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글로리 시니어 신춘문예 공모' 동화 부문 당선자인 유덕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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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휘 기자] 할머니는 오바보

문구점 옆 풀빵가게가 시끌벅적해요. 가게라고 하기에는 너무 허름했어요. 문구점과 옆 건물 사이 한 평 쯤 되는 곳에 천막을 치고 풀빵과 어묵을 팔고 있어요. 아이들은 학교를 마치면 풀빵과 어묵을 사먹었어요.

“얼마야?”

무성이는 풀빵 여섯 개를 먹고 할머니에게 물어보았어요. 할머니는 대답도 없이 씩 웃기만 했어요.

“얼마냐고?”

무성이가 큰소리로 말을 하자 할머니는 오백 원짜리 동전을 들어 보였어요.

“오백 원?”

무성이는 오백 원짜리 동전을 할머니 옆에 있는 소쿠리에 던졌어요. 할머니는 오백 원짜리를 얼른 주워 빨간 돼지저금통에 쏙 밀어 넣었어요.

“오바보 멍청이. 메롱.”

무성이는 검지손가락으로 입술 옆을 누르고 혀를 쑥 내밀었어요. 할머니는 그래도 좋다고 싱글벙글 웃기만 했어요. 아이들은 할머니가 늘 웃기만 하고 오백 원짜리를 좋아해서 ‘오바보’라고 불렀어요.

할머니는 가게에서 십칠 년째 풀빵과 어묵을 팔고 있어요. 할머니 옆에 빨간 돼지 저금통도 늘 함께 했어요. 동전이 들어가는 기다란 구멍은 옆으로 벌어지고 너덜너덜 했어요. 구멍 옆에는 밀가루 반죽이 덕지덕지 붙어 있어 오물을 뒤집어쓴 돼지 같았어요. 할머니는 날마다 돼지 저금통을 들어 보았어요. 겨울이 다가올수록 무거워지는 돼지 저금통을 보며 흐뭇해했어요. 할머니는 저녁 일곱 시가 되면 가게 문을 닫고 집으로 들어갔어요. 빨간 돼지 저금통을 가방에 넣고 다리를 절룩절룩하며 걸어갔어요. 할머니가 걸을 때마다 동전들이 찰그랑찰그랑 소리를 냈어요.

“야, 수민이 할머니 바보지?”

“수민이 할머니는 말도 못 해. 다리도 절뚝거리고 바보 같이 웃기만 한다니까.”

수민이가 교실로 들어오자 아이들이 수군거렸어요.

“내가 저번에 풀빵을 여섯 개 먹었는데 오백 원만 받더라. 여섯 개 천원인데. 오백 원 밖에 몰라.”“그러니까 오바보잖아. 킥킥.”

수민이는 눈물이 나오려는 걸 억지로 참았어요. 수업시간 내내 할머니 얼굴만 떠올랐어요. 수업이 끝나고 교문 앞으로 나왔어요. 문구점 옆을 지나갔어요. 일찍 수업을 마친 아이들이 할머니 가게에서 풀빵과 어묵을 사먹고 있었어요. 수민이는 할머니 얼굴을 보지 않으려고 땅만 쳐다보고 뛰어갔어요.

“야, 진수민 너 왜 그냥 가냐? 오바보한테 안 가냐?”무성이가 뒤따라오며 불렀어요. 수민이는 못 들은 척 더 빨리 뛰어갔어요.

“왜 창피하냐? 너도 가서 풀빵 팔아 야지. 큭큭.”

수민이는 주먹을 불끈 쥐었어요. 돌아서서 무성이 얼굴을 한 대 때려주고 싶었어요. 하지만 꾹 참고 집으로 갔어요. 무성이는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는 수민이를 괴롭혔어요. 할머니에게 오바보라고 별명을 붙여준 것도 무성이였어요. 집에 온 수민이는 방바닥에 벌렁 드러누웠어요. 누렇게 빛바랜 천장만 뚫어지게 쳐다보았어요.

“수민아, 할미 왔어.”

풀빵을 다 판 할머니는 불 꺼진 방문을 열고 들어왔어요. 수민이는 할머니를 기다리다 그대로 잠이 들었어요.

“날도 추운데 이불도 안 덮고 자고 있어. 그러다 감기 들면 어쩌려고.”할머니는 장롱에서 이불을 꺼내 수민이를 덮어 주었어요. 가방에서 빨간 돼지 저금통을 꺼내 앉은뱅이 책상 위에 올려놓았어요.

“아가, 저녁 먹었어? 할미가 냉장고에 햄 구워 났는디.”

할머니는 냉장고 문을 열고 구워놓은 햄 접시를 꺼냈어요.“야가 밥도 안 먹고 자고 있네. 아가, 밥 먹고 자자. 응?”수민이는 못 들은 척 장롱 쪽으로 돌아누웠어요. 할머니는 수민이 어깨를 흔들었어요.

