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글로리 시니어 신춘문예 공모' 동화 부문 당선자인 한동옥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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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휘 기자] 아버지의 거짓말

못난이 나무에 노란 산수유꽃이 피었다. 꽃잎도 없이 뾰족뾰족 수술만 나왔다.

쌩쌩 바람이 부는 데도 봄이니까 따뜻한지 엿보려고 나왔나 보다.

벌써 4학년이 되었다.

교실도 선생님도 모두 낯설다. 왠지 눈치를 보게 된다. 새로 만난 선생님은 안경을 썼고 잘 웃으신다. 장난을 치는 것처럼 기다란 몽둥이를 흔들면서 재밌어한다.

빨리 집에 가고 싶은데 종례가 끝나질 않는다.

선생님은 설명을 마치고 중요한 종이를 나눠 주셨다. 바로 가정환경 조사서다.

자기 이름을 부르면 대답하고 종이를 받으러 나가야 한다.

이름을 부를 때마다 잘못한 것도 없이 가슴이 콩닥거렸다.

“한순옥.”

내 이름이다.

“네.”

큰소리로 대답했는데 입안에서만 맴돈다.

“한 순 옥.”

선생님은 더 크게 불렀다.

“네에.”

내가 들어도 내 목소리는 모기가 윙윙거리는 것처럼 작다.

앞으로 쪼르륵 달려갔다. 받아 든 종이에서 달리는 자동차 냄새가 났다. 이 종이는 구기거나 절대로 잃어버리면 안 된다. 반장이 일어섰다. 이제 종례가 끝났나 보다.

“차렷, 경례.”

반장은 낮잠에서 깬 소가 ‘음매’ 하는 것처럼 큰 소리를 냈다.

가방을 챙겨 은심이도 못 본채하고 허겁지겁 운동장으로 나왔다. 아카시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린 마른 씨주머니가 서로 부딪히며 ‘타라락’ 풍경소리를 낸다. 큰길을 지나 골목길에서 가방 속을 들여다봤다. 종이가 사라졌을까 봐 자꾸 걱정된다.

꼬불꼬불 한 미로 같은 골목길이 또 한 번 꺾이자 우리 집이 나왔다.

“헉헉. 엄마, 엄마.”

다급하게 악을 썼다.

“왜 그렇게 뛰어와. 무슨 일 있어?”

“엄마, 이거.”

“이게 뭐야?”

종이를 받아 든 엄마의 작은 눈이 동그래졌다.

“이건 아버지 들여야지.”

엄마는 읽지도 않고 얼버무린다.

이제부터 가정환경조사서는 엄마가 지켜야 한다. 엄마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엄마의 보물창고인 다락방에 보관하려는 것이다. 안심되었지만 아버지가 얼른 오셨으면 좋겠다. 몇 번이고 골목 끝을 내다보았다.

참새들이 요란하게 짹짹거리며 옆집 대추나무를 뚫고 날아갔다.

드디어 아버지가 오셨다. 나는 지우개 달린 새 연필을 들고 아버지 앞에 앉았다.

아버지는 종이를 휙 훑어보셨다. 사글세(월세), 전세, 자기 집이라고 쓰여 있다.

“자기 집”

아버지가 흐뭇하게 웃는다.

무슨 뜻인지 궁금하지만, 동그라미를 쳤다. 그리고 불러주지도 않았는데 텔레비전에 얼른 동그라미를 했다. 우리 동네에서 신기한 텔레비전이 있는 집은 별로 없다. 그래서 연속극을 할 때면 동네 사람들이 모두 우리 집으로 모인다. 사람들이 방안에 꽉 차 있으면 불편하지만 부러워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월급”

아버지는 참 똑똑한가 보다. 쓱 보고도 금방 답을 알려주신다. 내가 시험을 잘 보면 우쭐해지는 것처럼 아버지 기분이 좋아 보인다.

“선풍기”

나도 신이 나서 꾹 눌러 진하게 동그라미를 쳤다. 그리고 아버지는 사진처럼 움직임이 사라졌다. 얼마 후 아버지의 반쯤 감긴 눈동자가 갈팡질팡 흔들렸다.

“중졸”

너무 빠르게 불러 주셔서 알아듣지 못했다.

“뭐라고요?”

빤히 쳐다보며 씩 웃었다.

“중 퇴”

아주 천천히 작은 소리를 내셨다.

종이에는 초등학교 퇴학, 초등학교 졸업, 중학교 퇴학, 중학교 졸업 이렇게 대학교까지 있다.

“아부지! 중퇴가 어느 거에요?”

아버지는 느닷없이 버럭 화를 내셨다. 내가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왜 화를 내시는지 모르겠다. 눈물이 나오지 못하게 눈꺼풀에 힘을 주고 껌뻑거렸다.

“중학교 퇴학”

아버지는 목이 쉰 것처럼 갈라진 목소리를 내셨다.

다음날

선생님께 가정환경조사서를 무사히 제출했다. 선생님은 가정환경조사서를 들춰보시면서 흥얼거리셨다. 그리고 일일이 아버지 학력을 공개했다. 친구들 아버지는 모두 대학을 나왔나 보다. 그냥 부럽다. 선생님의 신이 난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 은 심, 대학교.”

‘할아버지 같은 은심이 아버지도 대학을 나왔네.’

