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글로리 시니어 신춘문예'공모에서 단편소설 부문에 당선된 윤희웅씨.
'제2회 글로리 시니어 신춘문예'공모에서 단편소설 부문에 당선된 윤희웅씨.

 

꽝수 반점

 

나는 지금 글을 쓰려 한다. 글을 쓰기 위해 소설 창작 기법을 알려주는 책을 읽었다. 그 책들의 주된 이야기는 소설은 분명 허구이며, 있을 법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이 말은 소설이 현실에 있을 법한 이야기이지만, 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 그럼 시작 합니다. 내 직업은 동네 중국집 주방장이다. 이 말을 먼저 하는 것은 나는 글을 써야 먹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차피 내가 쓰려는 이 글이 나에게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이다. 바라건대 지금 내가 쓰려고 하는 이 글이 사실인지, 아니면 소설인지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들이 판단해 주시기 바란다.

 

우리 가게에 자주 오는 (확인을 못 했지만 본인 스스로 나름 유명하다고 함) 소설가는 항상 짬뽕 국물에 고량주를 먹었다. 만 오천 원짜리 짬뽕 국물을 꼭 만 원어치만 달라고 했다. 소설가는 짬뽕 국물보다 단무지와 양파를 더 많이 사랑했다. 오천 원짜리 작은 고량주 두 병을 다 먹으면 이 만 원을 컵 밑에 묻어 놓고 소리 없이 사라졌다. 어느 비 오는 늦은 저녁이었다. 비에 흠뻑 젖은 소설가가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머리카락에서, 눈썹에서, 코끝에서 물방울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영업시간이 끝나 신문을 뒤적이며 쉬고 있던 나는 잠깐 망설였다. 비에 젖은 소설가를 바라보다 나는 목에 걸린 수건을 그에게 건네줬다. 소설가는 빗물을 닦는 것인지, 눈물을 닦는 것인지, 수건에 한참 얼굴을 박고 있었다. 간혹 어깨를 들썩이던 소설가는 내 수건에서 쉰내를 맡았는지 이내 헛구역질을 했다. 소설가는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나를 바라보는 소설가의 눈빛에서 많은 말들이 굴비 엮듯이 줄줄이 나오고 있었다. 나는 소설가가 건네준 수건을 받아 다시 목에 걸었다. 그리고 버릇처럼 수건으로 겨드랑이를 닦았다. 내 모습을 바라보던 소설가는 한 번 더 헛구역질을 했다. 소설가는 그날 역시 만 원짜리 짬뽕 국물에 오천 원짜리 고량주 두 병을 시켰다. 소설가는 비 오는 창밖을 바라보며 고량주를 마셨다. 안주로는 짬뽕 국물과 가끔 흐르는 콧물을 훌쩍거리며 먹었다. 여전히 단무지와 양파를 사랑했다. 나는 컵에 이 만 원을 깔고 일어서는 소설가에게 탕수육과 삼만 원짜리 고량주를 서비스로 줬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들어보고 재미있으면 소설로 써 봐.

오늘부로 소설 쓰는 것을 그만뒀습니다.

나름 유명한 소설가라고 하지 않았어?

나름 유명한 소설가도 소설을 그만 쓸 수 있습니다.