“얼른 일어나봐.”“······.”

“얼른 일어나라니까.”

“나 밥 안 먹어.”“뭐라고? 크게 말해야 알아듣지. 할미 보고 이야기 해.”

“배 안 고파.”“할미 보고 이야기하라니까. 뭐라고 그랬어?”

“할머니 혼자 먹어.”“야가, 오늘 왜 이런데. 얼른 한 숟갈만 먹자.”할머니의 성화에 수민이는 겨우 몸을 일으켰어요. 할머니는 햄 구운 거랑 된장찌개, 김치를 꺼내놓고 밥을 펐어요.

“할머니···.”

할머니는 수민이 얼굴만 뻐금뻐금 쳐다보았어요. 수민이는 밥그릇을 넋 놓고 쳐다보았어요.“할머니···. 할머니는 왜 오백 원짜리만 좋아해?”

“뭐? 오백 원이 어쨌다고?”“왜 오백 원짜리만 좋아하냐고?”

“오백 원이 좋다고?”“왜. 오. 백. 원. 만. 좋. 아. 하. 냐. 고?”

수민이가 큰 소리로 또박또박 말을 하자 할머니는 그제야 알아들었어요.

“아니여, 할미도 천원도 좋고 만원도 좋아.”

“그런데 왜 오백 원만 받으면 싱글벙글 웃고 그래?”

수민이는 할머니를 쳐다보며 천천히 이야기했어요.

“오백 원을 받아야 돼지 저금통에 넣을 수 있잖아.”

할머니는 어렸을 때 무척 가난하게 살았어요. 너무 가난해서 하루 한 끼 먹는 것도 힘들었어요. 힘든 살림에 초등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했어요. 할머니는 잘 듣지를 못했어요. 9살이 될 무렵 감기에 걸려 열이 너무 심하게 나 한쪽 귀를 듣지 못하게 되었어요. 그 후 다른 쪽 귀도 크게 말을 해야만 알아들었지요. 할머니의 왼쪽 다리는 오른쪽보다 가늘고 약간 짧았어요. 할머니는 소아마비에 걸려 한쪽 다리를 절뚝거리고 걷게 되었지요. 돈이 없어 예방접종을 할 수가 없었어요.

할머니의 엄마는 돈을 벌어 온다며 집을 나갔어요. 하지만 할머니의 엄마는 단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어요. 아빠와 단둘이 어렵게 산 할머니는 커서 어려운 아이들을 도와주기로 마음먹었어요. 돈이 없어서 할머니처럼 병원에도 가지 못하는 아이들이 생기지 않길 바랐지요. 할머니는 아빠가 죽고 혼자 남게 되자 돈을 벌기 위해 안 해본 일이 없었어요. 할머니는 결혼도 하지 않았어요. 할머니의 예쁘장한 얼굴을 보고 관심을 가진 남자들은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고 다리도 절뚝거리는 모습을 보고 모두 떠났지요. 할머니는 열심히 일해서 작은 집도 하나 마련했어요. 비록 산비탈에 있는 방 하나에 부엌 하나 딸린 집이었지만 처음으로 가져보는 집이라 날아갈 듯이 기뻤어요.

그러던 어느 날 한밤중이었어요.

“응애, 응애.”

할머니는 갓난아기의 울음소리에 잠이 깼어요. 대문 앞에 포대기에 싸인 아기가 울고 있었어요.

“이게 뭔 일이래? 이 추운 날 누가 아기를 여기다 놓고 갔어?”

할머니는 아기를 안고 얼른 방으로 들어갔어요. 아기를 싼 포대기 안에는 편지지가 끼워져 있었어요.

‘아기의 이름은 진수민입니다. 태어난 지 한 달 조금 지났습니다. 잘 키워주세요’

편지를 읽은 할머니의 손이 덜덜 떨려 편지지가 파르르 흔들렸어요. 말도 잘 듣지 못하고 바르게 걷지도 못하는 할머니가 어떻게 아기를 키울 수 있을지 막막했어요. 아기는 따뜻해서 그런지 어느새 새근새근 잠이 들었어요. 그 뒤, 할머니는 불편한 몸으로 아기를 업고 가게에서 풀빵을 팔았어요. 아기는 고맙게도 아프지 않고 무럭무럭 잘 자라주었어요.

할머니는 수민이가 온 뒤 기부를 하기로 마음먹었어요. 하지만 풀빵 파는 것으로는 수민이를 키우고 생활비를 하기도 빠듯했어요. 할머니는 고민 고민하다 커다란 돼지 저금통을 하나 샀어요. 사람들이 풀빵 사고 돈을 줄 때 오백 원짜리는 무조건 돼지 저금통에 넣기 시작했어요.

