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길
반신마비로 절룩대며 겨우 걷는 그는
종종 산책길에서 마주치는 이웃이다
잘 나가는 사업가였는데 이른 나이에 풍을 맞았다고
동네 어른들이 혀를 차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얼마나 세차게 그를 통과했는지
머리에서 발끝까지 흔들리지 않은 게 하나도 없다
허공에 나부끼는 깃발처럼 왜곡된 몸의 깃대를 부여잡고
오늘도 그는 걷고 있다
중심으로 간곡하게 그를 몰아가고 있다
한때는 그도 바람을 몰고 다녔을 것이다
더 센 바람을 일으켜 가벼운 것들을 튕겨내기도 했을 것이다
안으로 불어 닥친 바람의 무게 이기지 못하고
가볍게 여긴 쪽으로 몸이 쏠리고 만 것이다
이제 그에겐 그 어떤 것도 가볍지 않다
한 발을 내딛어 한 걸음을 모으는 억척
아득하던 곳에 다다르면 저 만큼의 생을 늘려가는 그에게
길은 바람을 터주고 있다
힘이 빠진 수족을 부축하는 느린 저 동행
커브도 막다른 골목도 둥근 직진뿐
걷고 또 걷다보면 기를 꽂을 수 있는 곳에 다다를 거라는
필생의 사명을 받은 것처럼
정병휘 기자 news@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