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정치학 박사 / 前 국민일보 주필
이진곤 정치학 박사 / 前 국민일보 주필

 

“한 장관이 미국까지 가서 했던 것은 검찰청법 8조를 정면 위반한 것이니 (수사)하고 싶으면 직을 걸고 정면승부를 하라.”

더불어민주당 김의겸 의원이 연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뉴욕남부연방검찰청 방문(지난 7월 5일)에 대해 검찰청법 위반이라고 공격하고 있다. 당시 나욱진 현직 부장검사와 동행 출장을 갔는데 이는 한 장관이 검찰총장을 우회해서 일선부장검사를 지휘한 셈이라는 것이다.

김 의원이 법무장관의 수사 지휘권을 가지고 장관을 윽박지르고 있는 게 우선 신기하고 황당하다. 추미애 전 장관은 지난 20년 3개월 간격으로 2차례, 6건에 대해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을 수사라인에서 배제하는 내용이었다(박범계 전 장관도 한 차례 발동했지만 윤 총장 사퇴 이후였다).

그리피스 이 메일에 충격 받았나

장관의 지휘를 받아 수사지휘를 해야 할 검찰총장을 배제해버리는 지휘권 발동이 법 취지에 부합하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어쨌든 해당 사건들에 대해 검찰총장은 지금도 수사라인에서 배제돼 있다. 그 대단했던 추 장관을 배출한 민주당이 검찰청법 8조로 한 장관을 압박하는 것은 코미디다. 

한 장관이 현직 부장검사를 대동하고 뉴욕남부연방검찰청을 방문해서 그쪽 인사들과 의견을 나누거나 상호협조를 약속한 것을 직접적인 수사 및 수사지휘권 행사라고 한다면 그건 김 의원의 악의적 추측에 불과하다. 나 부장검사에게 심한 모욕감을 안기는 말이기도 하다. 문재인 정권 때는, 윤 총장이 배제된 상태에서 일선 검사들이 이심전심, 법무장관의 의도를 헤아려가며 수사를 했다는 뜻인가?

법대로라면 거기서 취득한 정보를 바탕으로 한 장관이 검찰총장에 대해 수사지휘권 발동을 못할 이유가 없다. 다만 한 장관은 그 권한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말해왔다. 이제까지의 집무 스타일로 미루어 그 약속은 지켜질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김 의원은 왜 ‘법위반’부터 단정하고 드는가? 

한미양국 검찰이 수사 중인 가상화폐 사건 수사 자료를 공유하는 방안마련 등 실질적 공조에 합의했다는 것은 이미 한 장관의 방미 때 보도된 사실이다. 그걸 갑자기 김 의원이 문제 삼고 나선 것은 버질 그리피스와 한국 내 사업 연락책 에리카 강이 주고받은 메일 내용 때문인 듯하다. 그리피스는 가상화폐 ‘이더리움’ 개발자로, 북한이 대북제재를 피해 암호화폐를 해외송금하는 기술을 소개했다가 미국 법정에서 징역 63개월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사람이다. 그 메일에 박원순 전 서울시장, 이재명 민주당 대표(당시 성남시장), 국회의원등이 거명되는 걸 새로 발견했거나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거나 한 것으로 보인다.

의원이 수사에 간여하는 까닭은

김 의원은 “한 장관이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혈안(血眼)이 돼 있다”고 성토했다(기자출신이라는 그의 언어 습관이 이 지경이다. 혈안이라니!) 그는 만약 한 장관이 수사를 목적으로 뉴욕남부검찰청에 갔고, 부장검사를 지휘했다면 ‘탄핵사유’가 된다고 엄포 놓기를 서슴지 않았다. 한 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김 대변인의 말처럼 대한민국 정치인이 북한 가상화폐 범죄와 연계됐다면 범죄의 영역이다. 범죄신고나 내부고발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나중에 저런 범죄가 드러나도 수사하지 말라고 복선을 깔아두는 것인지 묻고 싶다.”

김 의원은 12일 이런 언급을 했다.

“제가 이 정도로 말을 하면 (수사를) 안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제 이해찬 대표가 이사장을 맡은 동북아평화경제협회라는 곳에 대해 압수수색이 들어왔다. 배석한 변호사와 통화를 해봤더니 영장 안에 암호화폐 관련된 내용을 압수수색한다고 기재가 돼 있더라고 한다.”

그가 이날 CBS 라디오에서 한 말이다. 이는 김 의원이 민주당 이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를 저지하기 위해 무리하게 한 장관을 압박하고 위협한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한 행태라고 하겠다. 뭘 감추거나 방어해주고자 하는지부터 밝히는 게 순서 아닌가?

식상하지만 다시 말하자.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 이 대표도 당연히 그 ‘만인’에 포함된다. 수사는 경찰‧검찰‧공수처가 담당한다. 이 대표와 김 의원은 입법부의 일원이다. 한 장관이 입법사항에 대해 간섭하거나 압박을 가하면 민주당이 참아줄 리 없다. 그런데 검찰의 수사에 대해 국회의원이 왜 험악한 표정으로 간여하는가? 국회의원에게 수사지휘권이 부여돼 있기라도 한 것처럼.

허위 사실 동네방네 퍼뜨린 의원

한 장관더러 수사를 하고 싶으면 직을 걸고 하라고 호통을 치던데 아주 해괴한 요구다. 수사는 검찰이 하고, 한 장관은 검찰총장에 대해서조차 수사지휘를 않고 있다. “탄핵 당하고 싶으면 수사를 하라”는 뜻으로 들리는데 이런 협박 자체가 위법이다. 계속 검찰 수사에 훈수를 들거나 위협을 가하고 싶으면 김 의원이 먼저 ‘의원직’을 걸 일이다. 

“한 장관이 악수사진을 찍기 위해, 일부러 피해가는 이재정 민주당 의원을 엘리베이터까지 쫓아가서 폴더폰인사(허리가 접힐 정도의 인사)를 하며 손을 내밀었다고 하더라.”

김 의원이 방송 등에서 이죽거리고 비웃으면서 퍼뜨린 허위 내용이다. 이 의원이 허풍을 떨었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발설한 책임은 김 의원에게 있다. 그런데도 한 마디 사과나 해명 없이 한 장관의 ‘이실직고’만 압박하고 있다. 도덕성은 집에 놔두고 다니는가?

“그리피스가 에리카 강과 주고 받은 이메일 자료를 어렵게 구했다. 영문으로 되어 있는 50~60페이지짜리다.”

이런 식으로 장황하게 자화자찬을 하며 화면을 띄우기까지 했는데 “그 자료는 구글링을 해 보면 금방 찾을 수 있는 것”이라고 한 장관이 맞받았다. 그런 창피를 당하고도 한 마디 해명이 없다. 초 급성 건망증에라도 걸린 걸까? 

김 의원이 문제 제기를 해줬으니 말인데 검찰은 그가 한 장관의 자리까지 위협하면서 감추려고 하는 진실이 무엇인지를 밝혀내야 한다. 국회의원이 누군가의 범법사실을 알면서 그걸 감춰주는 정도가 아니라 수사를 막아서는 행위를 한 것으로 드러날 경우,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옳다. 면책특권 뒤에 숨으려 한다면 민주당은 개헌 이전에라도 이 권리의 포기를 선언하는 게 도리다. 이미 이 대표도 ‘면책특권 제한’을 주장해온 만큼 이제 와서 안 하겠다고 하지는 못할 것이다.

흑석 김의겸 의원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