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글로리 시니어 신춘문예 공모' 동화 부문 당선자인 추순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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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휘 기자] 등받이 친구

나는 대봉이를 만나기 전까지는 늘 혼자였어요. 다른 아이보다 키도 작은 데다 팔다리가 짧아요. 그리고 크고 뭉텅한 내 코가 피에로를 닮았다고 친구들이 놀려요. 반 친구 중에 특히 쌍둥이 형제는 둘이 힘을 합쳐 나를 잠시도 가만두지 않아요. 그 애들은 같은 반이 된 후로 줄곧 나한테만 심술을 부렸어요.

“삐에로! 삐에로의 코는 마술코!”

“삐에로는 화가 나면 코가 빨갛게 변한대요.”

나를 화나게 하면 할수록 내 코끝은 더 빨개져요. 나는 쌍둥이들을 째려보며 소리쳤어요.

“그만해! 그만하라고!”

하지만 내가 반응을 할수록 쌍둥이들은 재밌다는 듯이 나를 더 놀렸어요.

“삐에로! 재주 한 번 넘어봐! 큭큭큭.”

“그래, 백 원 줄게. 넘어봐. 히히히.”

쌍둥이들이 100원짜리 동전을 나에게 던지면서 모욕을 줄 때만큼은 참을 수가 없었어요. 나는 쌍둥이들에게 달려가 주먹 쥔 양팔을 뻗어 쌍둥이들 배를 한방씩 갈겼어요. 쌍둥이들은 얼굴이 시뻘게진 채로 선생님께 다가가 일러바쳤어요. 수업 시작 전. 선생님은 화난 얼굴로 내게 말했어요.

“잘잘못을 떠나 폭력은 절대 안 된다고 했죠. 송재우! 자리에서 일어나 뒤로 나가서 수업을 듣도록 해요!”

쌍둥이들은 번갈아 나를 향해 이빨을 드러내며 히죽거려요. 짝꿍도 새침한 표정을 짓고 날 쳐다봐요. 나를 무척이나 싫어하듯요. 나는 화가 나서 남은 두 과목 수업을 망쳤어요.

하굣길에는 눈물이 펑펑 쏟아졌어요. 반 친구 중 단 한 명도 내 편이 없다는 게 야속해서였어요. 나는 눈물이 멈추지 않아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아파트 뒷길, 한적한 곳에 있는 의자에 앉아 훌쩍거렸어요.

“진짜 나빴어. 왜 자꾸 나를 놀리고 괴롭히는 거야. 흑흑.”

나는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혼자 중얼거렸어요. 그런데 그때 누군가 나와 등을 맞대고 앉으며 물었어요.

“왜 우니?”

나는 움찔 놀라 뒤를 돌아보았어요. 분명 내 또래 아이의 목소리였거든요. 그런데 내 등 뒤에 앉아있는 사람은 나보다 덩치가 큰 어른이었어요.

“왜 우냐고?”

등을 맞댄 사람이 내게 다시 물었어요. 나는 목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눈물이 쏙 들어가 버렸어요. 분명히 아이 목소리였거든요. 그것도 아주 씩씩한 남자아이요.

“누, 누구세요?”

등을 맞대고 있던 사람이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내 앞으로 왔어요.

“책가방에 쓰여있네. 2학년 2반. 그럼 아홉 살? 나도 아홉 살인데.”

나는 놀라서 입은 다문 채 눈만 껌뻑였어요. 어이없고 이상했으니까요.

“네가 놀라는 거 당연해. 누가 봐도 내 모습은 할아버지이니까.”

나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겨우 물었어요.

“할아버지 맞잖아요?”

“6개월 전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친 후로 아이 때의 기억만 남아있어. 난 타임머신을 타고 어린애로 되돌아갔다고 생각해. 이 비밀을 아는 사람은 함께 사는 가족들뿐인데, 너한테 특별히 말하는 거야.”

