적반하장이다. 그리고 기어이 당을 만들면서 복수의 도정에 올랐다. 지금의 분위기로는 일정부분 한풀이에 성공할 듯도 하다. 대신에 제22대 국회를 구성하기 위한 총선이 모욕을 당하게 됐다. 

조국혁신당이 원내에 진입하고 조 대표가 의원 배지를 달게 되는 것만으로도 방탄기제는 작동한다. 거기에 더해 조 대표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윤석열 정권과 검찰독재 조기종식을 위한 동지적 협력’을 합창한 바 있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이 대표와 죽이 잘 맞을 때 이들에 대한 야권 의원들의 방탄역량은 한층 업그레이드되리라고 기대할 만하다. 국회를 통해 사법체계까지 비틀어 버리려 할 수도 있다.

대통령 탄핵에 입맛을 다시는 세력

이들 세력, 그러니까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해 파면하는데 성공한 문재인 정권 때의 유력자들이 그 추억에 몰입해 있다. 현직 대통령 탄핵에 입맛 다시고 있는 것이다. 임기 1년도 안 남긴 현직 대통령을 끌어내린 정변의 재연을 꿈꾸고 있는 이들이 민주주의 신봉자라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이들은 총선 승리를 통해 제2의 박근혜와 제2의 문재인을 만들어내고 ‘적폐청산 시즌 2’의 막을 올리고자 하는 지도 모른다.

사적 복수를 노리는 이재명‧조국 협업에는 그들의 이미지에 어울리는 조력자들이 진을 치고 있다. 다들 내로남불, 적반하장의 고수들이다. 조국당에 ‘검찰개혁’을 상징하는 인물로 영입된 박은정 전 부장검사가 그 예일 수 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래서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에 대한 감찰에 집요하게 매달렸던 인사다. 자신이 몸담았던 검찰을 ‘시대의 패륜집단’으로 매도하면서 비례후보 1번을 차지했다. 

그런데 그의 남편 이종근 변호사가 다단계 사기 사건에서 업체 대표 등의 변호를 맡아 총 22억 원의 수임료를 받은 것으로 보도됐다(조선일보, 3. 28). “이 변호사는 작년 변호사 개업 당시 출연한 유튜브 방송에서 ‘가정주부나 노인 등 (다단계) 피해를 당한 분의 사연이 너무 안타까워서 이 분들의 피해를 예방하고 회복하며 이런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제가 추구하는 길’이라고 말했다”(같은 기사). 

탁월한 변검술(變臉術: 얼굴바꾸기 기술)을 발휘해서 그는 단숨에 부자가 됐다. 박 후보가 중앙선관위에 신고한 총 재산은 49억8185만 원에 이르렀다. 작년에 이 변호사가 신고한 부부의 재산 합계는 8억7526만 원이었다(대전일보, 3. 28). 언론에 비판 기사가 쏟아지자, 그는 부인 박 후보 명의의 페이스북에 “나만 그랬느냐”는 투의 항의 글을 올리며 보수언론의 ‘악의적 왜곡보도’ 탓을 했다. 대응 태도가 조국류(類)라고 할 수 있다.

민주당 이 대표의 경우는 2020년 4‧15총선을 12일 앞두고 발표된 (코로나19 대응) 1차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이 거둔 성과를 못 잊어 다시 현금지급 공약을 내걸었다. 총선을 16일 앞둔 24일, 그는 ‘전 국민 민생회복지원금’을 1인당 25만원씩 주겠다고 발표했다. 27일엔 ‘기본사회’ 5대 정책을 총선 공약으로 내놨다. 출생 기본소득, 기본주택, 국립대·전문대 무상교육, 간병비 지원, 주5일 경로당 점심 지원 등의 내용을 담았다. 헬리콥터 머니 작전을 재개하겠다는 것이다. 

부끄러움을 모르면 인간이 아니다

과연 집권 5년간 국가부채를 400조원이나 늘려놓은 문재인 정권의 상속정당답다. 더 황당한 것은 이 대표가 지난 24일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면서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예를 들먹였다는 사실이다. 

“정치가 후퇴하면서 잘살던 아르헨티나가 망해버렸다. 브라질도 사법독재 검찰독재 때문에 7대 강국이다가 갑자기 추락했다.”  

지난 2015년 이 대표(당시 성남시장)가 청년들에게 소득, 취업 여부와 상관없이 1년에 100만원씩 지원하겠다고 했다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로부터 “아르헨티나를 망친 페론 대통령을 보는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2021년 민주당 대선 예비후보 시절에는 홍준표 국민의힘 예비후보로부터 ‘경기도 차베스’로 불리기도 했다. 그가 공약으로 내걸었던 기본소득, 농민기본소득, 기본주택 등 이른바 ‘기본시리즈’때문이었다. 

그처럼 포퓰리스트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던 이 대표가 아르헨티나가 망한 까닭을 윤 대통령의 정치에 빗대어 설명한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었다. 이런 게 이 대표나 조 대표의 남다른 재주다. 자신의 잘못을 남 탓으로 돌리거나 아예 남의 것으로 덮어씌우면서도 표정 하나 바꾸지 않는다. 이 점에서는 발군이라고 할 만하다. 

두 사람 다 형사 피고인의 처지다. 혐의 내용대로라면 죄질이 아주 고약하다. 남을 대할 면목이 없다고 여겨야 옳다. 그래도 사람들 앞에 서려면 부끄러운 마음 정도는 갖는 게 도리다. 맹자는 무수오지심 비인야(無羞惡之心 非人也)라고 했다(공손추公孫丑 편). 잘못을 저지르고도 부끄러움을 모르면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국민의 대표를 뽑는 총선 판에서 비인(非人)으로 보이는 사람 및 그 아류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그들이 판세를 좌우하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지 너무 혼란스럽다. 사적 복수심을 공공연히 드러내는 이들이 의회권력을 계속 휘두르게 된다면 의사당은 복수혈전의 콜로세움이 되고 만다. 
최종적 선택은 유권자의 몫이다. 국민이 주인의식을 발휘해 주리라고 기대할 수밖에 없다. 어떻게 그 기대를 포기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