오늘 무슨 일이 있는지 모르지만 술 한 잔 하면서 편하게 내 이야기를 들어보고 혹시나 생각이 있으면 소설로 써 봐. 나는 어릴 때부터 다리 한 쪽이 좀 길어서 잘 걷지를 못했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에서 놀고 있던 어느 날이었지. 나를 잘 아는, 하지만 나는 잘 모르는 아저씨의 손을 잡고 꽤 유명한 중국집 막내로 취직을 했어. 취직을 시켜준 아저씨에게 싫다고 말하기도 귀찮고, 사실 아저씨와 그렇게 친하지 않았거든. 그렇다고 하고 싶은 일이 딱히 있는 것도 아니고... , 그 나이에는 다 그렇잖아. 그래서 그냥 시키는 대로 취직을 했지. 아침에 출근하면 양파 까고, 계란 깨고, 양파 썰고, 양배추 썰고, 그러다 배달 나간 그릇이 들어오면 그릇을 닦는 게 내 일이었지. 일 년 정도 하다 보니 나름 요리를 배우는 것도 재미있고, 생각해보니 주방장이 되면 내 가게도 낼 수 있을 것 같았어. 세완에서 면판으로 한 이 년, 면판에서 조리장이 되려면 또 한 이 년 걸리지. 그리고 요리를 제대로 배우려면 한 가게에 오래 있으면 안 돼. 이 년 정도 일을 배우다 가게를 옮겨야 해. 옮긴 가게에서 배울 만큼 배웠으면 또 옮기고 그러면서 슬슬 경력이 쌓이면 자연스럽게 주방장이 되는 거지. 먼저 동네 중국집이 어떻게 운영되는지부터 이야기해야겠지. 주방에 주방장 한 명 (보통 사장이 주방장), 면판 한 명, 잘나가는 집이면 세완 한 명. 홀에 한 명 (보통 사모님)이 있지. 그리고 제일 중요한 배달이 두 명 정도, 그러면 동네에서 꽤 잘나가는 중국집이라고 볼 수 있어. 중국집은 음식 장사 중에서도 꽤 많이 남는 장사지만 항상 배달이 문제야. 동네 중국집에서 배달을 안 할 수도 없고, 배달을 구하면 두 달이 지나면 반은 도망가고, 여섯 달이 지나면 백 퍼센트 다 도망가. 이놈들이 도망갈 때는 월급 받은 돈, 외상 수금한 돈, 음식값, 거스름돈, 심지어 배달하는 오토바이까지 타고 튀는데 그러면 그 날은 아니 배달하는 사람과 오토바이도 없으니 며칠은 장사를 자연스럽게 공치는 거지.

 

그런데 왜 자꾸 반말로 이야기하십니까?

기분이 나쁜가봐?

조금 나쁩니다. 저와 비슷하게 보이는데 말입니다.

나는 나이를 떠나서 친한 사람에게는 친구처럼 반말을 해.

나이는 비슷해도 우리는 친구가 아니잖습니까?

우리가 몇 년을 봤는데 섭섭하게 선을 긋네. 어쩔 수 없지, 본인이 기분 나쁘시다니 그럼, 여기서 그만하지.

 

소설가는 이제 몇 잔 안 먹은 삼만 원짜리 고량주와 아직도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탕수육 접시를 들고 일어서는 나를 잡았다.

 

기분이 조금 나쁠 뿐이지 전반적으로 괜찮습니다.

십 년 전쯤 됐나? 나는 안산 반월공단 근처 중국집에서 면판으로 일하던 중이었지. 그날 저녁 배달하는 놈이 내 눈치를 보며 슬슬 짐을 꾸리는 거야. 그러고 보니 조금 전에 월급도 받았겠다. 그림이 딱 나오는 거지. 내일 아침이면 이놈이 튀겠구나 싶어 배달 눈치 보며 밖으로 나가 주방장(사장)에게 전화했지. 내일 튈 것 같다고. 주방장은 배달이 아들 친구라며 걱정하지 말라는 거야. 아니나 달라? 새벽녘에 홀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는 거야. 이 층 창문을 열어보니 아들 친구라는 배달이 아직 할부도 안 끝난 오토바이를 타고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네. 아침에 출근한 주방장이 아들에게 전화해서 욕에 욕을 하고, 사모님은 부서진 금고 앞에서 아연실색하고 난리가 났지. 그나마 사모님이 먼저 정신을 차렸지.

 

일당 배달 좀 구해 봐요. 오늘 장사는 해야 할 것 아니에요.

그 놈들은 치킨이나 배달할 줄 알지, 중국 음식은 안 돼. 다 엎어버린다고.

그럼 어떻게 해요?

배달 구할 때까지는 내가 직접 해야지, 별 수 있나?

 

주방장은 요리하다 말고 배달 가고, 사모님은 배달원 구하느라 쉼 없이 전화하고, 분위기는 싸하고, 배달나간 주방장 대신 간단한 음식은 내가 하고, 배달이 도망가는 바람에 괜히 나만 바빠졌지. 그러다 사고가 난 거야. 아침부터 조금씩 비가 내리는 날이었어. 비가 오는 날이면 배달이 부쩍 늘지. 점심시간 전부터 전화가 불이 나는데 배달 나간 주방장이 들어올 때가 한참이나 지났는데도 안 들어오는 거야. 배달은 계속 쌓이고 있지, 독촉 전화는 계속 오지, 나중에 사모님이 전화기를 내려놓더라고. 그때였어. 주방장이 절뚝거리며 꽝하고 같이 들어왔어. 꽝이 누구냐면 베트남 사람인데 이름이 뭐라 뭐라 길더라고 그냥 이름이 콴으로 끝나서 그냥 우리는 쉽게 꽝이라고 불렀어.

