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위원 시인 장재선
심사위원 시인 장재선

 

응모작들을 읽는 내내 즐거웠다. 시어들의 울림이 지속적으로 가슴을 흔들었기 때문이다.

예측할 수 없는 상상력으로 읽는 이를 놀라게 하는 작품은 드물었다. 그러나 세상과 사람에 대한 웅숭깊은 시선을 적절한 언어로 표현한 수작들이 많았다. 이 시어들을 품어 안는 시니어 신춘문예가 있다는 것이 다행스럽게 여겨질 정도였다.

시를 사랑하여 시어를 조탁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희망이다. 극단적이고 공격적인 언어의 칼을 휘두르는 자들이 정치와 언론 영역에서 득세하는 세태에서 특히 그렇다.

이번에 선정되지 않은 분들도 꾸준히 시를 써 나가셨으면 한다. 그걸로 문명(文名)을 얻으면 좋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일상이 훨씬 풍성해진다는 것을 스스로 절감하셨을 터이니.

대상작인 전금례 씨의 물푸레나무 서식(書式)’은 독창적 시세계의 구축이 돋보인다. 내면에서 일렁이는 감정을 그림으로 만들고, 그것을 자신만의 율격에 얹었다. 부재로부터 오는 상실감을 받아들이고 다시 앞날로 가는 시기의 내면을 신선한 언어로 빚어낸 공력이 매우 빼어나다. 이번에 함께 보내온 정오의 연못’, ‘바늘의 말에서도 시어 조형력의 내공을 느낄 수 있었다. ‘두려움의 실체는 코로나 상황을 다루고 있는데, 시공을 넘는 상상력으로 뻔한 감상을 뛰어넘었다.

당선작인 저승꽃’(김병화 작)은 모둠살이에 대한 따스한 시선을 담은 작품이다. 이웃의 일상이 그대로 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지만, 그 안에 자연스럽게 담긴 언어 구축력은 만만찮다.

함께 보내온 작품들도 그 힘을 증명해준다. 읽는 이를 미소 짓게 한다. 공동체에 대한 애정을 담은 작품들은 특별한 새로움을 얻기 힘든데, 앞으로 그걸 넘어서리라 믿는다.

춘분 무렵’(정연숙 작)은 정제미가 뛰어나다. 황학산 고로쇠나무들의 모습을 통해 병원에 있는 노인의 투병을 그려냈다. 따스하면서도 감상에 빠지지 않은 언어가 미덥다. 긴 사설이 아닌 짧은 언어로 시를 만드는 솜씨가 비범하다. 같은 작가의 세한도를 보며’, ‘아버지 길’, ‘윤달등도 울림이 크다. 삶에 대한 성찰을 경구로 드러내려는 욕심을 이기면 더 좋겠다.

허기’(김재호 작)는 시예술의 전통적 특성을 품격 있게 구현했다. 간결한 언어이지만 풍성한 여운을 주고, 상상의 날개가 넓게 펼쳐진다. 시 교과서에 실릴만한 작품이다. 짧은 시로 긴 여운을 주는 것은, 함께 보내온 작품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처럼 정통을 품되, 누구와도 비견되지 않을 만큼의 독보적 세계를 만들어나갔으면 한다.

매화서옥도’(권순우 작)는 문화재의 풍정이 오늘의 세상에 드러나는 모습을 탁월하게 그려냈다. 말하듯이 서술하면서도 시어의 율격을 지켜낸 솜씨가 대단하다. 같은 작가의 삼척기행’, 들지기 2’도 당장 시집에 실어도 될 만한 작품이다. 문학 언어를 오랫동안 다뤄왔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교과서 류를 넘어서 권순우 류를 창조하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시인 장재선]

시인, 언론인. 국제펜, 한국시인협회 회원. 문화일보 문화부장, 사회부장 등을 거쳐서 현재 선임기자로 재직. 시집 <기울지 않는 길>, -산문집 <시로 만난 별들> 등 출간. 서정주문학상, 한국가톨릭문학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