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글로리 시니어 신춘문예 공모' 동화 부문 당선자인 송자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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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휘 기자] 귀신은 마음속에

눈을 비비고 일어났을 때는 햇살이 문풍지를 뚫고 있었다. 소쩍새의 울음이 햇살처럼 길다. 노란 햇살은 정말 길었다. 문풍지를 통과한 햇살은 긴 대나무처럼 맞은편 벽에 걸쳤다. 기지개를 켜는 나의 손바닥에도 햇살이 박혔다.

“나무 실으러 가는데 같이 갈래?” 나는 그 소리에 후다닥 일어나 눈을 비볐다. 눈곱이 눈 주위에서 떨어지기 싫은가 보다.

“세수는 해야지.”

삼촌의 서두르는 목소리에 밖으로 뛰쳐나갔다. 찬물에 눈까풀을 문지르며 고양이 세수를 했다. 삼촌은 마차를 손보고 있었다. 바퀴를 살펴보고 조청보다 더 끈끈한 검은 기름을 바퀴의 축에 발랐다.

“밥 밥 밥.”

서두르는 나에게 고모는 씽끗 웃었다.

“우물에 가서 숭늉을 찾으려니?”

밥상에 반찬들이 차려지고 숟가락이 식구들의 앞에 놓였다. 검은 무쇠 솥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오르고 있다. 뜸을 들이라는 신호이다. 고모가 아궁이의 붉은 숯들을 고무래로 끌어냈다. 보나마다 화로로 옮겨질 것이다. 그리고 된장찌개는 화로 위에서 김이 조금 빠진 사이다의 거품처럼 보글거릴 것이다. 마치 추녀 밑으로 떨어져 원을 그리며 튀어 오르는 낙숫물처럼…….

숟가락들이 다시 부엌으로 돌아갔을 때 마차는 소를 앞세우고 느릿느릿 집을 나섰다. 초가집 지붕위로 내리는 햇살은 점점 더 포근해지기 시작했다.

“올 해는 학교에 가야지.”

소 궁둥이 가까이에 앉은 나에게 삼촌이 말했다.

‘학교? 안 되는데’

“사월부터는 학교에 가야지.”

“학교는 무슨 학교.”

작년부터 학교에는 안 간다고 했다. 학교에 가면 소와 놀지도 못하고 마차도 마음대로 못 탈 것이다. 마차가 동구 밖을 나서자 꾀꼬리의 소리가 더 요란해졌다.

‘담배 밭에 조도령, 담배 밭에 조도령’

마차가 삐거덕 삐거덕, 덜컹 덜컹하며 요란하게 움직인다. 소의 발걸음처럼 느리게 움직여도 골짜기를 따라 나무가 지나가고 밭고랑이 지나가고 산 봉오리도 지나간다.

햇살이 우리를 따라오다 모습을 감추었다. 햇살은 우리를 계속 따라오기가 힘든가보다. 골짜기를 돌때마다 따라오다 멈추고 따라오다 멈췄다. 그 곱던 벚꽃이 지고 그 붉은 진달래도 싱싱함을 잃었다. 이 산 저 산 이 골짜기 저 골짜기에는 새로 피어나는 잎들이 연둣빛을 안기 시작했다. 꼭 돌을 막 지난 아기의 엉덩이처럼 예쁘다.

삼촌과 소는 이런 아름다움을 아는지 모르는지 발을 나란히 하고 앞서간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서로 말은 없어도 박자가 잘 맞았다. 다만 마차의 떠들어대는 소리만 더 커지고 요란하다. 남산박골을 지났다. 큰 말림을 지났다. 넙티에 이르는 동안 햇살은 숨바꼭질을 계속했다. 박새, 솔새, 할미새, 종달새들의 인사가 이어졌다.

소가 가던 길을 멈췄다. 마차도 가던 길을 멈췄다. 소의 휴식을 위해 마차기 분리되었다.

“다 왔다. 여기서 기다려.”

삼촌은 짧은 말을 남기고 아침보다 짧은 그림자와 함께 산속으로 들어갔다. 햇살이 앞산을 재빠르게 넘어왔다. 골짜기를 도는 동안 보이지 않더니 있는 발걸음을 빨리 했나보다. 소는 머리를 들어 고갯짓을 하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햇살에 몸을 맡긴 채 두 눈을 감고 새김질을 한다. 귀에 앉은 파리를 쫓아내 듯 조용히 귀를 흔들었다. 워낭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절간보다 더 조용하다. 햇살도 자리를 옮겨갔다. 주위가 갑자기 어두워졌다. 내 그림자가 없어졌다. 마차에 기대고 있던 큰 나무의 그림자도 없어졌다. 머리가 멍해졌다. 그리고 서서히 무서운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소를 쳐다보았다. 조용히 눈을 감고 가끔 꼬리를 좌우로 흔들어댈 뿐 움직임이 없다.

“삼촌 삼촌, 삼초온 ……”

잠시 후 삼촌이 돌아왔다. 몸을 구부린 등짝 위로 나무 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삼촌의 몸집보다도 훨씬 컸다.

“또 갖다 올게. 소와 함께 놀고 있어.”

삼촌이 왔던 길로 다시 사라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햇살이 머리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눈이 부시다. 심심해지기 시작했다. 삼촌이 나뭇짐을 지고 왔을 때보다 더 조용하다. 삼촌이 올 때가 훨씬 지났다. 삼촌을 부르기로 했다.

“삼촌 삼촌, 삼초온 ……”

대답이 없다. 느림뱅이 소쩍새의 울음도, 꾀꼬리의 울음도 없다. 솔새, 박새, 할미새들의 움직임도 사라졌다. 점차 무서워지는 마음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달걀귀신이 내 발밑으로 다가온다. 산발머리를 한 귀신이 긴 손톱을 올린 채 다가온다.’

