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태환 원장.
안태환 원장.

질기고 모진 감염병인 코로나는 대한민국 세밑 풍경마저 바꿔놓았다. 해마다 거리에서 들여오던 캐럴송과 구세군의 종소리는 읍소거 된 것 마냥 사라졌고 해질녘에는 정해진 시간에 집으로 향하는 신데렐라의 행렬이 이어진다. 초저녁 아파트 주차장은 퇴근한 차량들이 차고 넘친다. 외출은 갈 곳이 없고 외식은 엄두도 못 낼 일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코로나는 우리의 일상을 시나브로 봉쇄했다.
   
세계에서 인구 간 접촉 밀도가 가장 높은 우리는 일 년이 넘도록 지속된 코로나의 장기 지속에 극도로 취약한 국가이다. 그런 이유로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 생활 방역은 중차대하다. 5인 이상 집합을 금지할 만큼 봉쇄의 강도는 더더욱 가혹하다. 이 긴 어둠의 터널을 언제 즈음이면 건너갈지 가늠하기 어렵다.

영국에서는 전염력이 70%나 강한 코로나 변종 바이러스의 출현으로 세계는 출렁인다. 참으로 우울한 세밑이다.

사람과의 단절은 나 홀로 휴대폰을 보는 횟수를 늘게 한다. 마땅히 소일거리도 없는 이들에겐 연결이 가져다주는 일상 속 습관을 만족시킬 대체물이다. 그러나 그 속에는 체온이 없다.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외로워도 슬퍼도 이를 충족시킬 대안은 모든 이들의 과제가 되어가고 있다. 

217명 대규모 집단감염이 발생한 서울동부구치소에서 창살 밖으로 수건을 흔들며 ‘살려 달라’고 외치는 수용자들의 가슴 아픈 사진이 신문에 실렸다. 많은 시민이 목숨을 잃었거나, 입원을 기다리다 소중한 생명을 빼앗긴 일도 벌어졌다. 병상은 여전히 부족하고 의료진의 장시간 노동도 극에 달했다. 세계가 극찬한 ‘K방역’ 그 신화의 빛은 스멀스멀 바래지고 있다.  

인류가 목메어 기다렸던 백신이 개발되고 영국과 미국을 필두로 접종이 시작되었다. 중국과 러시아도 자국에서 개발한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 코로나가 만들어낸 어둡고 긴 절망의 동굴을 빠져나갈 수 있는 한줄기 빛이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의 블라디미르처럼 접종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 정부 발표대로라면 빨라도 내년 1분기에나 접종이 시작될 것으로 보여 지지만 백신 없는 겨울을 보내게 것은 자명하다. 긴 한숨이 나온다.
 
확산일로의 코로나에 불안이 커지고 있는 국민들에게 구체적으로 언제가 될지 어떤 방식으로 접종을 할지 누구 하나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마스크에 의지하며 봉쇄정책에 따라 각자도생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7월에 구성된 관중심의 태스크포스에만 의지한 채 모든 나라가 사활을 걸고 백신의 입도선매를 위해 고군분투할 때 확진자 백여 명 수준이라는 ‘K 방역’의 성과에 취한 느슨함이 불러온 결과이다. 

정부의 입장도 있을 것이다. 유효성에 대한 확신이 명확하지 않은 백신의 안전에 대한 삼고초려의 마음이 컸을 것이다.

그러나 접종을 시작한 미국은 이러한 위험요인을 감수하고 공격적으로 백신 개발 제약사 모더나에 1조 2000억 원의 연구개발 자금을 지원했다. 그 대가로 3억 도즈 선 구매가 가능했다.

만약 우리가 미국과 같은 방식으로 백신 계약을 진행했다면 논란의 대상이 됐음은 물론, 선 구매한 백신이 잘못됐을 경우 책임소재를 놓고도 사회적 논란이 불거졌을 것이다. 그러나 백신 확보는 공격적으로, 접종은 신중하게 진행하면 될 일이었다. 백신의 안전성에 천착하다 보니 각국의 백신 확보 전쟁에서 뒤처진 것이다. 국민의 생명보다 우선인 정책은 없지 않은가.  

이 질기도 모진 코로나를 사방에 두고 속절없는 시간은 성탄절을 목전에 두고 있다. 누군가에게 위로를 건네는 시간이기도 하다. 아니 위로받아야 되는 때이기도 하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던 철학자 하이데거의 말을 흠모하며, 국민들이여 외로워도 슬퍼도 ‘메리 크리스마스.’

가족과 친지를 코로나로 인해 잃은 사람과 아직도 병상에서 사투를 벌이는  환자들과 의료진에게도 마음 담아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