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글로리 시니어 신춘문예 공모' 수필 부문 당선자인 구경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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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휘 기자] 요양원

짙어가는 가을향기는 무작정 나를 밖으로 이끌었다. 하늘의 새털구름은 에메랄드 빛 바다 위, 물고기가 유영하는 듯하다. 바람 한 점 없는 날, 공기는 소리 없는 무성세계를 유유히 떠다니는 듯하다. 스치는 풍경 속에 예쁜 카페와 고급스런 식당 건물들이 그림 속에서 불쑥 튀어 나온 것 같다. 그 사이로 드문드문 밋밋한 무채색 건물이 시야를 빠르게 훑고 지나친다. 예전이라면 깊은 산속에 있을 법한 건물들이 만추의 공기만큼 쓸쓸히 자리하고 있다. 늘어난 기대수명으로 조금만 시가지를 벗어나도 요양원 간판을 쉽게 볼 수 있다. 회색건물은 인연의 끝자락을 암시하는 것 같아 가슴 한 구석에 찬바람이 인다. 나뭇가지의 마지막 잎새처럼 쇠락의 쓸쓸함이 더욱 을씨년스럽다. 거부하고 싶은 눈앞의 현실은 이제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는다. 머지않은 시간 한 모퉁이를 지나야 할 우리의 막막한 여정일지 모른다.

아침에 일어나면 여기저기 불편한 세포들이 삐쭉삐쭉 고개를 내민다. 몸이 그전 같지 않다고 생각되자 무기력을 동반한 허탈감으로 의욕이 상실되는 것 같다. 생로병사의 자연스런 순리를 모르지 않으나 어쩐지 외면하고 싶은 본능은 인간의 한계 때문일까. 자연의 쇠락은 인간도 예외일수 없다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일 나이를 잊을 때가 많다. 아름답게 늙는다는 말은 정말 가능한 것일까. 나이가 들수록 정신과 육체의 힘이 빠져나가는 느낌을 받게 된다. 고통스런 허무감이 찾아오더라도 아프면 아픈 대로, 늙으면 늙는 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자연의 섭리에 잘 부합하는 삶이 아닐까. 쇠락하는 시간에도 행복이 스며있다는 진실을 믿기에 살아갈 수 있는 것 같다.

십여 년 전, 아버님은 치매 진단을 받았다. 처음에는 가벼운 건망증 정도라 일상생활에 별 무리가 없었다. 지극한 어머님의 보살핌 덕에 오랫동안 건강한 삶을 이어갈 수 있었다. 세상에 가장 공평한 것이 있다면 시간에 장사가 없다는 것이다. 아버님은 조금씩 가까운 기억을 잃어 가며 지우개로 머릿속을 차근차근 지워가고 있었다. 나날이 증상은 악화되어 밤낮으로 먼 기억을 쫓아다니며 가까운 사람을 지치게 했다. 긴 세월을 함께 한 어머니의 눈물겨운 정성도 급기야 한계를 드러냈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막다른 골목에서 선택의 여지가 보이지 않았다. 어머님은 맥없이 손을 놓을 수밖에 없는 절망적인 상황을 맞았다. 결국, 인정하기 싫지만 그것 역시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기로 하셨다. 체념 외에 별다른 방법이 없는 암담하고 무미건조한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습관처럼 일상도 반복되면 모든 것에 익숙해지게 마련인 모양이다. 다행인지 아버님은 요양원 생활은 그럭저럭 잘 적응하고 계셨다.

평생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않으시던 무덤덤하고 과묵하신 당신이 어느 날, 안부전화를 하셨다. 목소리는 어눌하긴 해도 생기가 도는 희미한 의식이 느껴졌다. 절박한 상태는 아니라는 믿음이 들었고 안도의 한숨이 가슴을 쓸어 내렸다. 그 후 며칠이 지났다. 늘 있던 일이 아니기에 또다시 걸려온 아버님의 전화에 의아했다. 하지만 멀어지는 기억을 찾거나 잃어버린 기억이 잠깐 되살아나는 증상의 하나쯤으로 여기고 무심히 지나쳤다. 금세 잊혀지고 한동안 연락이 뜸해졌다. 시간은 예외 없이 흐르고 있었다. 궁금하던 차에 깊은 밤에 한 통의 전화벨이 울렸다. 고요한 일상의 침묵이 산산이 부서지고 머릿속이 백지장이 되었다. 아버님은 이미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고 계셨다. 내 안에서 무언가 녹아내렸고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늘 그 자리에 존재하는 공기처럼 무신경하게 지나쳤던 일상이 지워지지 않을 후회로 남을 것 같다. 이래서 사람은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어리석은 존재인가 보다. 새장의 새처럼 삶이 자유롭지 못한 곳. 삶이 허락지 않아 어쩔 수 없어 내 의지가 아닌 채 선택된 곳. 막다른 골목에서 더 이상 방향을 잃고 헤매지 않아도 되는 곳. 그 곳에서 내가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슬픈 현실이 허허롭기만 하다. 삶은 현실적인 생계를 외면할 수도 없고 일상생활의 한계에 다다른 부양도 막막하기만 하다. 두 갈래 길에서 서성이지만 그 어느 쪽을 택해도 가슴에서 찬바람이 인다. 결국 삶은 모든 것을 결정해 버리는 생존본능 앞에 무너진다.

자식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스스로 자처한 일이든 아니든 가족의 온기가 닿지 않는 곳은 두렵고 낯설기만 할 것이다. 세월은 무작정 부모님 곁을 지켰던 부양이 이제 무색해졌다. 사람마다 처한 환경이나 형편이 달라 누구의 탓이라고 할 수 없어 그 막막함이 부유하는 먼지처럼 어지럽다. 아직은 요양원은 그 이름만으로 발끝에 매달린 돌덩이처럼 무겁고 빈터에 뒹구는 갈잎마냥 쓸쓸하다. 길어진 수명 뒤에 보이지 않는 짙은 그림자는 감당해야 할 고뇌로 다가와 가슴이 착잡해진다. 이제 되돌아올 수 없는 인생의 여정은 자식들 가슴속에 추억의 꽃으로 피어날 것이다. 기억의 저 너머에서 긴 세월을 서성이다 가을 단풍 한창 곱게 물든 날, 마음의 안식처를 찾아 먼 여행을 떠나는 당신의 뒷모습이 짙푸른 하늘 속으로 멀어지고 있다.



정병휘 기자 news@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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