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태환 원장.
안태환 원장.

 

개인적 소사 하나. 올해 봄날, 장범준의 노래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 향이 느껴 진 거야’를 통화 연결 음으로 설정해 두었다. 전화를 걸어오는 이들에게 재기 발랄한 노래 가사 대로 상큼한 향기가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계절의 흐름 따라 감성도 함께 흐르기에 대중가요를 '유행가'라 칭하지만 사람의 향기를 가사에 내재할 수 있다는 건 노래가 지닌 위대한 힘이다.

파트리트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는 18세기 유럽으로의 초대라 해도 과언이 아닌 작품이다. 소설 속 “존재하는 모든 것은 향기가 있다”라는 구절은 강렬한 문장의 가르침으로 다가섰다. 사람의 몸에서 품어져 나오는 향기가 호감과 반감을 결정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소설이다. 작품의 유명세만큼이나 영화로도 만들어져 흥행했다.

사람의 체취는 때론 관계의 행복을 결정하기도 한다. 임상적으로 일부분 확인된 사실이다. 우리는 어떤 사람에게서는 유난히 좋은 향기를 맡기도 하고 정 반대의 경험을 겪기도 한다. 인체의 코는 사람을 위시해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첫 만남에서 냄새를 인지해 뇌에 전달하고, 그에 대한 이미지를 각인시킨다.

그러고 보니 봉준호의 영화 ‘기생충’에서 기택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역겨워하던 동익의 대사는 “냄새가 자꾸 선을 넘는다”였다. 그랬다. 가난이라는 공기까지 바꿀 수 없었던 기택이 벽에 부딪힌 것은 냄새였다. 결국 기택은 냄새 때문에 코를 싸잡는 동익을 칼로 찌르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만다.

쥐스킨트의 ‘향수’도 그러했다. 아무런 체취가 없는 주인공 그르누이는 자신을 위한 완벽한 향수를 만들기 위해 젊은 여성의 향기가 필요했고, 살인자가 된다. 두 영화의 공통분모는 향기의 존재였다.

코의 후각에 관련된 표현은 대체적으로 부정적 어투로 소환된다. ‘콧대가 높다’, ‘손 안 대고 코 풀기’,‘눈 감으면 코 베어간다’와 같은 표현들이 그 경우이다.

그러나 사람의 오감 중 후각은 미각과 더불어 가장 정직한 감각이다. 때론 눈과 같이 굴절될 가능성이 애시 당초 없다. 그러하기에 후각은 부정적 이미지로 악용될 인체의 부위는 아니기에 이러한 속담에 차용되기에는 적절치는 않는 것 같다.

저명한 조향사 맥캘란 로자 도브는“사람들은 상대방의 옷이나 모자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20년이 지나도 향은 기억한다”라고 말한다. 여성 패션에 커다란 혁신을 불러일으키면서 패션 제국 ‘샤넬’을 이룩한 가브리엘 샤넬도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도 타인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는 최고의 액세서리는 향수다”라고 말한다. 지극히 맞는 말씀. 이들뿐 아니라 향기와 기억의 유의미한 상관관계는 뇌 과학 전문가들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사람들이 특별한 자리에 갈 일이 있을 때마다 자극적이지만 않다면 가볍게 향수를 뿌리는 일은 상대방이 나를 더 오랫동안 기억하길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인체의 코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다. 꽃이 아름다운 건 자태가 아니라 향기로 기억되기 때문이란 걸 믿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흠모해 마지않으며 평소 즐겨듣는 인디밴드 언니네 이발관의 ‘100년 동안의 진심’ 가사에는 “오월의 향기인 줄만 알았는데 넌 시월의 그리움이었어”라는 노랫말이 있다. 향기는 그렇게 계절의 깊이로 가늠해진다. 몹쓸 감염병으로 사람은 멀고 호흡은 가파르지만 마스크 너머 슬그머니 들어온 가을의 애수 속에 이 곡을 통화 연결 음으로 설정할지 살포시 고민해본다.

안태환 프레쉬이비인후과의원 강남본원 대표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