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경제 최형호 기자] 임대차 3법이 시행된 지 한 달이 돼가는 가운데, 기대보단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현재 서울 전세 값은 나날이 폭등하고 있고 이마저도 매물이 감춘 상태다. 전세매물이 사라질 것이란 위기론도 대두됐다. 설상가상 정부의 통계 시스템 또한 허점이 많아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핵심 통계인 가격 인상률에 왜곡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 데다, 갈수록 늘고 있는 전월세 전환 사례도 현황 파악이 전혀 안 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호언한 임차인의 거주기간이 길어지고 잦은 이사로 인한 부대비용 감소 등 세입자의 거주권 보호가 개선될 것으로 기대한 것과는 분명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주택공급 수 증가뿐만 아니라 임대주택 보조책 등이 확대 병행돼야 관련 제도변화의 부작용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편집자>

정부는 1989년 임대차 보장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늘린 이후, 31년 만에 최대 4년으로 확대하는 임대차 3법을 지난달 국회 통과시켰다. (글로벌경제신문DB)
정부는 1989년 임대차 보장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늘린 이후, 31년 만에 최대 4년으로 확대하는 임대차 3법을 지난달 국회 통과시켰다. (글로벌경제신문DB)

□ 31년 만에 법 개정…임차인 안정 취지완 달리 시장은 '대혼란'

정부는 1989년 임대차 보장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늘린 이후, 31년 만에 최대 4년으로 확대하는 임대차 3법을 지난달 국회 통과시켰다.

현행법에도 묵시적인 계약 갱신이 가능하지만, 명시적인 계약갱신청구권을 도입해 특정한 사유가 없는 한 임대인이 이를 거절하지 못하고 종전세입자와 재계약하도록 한 셈이다.

정부는 임대차3법으로 인해 임차인의 거주기간이 길어지고 잦은 이사로 인한 부대비용 감소 등 세입자의 정주 안정성(거주권 보호)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정부 방침과는 달리 부동산 시장은 임대차3법을 두고 정부의 초강력 대책의 부작용이 드러났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 17일 기준 전국 아파트 전세가격은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임대차2법(계약갱신청구권제·전월세상한제) 시행과 재건축 거주요건 강화 등 영향으로 60주 연속 상승했다. 매물 부족 현상도 현재 진행형이다.

하지만 전세 계약 기간이 기존 2년에서 4년으로 늘어나고 보증금 인상률이 5%로 제한되면서 신규 계약 시 집주인들이 보증금을 올려 받고 있는데, 이런 추세는 당분간 계속될 수밖에 없어 전세난 심화 또한 제기된 상태다.

특히 임대차 3법 입법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7월 들어 서울 아파트 전세가 하위 40%에 속하는 전세 가격이 상위 20%에 해당하는 아파트보다 더 큰 폭으로 뛴 것으로 나타났다. 임대차 3법 시행과 맞물려 서울 공급물량까지 줄어들며 '전세난' 우려가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 서울 부동산 시장은 3억 원 이하의 중저가 전세가가 고가 전세보다 높은 상승 폭을 보이고 있다. 임대차 3법 시행이 오히려 서민들의 주거부담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 전세→월세 전환 가속화, 집주인 세입자 갈등 최고조

문제는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이 빠르게 확산되는 추세에 놓였다는 점이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에서 성사된 아파트 전세 계약은 6304건으로, 서울시가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11년 이후 처음으로 6000건대로 떨어졌다.

집주인 입장에선 전세를 유지하느니 약간의 보증금을 받고 반전세로 돌리거나, 월세를 받는 게 낫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전세의 월세 전환으로 인해 집주인과 기존 임차인과의 갈등도 더욱 심화되는 양상이다. 전세를 주느니 차라리 실거주하겠다는 집주인과 기존 세입자 간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다. 실거주하면 양도소득세 비과세와 감면되기 때문에 집주인 입장에선 전세를 주느니 실거주가 더 낫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반면 세입자는 나가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다. 임대료 인상률이 5%로 제한되자 이미 쓴 계약서를 파기하면서까지 다시 계약서를 쓰자는 세입자도 눈에 띄게 늘었다.

이런 진풍경 속에 전세물량은 계속해서 자취를 감추고 있다. 월세 혹은 반전세로의 전환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정부는 부랴부랴 전월세전환율을 기존 4%에서 2.5%로 낮추겠다는 뒷북 대책을 발표했지만 시장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실효성 면에서 의문부호가 달린다. 전월세전환율 규정이 강제력이 부족해 시장에서 잘 이행되지 않는 현실을 정부가 간과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김인만 김인만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전월세전환율은 권고사항인 만큼 집주인들은 이를 안 지켜도 된다고 생각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상징적인 조치에 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임대인 입장에선 세금도 늘어나고 임대기간도 늘어나고 수익도 줄어들어 전월세를 놓을 메리트가 점점 없어지게 된다"며 "결국 임대 공급이 줄어들게 되면 세입자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허술한 법 허술한 통계 시스템

정부의 통계 시스템 또한 허점이 많아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전월세 시장 전반에 대한 통계가 너무 허술하다는 것이다. 임대차법 시행 후 급격히 늘고 있는 월세 전환의 경우가 대표적인데, 한국감정원은 현재 전세 통계만 내고 있어 반전세로 바뀌는 거래의 숫자나 가격 움직임 등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전월세신고제 도입이 아직 안 된 탓이 크다는 분석이다. 내년 6월로 시행이 연기된 전월세신고제가 도입되기 전까지는 해법을 찾기 어려울 것이란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부 관계자 역시 "특정 항목에 가중치를 두는 식으로 보정은 가능하겠지만, 결국에는 신고제가 통계가 충분히 누적돼야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정부와 여당이 임대차법을 졸속 추진하면서 발생한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권대중 명지대학교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전셋값 인상률이 높게 나와 정책 효과가 반감되니까 이제 와서 개선방안을 찾겠다고 하지만 이미 제도 시행 전부터 예견됐던 문제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최형호 글로벌경제신문 기자 rhyma@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