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태환 원장.
안태환 원장.

언제부터인가 종이 활자가 불편한 세상을 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날로 진일보하는 IT 기술은 게으름을 강요하기 일쑤이다. 굳이 책을 사러 서점에 가지 않아도, 굳이 신문을 읽지 않아도 손안의 이동전화는 알라딘의 요술램프처럼 신통방통하게 문화적 욕구를 채워주기 때문이다. 이런 세상을 살며 고리타분한 고전을 꺼내들기 난망하지만 여전히 고전의 지혜는 유효하며 향기롭다. 

중국 당나라의 정사로서 이십오사의 하나인 당서에는 ‘종신양로불왕백보(終身讓路不枉百步)’라는 글귀가 있다. 한평생 동안 계속 남에게 밭고랑을 양보한다 해도 잃은 것의 합계는 일단도 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겸양의 덕으로 처세하면, 잃는 것은 적고 얻는 것이 많음을 이르는 지혜로운 말이다. 쉽지 않으나 참된 인간의 길을 가고자 한다면 새겨들을 가치이다. 

축구선수 손흥민은 그 미덕을 젊은 나이에 깨우친 모양이다. 그가 뛰고 있는 토트넘은 얼마 전 치러진 유로파리그 조별리그 오스트리아 라스크 린츠와 맞붙었다. 토트넘의 득점 상황에서 페널티킥 키커로 내정된 손흥민은 같은 팀 선수인 가레스 베일에게 페널티킥을 양보했다.

득점에 성공한 베일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손흥민이 기꺼이 양보해 주어 행복했다"라며 고마움을 표했다. 이날 경기에서 맹활약한 손흥민은 실력만큼이나 인성까지 바른 선수라는 팀 내 평가와 팬들의 지지를 얻었다. 양보가 가져다준 선물이다.

교통체증으로 막힌 도로에서 구급차나 소방차가 지나갈 길을 터주는 양보의 현장은 이제 익숙하다. 양보하는 문화가 정착해 간다는 의미이다. 인명을 다루는 구급차에 있어서 일 분 일초는 말할 나위가 없는 소중한 시간이다. 소방차도 그러하다. 화재 발생 5분이 지난 뒤에는 1분이 늦어질 때마다 사람의 생존율이 무려 25%씩 감소하고 화재는 초기 진화에 실패할 수 있을 정도로 덩치를 키운다고 알려져 있다. 시민의 양보는 사회공동체를 안전하게 해준다. 

지금은 해소된 마스크도 코로나19의 초기에는 품절 대란을 야기했다. 정부가 공적 판매하는 보건용 마스크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이런 상황에 온라인에서 마스크가 긴급하게 필요한 사람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의 '마스크 안  사기 운동'은 우리 시민들의 성숙한 시민의식의 완결이었다. 

소셜미디어에는 마스크를 여유 있게 보유하고 있다면 당분간 구매하지 말자는‘마스크 안사기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꼭 필요한 이들에게 마스크가 갈 수 있도록 하자는 선한 취지였다. 코로나19가 확산하는 상황에서 보건용 마스크는 생존의 보루였지만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에서 자발적 양보의 미덕으로 '수요 줄이기' 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의사로서 이 같은 사회현상은 왜 우리가 의료 선진국으로 나아가는지 여실히 확인해 준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우리 몸은 신이 거하는 성전이라고 한다.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는 ‘우리 몸에 100명의 의사가 있다. 음식으로 고치지 못한 병은 약이나 의사도 못 고친다’라고 설파했다.

날로 기승을 부리는 코로나19로부터 가장 확실한 예방책은 우리 몸 안에 있는 자연 면역과 위생을 잘 유지하는 것이다. 그에 더해 백신과 도저히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력하고 부작용이 없으며 안전한 예방은 거리 두기 수칙을 준용하는 것이다.

큰소리로 승강기 안에서 통화하지 않는 배려, 자신의 몸에 이상이 느껴지면 지체 없이 선별검사소로 향하는 노력, 보고 싶은 이들과의 모임을 뒤로 하는 모든 노력이 개인주의적 일상을 뒤로하는 양보의 미덕이다. 양보는 팬데믹의 시대, 힘이 세다. 코로나19는 양보에 나약하고 개인주의에 가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