“왜 할아버지 비밀을 제게만 알려주시는 건데요?”

“너하고 친구 하려고? 온종일 혼자 노는 게 너무 지겨워. 너도 말할 친구가 없잖아.”

“난 할아버지와 친구 하는 거 싫어요. 집에 갈래요.”

“내 모습이 할아버지라 싫은 거지? 내게 좋은 방법이 있어. 서로 얼굴은 보지 않고 등을 붙이고 돌아앉아 말을 하는 거야. 그럼 내 목소리만 듣는 거지. 어때?”

할아버지는 내 뒤로 돌아가 나와 등을 맞대고 앉았어요. 그 의자는 둘만 앉도록 두 개가 맞붙은 의자였거든요. 그런데 내 몸이 이상해요. 마치 최면에 걸린 것처럼, 맞댄 등의 따듯한 기운이 날 꼼짝 못 하게 해요.

“알았어. 침묵은 대답이래. 이제 우린 비밀친구야. 내 이름은 오대봉. 네 이름은?”

“난, 송재우...요.”

“우린 친구잖아. 편하게 말해야 비밀친구가 될 수 있어! 서로 반말하는 거야.”

정말이지 내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어요. 진짜 내 또래와 말하는 것 같았거든요.

“아...알았어.”

그때부터 대봉이는 신이 난 목소리로 시시콜콜한 말들을 쏟아냈어요.

“내가 좋아하는 과일을 알려줄게. 난 망고를 좋아해. 무척 달콤하거든. 치즈가 듬뿍 뿌려진 피자도 좋아해. 동물 중에는 귀여운 토끼를 좋아해. 근데 토끼가 왜 깡충깡충 뛰는 줄 알아? 그건 앞발이 짧아서야. 짧은 앞발 때문에 잘 뛴다니 참 신기하지?”

꼭 다문 내 입술 사이로 웃음 큭 하고 튀어나왔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나도 마음속 말을 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렸어요. 어느새 나도 모르게 쌍둥이 형제한테 놀림당한 이야기를 털어놨어요.

“쌍둥이 녀석들 때문에 속상해. 툭하면 내 코를 갖고 놀리거든.”

“코는 숨 잘 쉬고, 냄새 잘 맡으면 된 거지! 혹시 걔들 콧구멍은 바늘구멍만 하지 않니? 냄새도 잘 못 맡고 킁킁거리고 말이야.”

그 말을 듣고 나는 깜짝 놀랐어요. 쌍둥이들은 정말 콧속이 꽉 막힌 것처럼 킁킁대면서 나를 놀리거든요. 나는 신이 나서 맞장구쳤어요.

“맞아! 그걸 어떻게 알았어? 걔들은 아마 냄새도 못 맡을걸.”

“그것 봐. 어쩌면 걔들은 네 코가 부러웠는지도 몰라. 다음에 또 놀리면 그땐 주먹을 확 휘둘러봐.”

“때리라고? 안돼. 오늘 내가 주먹을 휘둘러서 선생님께 혼났어.”

나는 오늘 있었던 일을 다 이야기했어요.

“내 말은 때리지 말고 그냥 주먹만 확 높이 쳐들어서 네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보여주는 거야. 그리고 눈으로 말하는 거지. 주먹보다 더 무서운 게 사람 눈빛이거든. 그러면 겁나서 쩔쩔맬걸! 절대 때리진 말고.”

“그래, 때리면 괜히 나만 혼나.”

우린 서로 마음이 통했어요. 그리고 내 편이 돼주는 친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뿌듯했어요.

다음 날 교실로 들어서는 나를 향해 쌍둥이 형제가 또 놀렸어요. 나는 씩씩거리며 쌍둥이들 눈앞에서 주먹을 높이 쳐들었어요. 그러자 쌍둥이들이 어깨를 움찔했어요. 나는 주먹을 꽉 쥔 채 쌍둥이들을 매섭게 노려보았어요. 마치 싸움을 앞둔 호랑이가 눈빛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것처럼요.