“할머니, 왜 오백 원짜리는 돼지 저금통에 넣으세요?”

“그냥 오백 원짜리가 좋아서 그래요.”“어쩐다죠? 오늘은 오백 원짜리가 없네요.”“괜찮아요. 천원도 좋고 만원도 좋아요.”할머니 가게에 풀빵을 사러 오는 사람들은 일부러 오백 원짜리를 가져오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하지만 아무도 할머니가 왜 오백 원짜리를 돼지 저금통에 넣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어요.

“야, 오바보한테 가자.”“난 돈 없는데.”“괜찮아. 오바보는 오백 원만 있으면 돼. 바보같이 말도 못 하고 계산도 못 하잖아 ”

“그러게. 야, 진수민 네가 가서 팔아. 넌 계산할 수 있잖아.”무성이 녀석은 오늘도 수민이를 걸고넘어졌어요. 하루도 수민이를 괴롭히지 않은 날이 없었어요. 수민이는 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할머니가 풀빵 장사를 하는 게 창피했어요. 유치원 다닐 때는 할머니 가게에 잘 가지 않아 몰랐어요. 무성이와 같은 반이 되고 나서 친구들이 할머니 손녀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수업을 마친 수민이는 친구들이 다 가고난 뒤 천천히 나왔어요. 할머니 가게에서 멀찍이 떨어져 걸었어요. 그때였어요.

“오바보, 옛다! 오백 원.”

“야, 저거 봐. 오백 원을 주니까 좋아서 웃고 있잖아. 큭큭.”

“오바보는 바보래요. 오백 원 밖에 모른대요.”

무성이와 친구들이 할머니 가게에서 풀빵을 먹으며 놀렸어요. 풀빵이 구워지는 대로 날름날름 집어 먹었어요. 무성이는 다리를 절뚝거리며 가게 앞을 왔다 갔다 했어요. 할머니는 그저 벙싯벙싯 웃기만 했어요. 수민이는 창피해서 막 달려갔어요. 눈에서 흘러내린 눈물이 바람결에 휘날렸어요.

“할머니, 풀빵 가게 그만하면 안 돼?”

“왜? 아이들이 할미가 풀빵 장사한다고 놀려?”

“할머니가 제대로 계산도 못 하고 웃기만 한다고 놀리잖아.”“할미가 계산을 못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먹으라고 놔두는 거야. 아이들이 잘 먹어야 무럭무럭 크지.”

“그럼 돈을 제대로 받던가.”

“애들이 뭔 돈이 있어. 아가, 낼 할미랑 주민센터에 같이 갈까?”“거긴 뭐 하러?”

“글쎄, 가보면 알아?”

다음 날 할머니는 빨간 돼지 저금통을 들고 은행으로 갔어요. 돼지 저금통 밑에 붙인 테이프를 떼어내고 동전을 꺼냈어요. 동전 세는 기계 속으로 들어간 동전은 오십 만원이 넘었어요. 할머니는 연말이 되면 돼지 저금통의 오백 원짜리를 주민센터에 기부했어요. 그리고는 다시 돼지 저금통의 밑 부분을 테이프로 붙여 오백 원짜리를 모았지요.

“어서 오세요. 할머니, 올해도 어김없이 오셨네요.”

“야가 우리 손녀예요. 수민아 인사드려.”“어쩜, 손녀도 할머니를 닮아 예쁘기도 하네요. 이쪽으로 앉으세요.”

주민센터 사람들은 할머니에게 무척 친절하게 대해 줬어요.

“할머니, 잠깐 만요. 오늘은 손녀딸도 데리고 왔으니 기념으로 사진 한 장 찍을게요.”“아이고, 아니에요. 무슨 사진을 찍어요.”할머니가 손사래를 쳤지만 주민센터 사람들은 막무가내였어요.

“수민아, 방긋 웃어야지? 할머니도 방긋 웃어보세요?”수민이와 할머니는 어쩔 수 없이 웃으며 사진을 찍었어요.

“진수민, 앞으로 나오세요.”선생님이 신문지 한 장을 들고 수민이를 불렀어요. 수민이는 망설이다가 교실 앞으로 나갔어요.

“오늘 아침 신문에 수민이와 할머니 이야기가 나왔어요. 할머니는 그동안 돼지 저금통에 오백 원짜리를 모아서 연말에 기부했어요. 어렵게 살면서도 더 어려운 이웃을 도와준 수민이와 할머니에게 박수!”

모니터 화면에 수민이와 할머니가 활짝 웃고 있었어요. 수민이가 자리로 들어오자 무성이가 혀를 날름 내밀었어요. 수민이는 얼굴이 맑은 홍시 같았어요.



정병휘 기자 news@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