우리 동네 사는 은심이는 어른 같은 오빠가 다섯 명이나 있다. 은심이는 아기 때 한약을 먹고 바보가 됐다고 한다. 친구들은 은심이가 공부를 못한다고 놀아주지 않는다. 하지만 은심이는 핀 따먹기도 잘하고 고무줄놀이도 잘한다.

은심이는 착하고 나를 좋아한다. 그래서 나하고만 논다.

“다음 고등학교 나오신 분.”

아무리 기다려도 내 이름은 없다.

아니, 제발 안 불렀으면 좋겠다. 노래를 부르듯 신이 난 선생님이 멈칫거렸다.

“한순옥, 중학교 퇴학.”

선생님은 힘찬 소리로 또박또박 말씀하셨다.

“이상 끝. 하하하.”

짓궂은 웃음소리가 귀가에서 메아리쳤다.

우리 반 어떤 아버지도 중학교 퇴학은 없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떨구고 몸을 움츠렸다. 모두 나를 흉보는 것만 같다. 웃음소리도 들렸다. 너무 창피해서 숨고 싶다. 선생님을 미워하고 싶진 않다. 그냥 큰 잘못을 한 것처럼 내 얼굴이 붉게 물들고 말았다. 처음으로 은심이가 부러워졌다.

선생님 말씀이 더는 들리지 않고 머리에서 윙윙 소리가 났다.

‘아버지는 중학교 몇 학년까지 다녔지?’ 궁금해졌다.

그래도 1학년보다는 3학년이었으면 좋겠다.

쏜살같이 집으로 달려갔다. 마루에 웅크려 앉아서 꼼짝하지 않았다. 복실이도 내 맘을 아는지 멀뚱히 나만 본다.

차가운 바람이 으슬으슬 떨리게 했다. 뭔지 모를 서러움이 몰려왔다.

퇴근해 오신 아버지는 나를 반갑게 다독였다.

“순옥아, 공부 열심히 했어?”

아버지는 내 속도 모르고 기분이 좋은가 보다.

“아부지. 그런데 몇 학년까지 다녔어요?”

눈을 치켜뜨고 따지듯이 물었다.

기분 좋던 아버지는 갑자기 표정이 굳어졌다.

와락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아서 더는 묻지도 못했다. 저녁밥도 먹기 싫다. 내 마음도 몰라주는 아버지가 밉다.

벽을 보고 누워 있다가 잠이 들었다. 잠결에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당신 잘못이 아니잖아요.”

목멘 엄마 목소리다.

“너무 가난하게 살았지. 초등학교라도 다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깜짝 놀라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아버진 학교를 하나도 안 다닌 거야?’ 정신이 말똥해졌다.

“그래도 당신은 글도 다 알잖아요.”

“그럼 뭐해. 중학교 다녔다고 거짓말이나 치고.”

“순옥이 창피하지 말라고, 그런 거잖아요.”

엄마 목소리가 점점 슬프게 들렸다.

“해도 뜨기 전에 소 꼴 베어 놓고 학교 가려다가 끌려와서 죽도록 일만 했지. 그래서 우리 순옥인 대학까지 가르치려고 이렇게 열심히 사는 거지.”

아버지의 서글픈 넋두리가 이어졌다.

나는 잠에서 깬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숨소리를 삼켰다.

캄캄한 밤인데도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았다. 아침밥도 먹지 않겠다고 떼를 썼다.

“엊저녁도 굶었잖아.”

엄마는 내 이마에 손을 짚고 얼굴 가득 근심으로 찌푸렸다.

엄마를 뿌리치고 은심이와 학교로 향했다.

“너는 좋겠다. 아버지가 대학교 나와서.”

풀죽은 소리를 냈다.

“아니야. 우리 아버지는 학교 하나도 안 다녔데.”

은심이는 아무렇지 않게 배시시 웃었다.

“뭐?”

“우리 큰오빠가 그러는데 옛날에는 학교도 없었데.”

“그런데 선생님이 대학교 나왔다고 불렀잖아?”

나는 가자미눈으로 은심이를 쏘아봤다.

“응. 히히 그렇게 말해야 사람들이 무시하지 않는데.”

은심이는 자랑하듯이 말했다.

“너네 아버지 글씨 쓸 줄 알아?”

“아니. 나처럼 잘 못써.”

“그럼 그거 누가 해줬어?”

“우리 큰 오빠가. 히히.”

은심이는 겅중거리며 웃었다.

나 때문에 중학교 다녔다고 거짓말했다는 아버지 생각이 났다.

차라리 은심이처럼 대학교 나왔다고 거짓말해줬으면 창피하지 않았을 텐데.

우리 아버지는 정말 거짓말을 못 하나 보다.

쪼금 거짓말하고도 겁나서 나한테 화만 낸다.

그래도 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거짓말도 해주고.

이번에는 내가 아버지를 한 번만 봐줘야겠다.

학교를 못 다닌 것도 거짓말을 한 것도.

아버지는 학교는 안 다녔지만 글씨도 잘 쓰고 책도 잘 읽는다.

모르는 것도 없다. 또 나를 엄청나게 예뻐한다.

아버지 대신 내가 열심히 공부해야겠다.

그리고 은심이처럼 용기 있고 솔직해져야겠다.

아버지가 학교를 안 다닌 것은 창피한 게 아니라고

저녁에 아버지한테 말해야지.

아버지가 세상에서 제일 좋다고.



정병휘 기자 news@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