 

어떻게 된 거예요?

보면 몰라?

 

주방장은 건네받은 수건을 꽝에 주며 의자에 앉으라고 했어. 머리를 말리고 차를 한 잔 마신 주방장은 꽝을 쳐다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어. 일이 어떻게 된 것이냐 하면, 배달이 밀려 마음이 급해진 주방장이 골목에서 큰 길로 나오다 물을 튀기며 지나가는 차에 놀라서 넘어진 거야. 보통 비가 오는 날에 안전모를 쓰면 앞이 잘 안보여서 보통 챙이 긴 야구 모자를 쓰고 운전을 하지. 그 날 역시 주방장은 안전모 대신 야구 모자를 썼어. 주방장은 물웅덩이에 미끄러지면서 머리를 바닥에 세게 부딪혀 잠깐 정신을 잃었어. 정신을 잃고 쓰러져있는 주방장을 지나가는 꽝이 발견하고 오토바이에 다친 주방장을 태웠지. 하지만 주방장은 이미 정신이 혼미해진 상태였어, 오토바이 뒤에 앉기는 했는데 자꾸 넘어지려고 하는 거야. 꽝은 한 손으로 넘어지려는 주방장의 허리를 잡고, 다리 사이에는 철가방을 끼우고, 나머지 한 손으로 오토바이를 운전해서 비 오는 거리를 쏜살같이 달려 온 거지. 주방장은 꽝의 운전솜씨에 반했다고 했어. 거짓말 조금 보태면 뒤에 앉아서 우아하게 커피를 마실 수도 있을 정도라고 했지. 나 역시 몇 번 꽝의 오토바이 뒤에 타보니 그 말이 틀린 말이 아니더라고. 베트남 사람들은 걸음마보다 오토바이 운전을 먼저 배운다고 하잖아. 눈치 빠른 사모님이 그날 장사를 접고 우리 모두는 늦은 점심을 함께했지.

 

어디서 왔어?

베트남입니다.

한국말 잘하네.

대학에서 한국어를 전공했습니다.

어쩐지... 그런데 왜?

 

꽝에게 우리는 깜짝 놀란 말을 들은 거야. 보름 정도 전에 공단 끝에 있는 미원상사에서 큰불이 났거든. 뉴스에 나올 정도로 큰 불이었어. 그때 사람도 한 명 죽었으니까. 그런데 그 죽은 사람이 바로 꽝이었어. 꽝은 새벽에 불이 시작된 곳에서 담배를 피웠다고 했어. 그 불이 담뱃불로 시작됐는지 어쩐지는 아무도 몰라. 소방서 화재조사 발표는 누전이었으니까. 꽝은 불이 나자 정신없이 불을 끄기 시작했지. 아마 꽝은 자기 담뱃불 때문에 불이 시작됐다고 생각했겠지. 불은 점점 거세지고 같이 불을 끄던 사람들은 한 명씩, 한 명씩 자리를 피할 때도 꽝은 마지막까지 불을 껐어. 불은 점점 거세지고, 물류창고는 다 타버리고, 꽝은 무서워졌지. 그래서 마지막까지 불을 끄다 끝내는 도망을 쳤어. 사람들은 불이 다 꺼졌는데도 꽝이 안 보이자 불에 타 죽은 거로 생각을 한 거야. 마지막까지 꽝을 본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꽝의 죽음을 이야기했으니까. 나도 뉴스를 통해 봤어. CCTV 화면에 불을 끄고 있는 꽝의 모습이 고스란히 잡혔거든. 갑자기 불이 폭발하고, 그 이후로 꽝의 모습이 CCTV에서 사라졌어. 불난 회사를 끝까지 살리려다 죽은 외국인 노동자의 사연은 모든 사람들 가슴속에서 살아 난 거지. 시청 앞 광장에 꽝의 분향소가 차려졌지. 베트남에서 온 꽝의 가족들이 오열하다 쓰러지는 모습이 뉴스를 탔을 때는 더욱 난리가 났어. 전국에서 성금이 모이고, 국무총리를 포함해서 많은 정, 재계 인사들과 일반 국민들의 추모 행렬이 밤새도록 이어졌어. 서로 다른 이유들이 있었겠지. 정부는 베트남 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그 자리에 섰을 테고, 재계 인사들은 이런 모습을 좀 본받으라는 메시지를 사원들에게 주려고 섰을 테고, 시민들은 젊었을 때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아파 그 자리에 섰을 거야. 꽝은 국민 모두가 기피하는 3D 업종에서 일해 준 고맙고 미안한 노동자, 다른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는 자랑스럽고, 안타까운 동료가 되고 말았지. 꽝이 베트남에서 자란 이야기,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에 와서 고생한 이야기, 그동안 꽝의 모든 평범한 이야기가 숨겨진 미담이 되어 특집방송으로 나왔어. 나 역시 방송을 보고 미안한 마음에 분향소를 찾았다니까. 그런데 꽝이 죽지 않고 산속에 숨어 있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그 파장은 누가 감당을 해야 하지. 거기다 만약 담배를 피우다 불이 났다면? 우리는 고민을 했어. 간첩이 아니니 신고를 할 수도, 그렇다고 갈 곳 없는 꽝을 다시 산속으로 내보낼 수도 없는 상황이 됐지. 그래도 우리는 인정이 넘치는 한국인이잖아. 길에서 죽었을지도 모를 주방장을 살려준 공덕도 있으니 이 모든 이야기는 못 들은 걸로 아니, 비밀로 하고 일단은 우리와 같이 지내기로 했지. 그렇게 꽝은 다음날부터 주방에서 내가 했던 일인 양파와 양배추를 썰고, 계란을 깨고, 그릇을 닦기 시작했어.