“내 주먹이 운다. 울어!”

나는 주먹을 부들부들 떨면서 말했어요. 그러자 쌍둥이들은 책상 위로 우당탕 도망치며 한목소리로 소리쳤어요.

“아, 알았어. 알았어! 동전 던지지 않을 게!”

그 순간의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어요. 너무 짜릿한 쾌감을 느꼈거든요. 마음이 평화로워서일까요. 수업시간에도 선생님 말씀이 귀에 쏙쏙 들어왔어요. 마지막 4교시 수업을 앞두고 짝꿍이 불쑥 말해요.

“삐에로, 너, 용감해졌다.”

“앞으로 삐에로라고 부르지 마! 그리고 코는 숨 쉬고, 냄새 맡은 거지. 못생겼다고 놀림당할 일이 아니거든. 우리 아빠한테 물려받은 소중한 코라고.”

나는 짝꿍에게도 강한 눈빛으로 말했어요.

“뭐...래? 웃기..셔. 흥!”

짝꿍은 어이없다는 듯 콧잔등을 실룩거렸어요. 마치 고슴도치가 방향을 잃고 코를 실룩거리는 것처럼요.

학교가 끝나고 나는 등을 맞댈 친구에게 달려갔어요. 바로 대봉이 말이에요! 우리만의 비밀 의자에 대봉이가 벌써 와 앉아있었어요. 나는 조잘조잘 짝꿍의 버벅거린 말투를 흉봤어요. 말하면서도 어찌나 웃음이 나오는지 발을 동동 구르며 키득거렸어요. 대봉이도 따라 키득거렸어요. 왜일까요. 나는 문득문득‘대봉이가 내 수호천사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곤 해요.

하루는 대봉이가 불만을 쏟아냈어요.

“난 아홉 살인데, 가족들은 늙은이 취급만 해. 밥상을 따로 차려주고, 가족여행 갈 때 나보고 집 지키라고 하고, 주말에 집에 있으면 밖에 안 나간다고 투덜거리고, 가까이 가면 냄새 난다고 짜증을 내고. 날 이해해주지 않아.”

대봉이의 말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어요. 하지만 가족들이 돌봐 주지 않아 외로워한다는 건 알 수 있었어요. 가끔 나도 맞벌이하는 엄마와 아빠가 퇴근할 때까지 학습지를 풀면서 기다리는 게 정말 싫으니까요. 나와 같은 아파트에 사는 대봉이는 화가 나거나 외로울 때면 아파트 단지를 빙빙 돈다고 했어요.

“우리 아파트 단지 돌래?”

나는 대봉이와 맞댄 등을 떼고 몸을 돌려 실핏줄이 도드라진 대봉이의 앙상한 손을 잡으며 물었어요.

우리는 누가 봐도 손자와 할아버지 사이였어요. 하지만 우린 우정의 손을 잡고 아파트 단지를 두 바퀴나 돌았어요. 쌀쌀한 꽃샘바람이 불었지만 절대 잡은 손을 놓고 싶지 않았어요. 그때 서류 봉투를 손에 든 누나와 맞닥뜨렸어요.

“어머 선생님, 안녕하세요. 손자와 산책하시나 봐요? 저번에‘그림자 연극놀이’를 아주 재밌게 잘 봤다고 참석한 엄마들 칭찬이 자자해요. 어쩜, 어린아이 목소리 흉내를 잘 내세요? 다음에 또 한 번 공연 부탁드릴게요.”

깍듯이 인사하는 누나를 대봉이는 본척만척하는 것 같았어요. 나는 이상해서 고개를 갸웃거렸어요. 그런 나를 보며 대봉이가 씨익 웃으며 말했어요.

“사람을 잘못 보고 저러는 거야.”

그 순간 왜일까요. 나는 대봉이의 품에 와락 안겼어요.



정병휘 기자 news@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