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근 이야기
우리 식구 모두 두레반상에 둘러앉아
고기를 먹는다
문풍지 떨리는 단칸방 불빛이 한 참 밝다
이 달엔 만근을 했다고
오랜만에 아버지 얼굴이 불콰하다
막장 속 적막한 노동이 총총이 적힌 봉투를
아버지는 자꾸만 불빛에 비춰본다
어머니 외상값 갚으러 가는 길
검둥이도 꼬리를 흔들며 앞질러 간다
애경상회 할머니 찌뿌린 눈썹이 반달로 떴다
거스름 돈을 줄 때 쥐어 준 딸기젤리가
입 안 가득 황홀해서
나는 검둥이와 한바탕 뜀박질을 했다
몇 군데 더 돌며 외상값을 갚고
잔돈을 쥐고 집 앞에서 서성이는 어머니
초겨울 회초리 바람이 치마폭을 휘감았다
아버지는 벽을 향해 구부리고 잠들어 있었다
등뒤에서 그림자가 흘러나와
어둑하게 우리를 올려다 본다
어머니는 그림자의 눈치를 보면서 몇 번인가
빈 봉투에 손을 넣었다
정병휘 기자 news@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