 

, 너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려봐. 무엇이 보여?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그 모습이 앞으로 너의 모습이야. 너의 인생은 이름대로 꽝이 된 거야. 이번 생은 틀렸다 생각하고 이 어두컴컴한 주방에서 나와 잘 지내보자구나. 혹시 아니 다음 생에서는 꽝이 아닌 1등이 나올지도 모르잖아. 이제 양파 까라.

 

소설가는 내 이야기를 듣는지, 마는지 빈 술병만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빈 잔을 만지작거리던 소설가는 이내 잔을 탁자 위에 소리 나게 내려놓고 일어섰다.

 

그때 꽝은 나와 동갑이었지만, 주방은 내가 선배이니까 이것저것 많이 챙겨 줬지. 그런데 왜 일어섰지?

제가 지금까지 주방장님에게 짬뽕국물도 만원어치만 시켜서 눈치도 받고, 단무지도 많이 먹는다고 알게 모르게 괄시도 받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닙니다. 저도 나름 소설가입니다. 제가 아무리 소설가처럼 보이지 않았다 하더라도 말이 말 같아야 듣지 이건 말도 안 되고, 됐습니다. 그만 일어나겠습니다.

비도 많이 오는데 조금만 더 듣다 가지?

됐습니다.

그러면 이건 어때? 이 술은 우리 집에서 제일 좋은 술이야. 병만 봐도 기품이 있어 보이지.

소설가는 자리에 다시 앉아 두 손을 무릎에 공손히 모으며 이야기했다.

그 술에 걸맞은 안주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술에 어울리는 안주를 금방 준비해오지. 잠깐만 기다려.

 

