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투자증권 김성근 애널리스트] ■ 유화적인 모습을 보이는 트럼프: 이란이 도발하기 쉬운 환경

지난 17일 사우디 왕세자는 원유 생산은 9월 말까지 대부분 정상화될 것이라고 발언해 원유 가격은 재차 하락했다. 14일 사우디의 주요 정유시설에 대한 공격으로 브렌트유가 장중 20%까지 급등한지 3일 만이다.

문제는 이와 같은 공격이 더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번 공격도 이란과 얽혀있다. 사우디와 전쟁중인 예멘의 후티(Houthi) 반군이 이번 공격의 배후를 자처했지만 미국은 이란이 배후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우디 외무부도 지난 16일 공격에 이란산 무기가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반군의 소행으로 단정 짓기에는 공격이 너무 정밀했고 예멘과 아브카이크(Abqaiq) 시설간의 거리도 반군이 보유한 드론의 사정거리 밖이라는 것이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가 유화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도발에 따른 부담감도 한층 완화 됐다. 이란에 대해 최대 압력 전략을 구사해온 트럼프는 최근 볼튼 보좌관을 경질한데 이어 이란과의 대화 가능성을 시사했다. 또한 이번 공격 이후에도 사우디를 보호할 의무는 없다고 주장하는 등 전쟁 가능성도 일축했다.

정밀 공격을 받은 사우디의 아브카이크 원유 시설. 자료: Digital Globe, NYT
정밀 공격을 받은 사우디의 아브카이크 원유 시설. 자료: Digital Globe, NYT
그렇다면 이란이 이와 같은 도발을 하는 동기가 뭐인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두가지 경로로 이해해 볼 수 있다. 하나는 협상을 위한 레버리지다. 이란이 취할 수 있는 최악의 선택은 미국의 경제제재를 당하면서 조용히 있는 것이다. 피해는 계속해서 보고 있는데 미국 입장에서는 서둘러 협상할 동기가 없기 때문이다.

이란 혁명군(IRGC)의 상대적 독립성도 잇따른 도발의 배경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란은 군대가 두개다. 1979년 혁명 이후 설립된 IRGC와 일반 군으로 나뉜다. 민간 정부의 통제를 받는 군과는 달리 혁명군은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이들은 이란 대통령이 아닌 이란의 최고 지도자의 관리하에 있다. 결국 루하니 이란 대통령의 의지와는 달리 IRGC가 독단적으로 행동에 나설 수 있다는 의미다.

이란 혁명군의 조직도: 일반 군과 별개의 조직. 자료: Centre for Foreign Relations
이란 혁명군의 조직도: 일반 군과 별개의 조직. 자료: Centre for Foreign Relations
IRGC 입장에서는 미국과 이란간의 긴장감 조성이 유리하다. 이란 혁명을 보호하기 위해 창설된 조직인 만큼 긴장감이 유지되어야 조직의 중요성이 강조될 수 있다. 게다가 IRGC는 이란의 블랙마켓을 장악하고 있다. 블랙마켓은 경제적 제재가 가해질 때 확대되는 경향이 있다. 결국 공식적인 이란 경제와는 달리 현 상황이 IRGC에게는 성수기일 수 있다는 의미다.

한편 미국은 앞서 서술했듯이 행정부내 대표 매파인 볼턴 보좌관을 해임시키는 등 이란에 대해 보다 유화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 분쟁이 확산되는 것을 막으려고 하고 있다. 지난 6월 미국 드론이 격침됐을 때도 트럼프는 군사적 옵션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번 사우디 공격 이후에도 트럼프는 사우디를 보호한다는 약속을 한적이 없다고 발언해 전쟁 가능성을 일축했다. 이란에 대응할 준비가 끝났다는 트윗터 글을 올린지 약 하루 만이다. 결국 이란 입장에서는 도발을 해도 여기에 상승하는 보복이 없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효력이 사라진 트럼프의 협박. 자료: Twitter
효력이 사라진 트럼프의 협박. 자료: Twitter
실제로 트럼프는 이란과의 전쟁에 휘말리지 않을 동기가 충분하다. 2016년 대선 당시 미국을 비용이 많이 드는 전쟁에서 해방시키고 중동에 개입을 하지 않겠다는 공약을 했다. 2020년 대선에도 결코 좋을리가 없는 것도 알고 있다.