무덤 속에 있던 죽은 사람의 발이 나와 내 발을 걸어 넘어뜨린다.’

무서운 생각들이 떠올랐다.

삼촌이 작은 그림자를 감추며 사라진 숲속으로 발길을 옮겼다. 발길의 방향을 따라 가자 점점 숲속은 어두웠다. 이어지듯 끊어지듯 한 좁은 길을 따라 나뭇가지를 헤치면 조금 들어갔다. 그때였다. 갑자기 앞에서 ‘푸드드득, 꿩꿩’하며 큰 새가 나뭇가지를 뚫고 날았다.

“아악 으으.”

나는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감자기 식은땀과 함께 마음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발걸음을 되돌렸다. 큰 나무 밑으로 들어서자 머리 위에 있던 해님이 갑자기 사라졌다. 주위가 갑자기 어두워졌다.

‘으음’

삼촌이 다른 길로 갔을지 모른다. 발걸음이 빨라졌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등골이 싸늘해졌다. 팔을 내두르는 내 뒤로 무엇인가 나를 따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빠른 발걸음으로 길 입구에 도달했다. 그냥 주위가 조용하다.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삼촌은 없었다. 마차와 나뭇짐과 소만 자리를 지키고 있다. 구름이 점점 짙어지고 주위는 전보다 더 어두웠다.

‘안 되겠다.’

점점 더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마냥 기다릴 수가 없다. 나는 집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도랑을 건넜다. 샘골 모퉁이를 돌 때는 더 무서웠다. 가파른 산비탈 위를 힐끗 올려보았다. 무엇인가 검은 물체가 나를 노려보는 것만 같다. 걷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몸이 더워졌다.

큰 말림에 이를 때였다. 무덤이 나타났다. 머리가 쭈뼛해졌다. 며칠 전에 아랫마을 동네 형이 말했다.

“야, 큰 말림 길가에 있는 무덤 있지.”

내가 머리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무슨 무덤? 없는데.”

“새로 생겼어. 열흘 전쯤 산 너머 젊은 사람이 죽었는데 다리가 불편한 사람이었대. 그 사람이 죽으면서 말했대. 내가 죽으면 묻을 때 불편한 다리는 무덤 밖으로 내밀어달라고.”

“왜?”

“내 다리가 이상하다고 놀린 사람들을 혼내주고 싶다고 말이야.”

“어떻게?”

“응, 내 무덤가를 지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다리를 내밀어 발을 걸어 넘어뜨려야겠다나.”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그런 게 어디 있어.”

“정말이야, 사기골 김장수 아저씨 있지. 아저씨가 밤에 거기를 지나오다가…….”

나도 다리병신을 놀린 적이 있었다. 강변에 살고 있는 나이 많은 여자였다. 그 사람은 늘 다리가 뚱뚱 부어 있었다. 그래서 종종 친구들과 놀렸다. 나 혼자서도 놀린 적이 있었다.

될 수만 있다면 무덤 근처를 피해 멀리 돌아가고 싶다. 그러나 그럴 수가 없다. 그렇게 하려면 길도 없는 산기슭을 올라 봉우리를 넘어 가야만 한다. 그곳을 넘어가는 것은 무척 힘들 것이다. 더구나 산 중턱에는 더 많은 무덤들이 있다.

무조건 앞만 보고 가는 수밖에는 없다.

‘거짓말이야, 그런 게 어디 있어’

무덤가를 지나며 손을 들었다. 왼손바닥을 펴서 왼쪽 눈을 가렸다. 절대로 무덤을 보지 않을 생각이다. 그러나 무덤을 지나치면서 슬그머니 곁눈질로 무덤을 보고야 말았다.

‘으으으’

언 듯 눈에 띈 무덤 봉분에는 정말로 다리가 하나 불뚝 솟아 있었다. 나의 발을 걸어 넘어뜨리려는 것이 틀림없다. 있는 힘을 다해 달렸다. ‘쉬쉬’ 소리를 내며 발 하나가 나를 따라오는 것 같았다. 남산박골을 향해 달렸다. 그곳도 무섭다. 그렇지만 지나치지 않을 수가 없다. 남산박골을 지나고 병풍박골도 지나쳤다.

그때 저 아래 길 개울가 모퉁이에서 사람이 보였다. 소가 보이고 지개도 보였다. 점점 가까워졌다. 사기골 김장수 아저씨다.

숨을 헐떡이며 멈춰 서서 허리를 굽혔다. 말을 할 수가 없다.

“뭐, 무슨 급한 일이라도 생겼니?”

“아뇨.”

“그럼 얼굴이 왜 그래.”

“무섭지 않으세요?”

“뭐가?”

“큰 말림에 있는 산소요.”

아저씨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산소가 뭐 어째서. 산소가 다 그렇지 뭐. 죽은 사람 집이지 않니.”

아저씨는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덤이 무서운가? 하기야 나도 어렸을 때는.’

아저씨는 소를 앞세우고 나를 지나쳤다. 아저씨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

‘분명히 형이 말했는데. 김장수 아저씨가…….’

개울가에 이르렀다. 두 손을 개울에 담그고 머리에 물을 끼얹었다. 미끈거리는 고무신도 벗었다. 발을 개울물에 담갔다. 그리고 벌렁 드러누웠다. 눈을 가리던 구름이 서서히 물러나고 햇살이 눈 안으로 들어왔다. 팔베개를 하고 두 눈을 감았다. 드디어 조용하던 적막이 깨졌다. 물소리가 ‘졸졸졸’ 귀를 간질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물소리가 잦아들었다.



정병휘 기자 news@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