이란의 핵 개발을 막기 위한 군사적 옵션 사용은 공화당 성향의 유권자들도 압도적으로 반대하고 있는 상태다. 또한 이란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지만 사우디의 이미지도 결코 좋지는 않다. 올해 2월 진행된 갤럽의 국가별 이미지 조사에 의하면 응답자의 29%만이 사우디에 대해 긍정적인 인식을 가졌다고 답변했다. 사우디에 사태가 일어나도 미국이 개입을 꺼려하는 이유다.

이란에 대한 선제 공격에는 공화당 유권자도 반대(2019년 7월 15일 기준) 자료: Gallup, 한국투자증권
이란에 대한 선제 공격에는 공화당 유권자도 반대(2019년 7월 15일 기준) 자료: Gallup, 한국투자증권
오히려 이란 사태를 마무리지어 외교적 성과를 남기려고 노력중인 것으로 보인다. 이란과의 전쟁도 주저하지 않겠다던 볼튼 보좌관을 해임시켰고 사우디 사태 전에는 루하니 이란 대통령과의 만남에도 긍정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트럼프는 2020년 대선일은 점차 다가오고 있는데 아직까지 외교적 빅딜을 성사 시키지 못했다. 취임 이후 베네수엘라, 북한, 이란 등 외교적 전선은 넓어졌지만 해결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분야별 지지율을 살펴볼 경우 경제 분야만 지지한다는 응답자 비율이 더 높은 상황이다.

분야별 지지율: 경제 분야만 지지율이 앞서(2019년 9월 5일 기준) 자료: CNN, 한국투자증권
분야별 지지율: 경제 분야만 지지율이 앞서(2019년 9월 5일 기준) 자료: CNN, 한국투자증권
다만 미국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은 피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인이나 미국의 자산이 공격을 받을 경우에는 미국도 군사적 보복에 나설 가능성이 훨씬 높아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경제 및 외교 수단이 실패할 경우 군사적 옵션 사용에 대한 지지율은 급격히 높아진다. 따라서 이란도 미국보다는 미국의 동맹국과 군사적 파트너를 상대로 도발을 할 가능성이 높다.

■취약한 사우디의 인프라 시설: 담수화 시설 주목할 필요

게다가 이번 공격으로 사우디의 주요 인프라 시설의 방어가 취약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미국 씽크탱크인 국제전략연구소(CSIS)는 지난달 이란의 공격에 대해 사우디의 주요 인프라 시설이 취약하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간한바 있다. 사우디 아람코가 인프라 시설 보호에 많은 투자를 했지만 이란의 위협은 여전히 상당하다는 주장이다.

이 보고서는 이란의 미사일, 사이버 공격 능력, 해상 지역 방어(A2/AD) 능력의 위험성을 강조하면서 이란 혁명군은 헤즈볼라와 후티 반군을 통해 간접적인 공격도 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후티 반군은 지난 3년간 사우디에 대해 약 250건의 공격을 감행했다. 또한 라스 타누라(Ras Tanura)원유 수출 항구 등 잠재적으로 공격받을 수 있는 주요 목표도 지목했다. 최근 공격받은 아브카이크 시설도 이 중 하나다.

특히 해당 공격 대상 시설 중 사우디의 담수화 시설(Desalination plant)이 공격을 받으면 긴장감이 급격히 올라갈 수 있다는 판단이다. 페르시아만 해안에 위치 안 라스 알 카헤르(Ras al-Khair) 시설은 세계에서 가장 큰 담수화 시설이다.

아카이크 공격으로 원유 생산량이 반으로 줄어들었지만 이 시설이 타격 받을 경우 사우디는 당장 식수 조달에 문제를 겪게 되는 것이다. 사우디는 전체 물 공급량 중 70%를 담수화 시설을 통해 조달하고 있다. 원유 공급은 어느 정도 대처가 가능하다고 해도 물은 전략적으로 비축되어 있지 않다.

사우디의 주요 인프라 시설과 이란의 공격 능력. 자료: Center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
사우디의 주요 인프라 시설과 이란의 공격 능력. 자료: Center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
■이란발 지정학적 리스크 지속: 유가 하한선 상향 요인

공급이 단기간내 안정화될 것이라는 사우디의 발표에 유가는 재차 하락했다. 변동성도 안정화되는 모습이다. 하지만 아직 유가가 공격 이전 수준까지는 복귀하지 못한데다 사우디의 CDS 프리미엄은 오히려 상승세를 이어갔다.

사우디 아람코의 채권 가격도 완전히 회복을 못한 상태다. 고조된 지역 내 지정학적 리스크에대한 프리미엄을 반영하고 있는 모습이다. 해당 프리미엄의 추가 상향 가능성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한국투자증권 김성근 애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