꽝하고 나는 형제같이 지냈어. 한 방에서 같이 자고, 같이 먹고, 같이 일했지. 영업을 마친 밤이면 꽝은 오토바이에 나를 태우고 다녔어. 어느 날은 밤바다를 보러 가기도 했지. 아무도 없는 대부도 방아머리 해변에 앉아 철썩거리는 바닷소리를 처음으로 들었어. 텔레비전이나 영화에서 나오는 그런 그림 있잖아. 잔잔한 파도가 넘실거리고, 수평선 끝에 달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진 바닷가 해변. 그 해변에 주저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두 남자. 그 둘은 맥주 캔을 들고, 홀짝홀짝 마시며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하지. 첫사랑 이야기부터 자질구레한 모든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 웃기도 하고, 남 몰래 슬쩍 눈물을 훔치는 그림. 우리는 그렇게 여름밤이면 대부도 방아머리 해변에서 캔 맥주를 홀짝이며 많은 이야기를 했어. 보다시피 나는 한쪽 다리가 길어서 어디를 잘 다니지 못했거든. 그리고 성격도 내성적이어서 친구도 없었어. 그런데 꽝이 나의 발이 되어 주고, 친구가 되어줬어. 꽝은 나에게 한 명밖에 없는, 정말 고마운 친구였어. 다시 식당이야기로 돌아가자면, 보통 주방 생활이라는 것이 한 이 년 정도 가게에서 일하면 옮기거든. 이쪽 일은 가게를 자주 옮겨야 월급이 올라. 그만큼 많이 배웠다는 거지. 나 역시 가게를 옮겨야 하는데 꽝을 혼자 두고 가기가 좀 그렇더라고. 그렇다고 같이 갈 수도 없고 그러다 보니 그 가게에서 오 년 넘게 일을 했지. 꽝하고는 사 년을 함께했지. 주방장은 어느 순간 주방에서 나가고, 내가 자연스럽게 주방장이 되고, 꽝은 어느 순간 면장이 되었지. 모든 월급쟁이 주방장들이 꿈꾸는 게 하나 있다면, 변두리 동네라도 좋으니까 조그만 중국집을 하나 차리는 것이지. 나는 요리보다는 면을 전문으로 하는 동네 중국집이 꿈이었지. 사실 동네에서 누가 요리를 배달시켜 먹어? 먹어봤자 탕수육이지. 나는 자장면이 맛있는 중국집이 꿈이었지. 내가 수타로 뽑은 면을 못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어본 사람은 없어. 사실 중국집이 배달로 먹고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수타면은 없어졌지. ‘빨리 좀 부탁드려요.’, ‘왜 안 와요?’ 전화해서 이러는데 누가 고되게 반죽 두들겨가며 면을 뽑겠어? 그냥 기계에 넣고 스위치만 올리면 면이 주르륵 나오는데 말이야. 수타면이라고 해서 백 원이라도 더 받으면 비싸다고 난리고. 하지만 면은 수타가 진리야. 그 쫀득한 면발은 기계면이 결코 따라올 수가 없지. 수많은 동네 중국집에서 살아남으려면 면은 수타로 뽑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어. 그래서 수타의 고수를 찾으러 얼마나 다녔는지, 지금 주방장도 예전에 수타로 방귀 좀 뀐 사람이었어. 하지만 수타가 힘이 너무 많이 들어서 내가 오기 전에는 주방장도 기계로 면을 뽑았어. 내가 와서 주방장에게 기술 전수도 받고, 수타로 면을 뽑으니까 매상이 세배로 오른 거야. 사람은 간사해도 입맛은 거짓말 못 하지. 맛있는 것은 맛있는 거니까. 그런 비법을 나는 꽝에게 전수해 줬지. 내가 십 년을 넘게 이 바닥에 있으면서 배운 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가르쳐 줬지. 우리 집 자장면 먹어봤지?

맛있습니다.

내가 만드는 수타면은 다른 집 수타면과는 확연하게 다르지. 나는 수타면을 미리 만들지 않고 주문이 들어오면 바로 그 자리에서 면을 뽑아. 그래야 내가 만든 수타면은 씹지 않고 바로 삼켜도 될 정도로 아주 부드럽지. 그리고 또 하나, 면에서 가장 중요한 밀가루 풋내를 없애고 쫄깃함을 살리는,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비법이 있어. 바로 반죽 물이야. 계절에 따라 반죽 물의 온도가 달라지는 것은 상식일 테고, 나는 반죽 물로 가지 삶은 물과 단호박을 쓰지. 그러면 면에서 자연의 감칠맛과 부드러운 단맛이 확 올라오지.

꽝 이야기나 하십시오.

, 미안. 꽝 이야기를 해야지. 꽝하고 사 년을 같이 지내다 보니 처음 보는 사람들도 둘이 쌍둥이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아졌어. 중국집 밑에 있는 미용실을 같이 다니니 머리 모양도 같고, 까무잡잡한 피부도 비슷하고, 사실 꽝이 그 전보다 피부 톤이 많이 밝아졌지. 여기 생활이 햇빛을 보지 못하니 더욱 그럴 거야. 이제 말투도 한국사람 다 됐어.

 

, 전화 좀 받아봐?

동방불패입니다.

자장면 하나, 매운 짬뽕 하나, 덜 매운 짬뽕 하나 알겠습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 짜 하나, 뽕 둘, 배달.

 

꽝이 수타로 면도 뽑고, 전화도 받고, 간혹 배달이 밀리면 배달도 나가고, 가게에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된 거야.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문제가 생긴 거야. 문제는 역시 돈이었지. 항상 돈이 문제였어. 꽝이 일을 시작할 때 사모님이 월급은 백삼십만 원으로 하고 백만 원은 사모님이 계를 넣어서 목돈으로 만들어 주기로 했지. 그리고 용돈으로 한 달에 삼십만 원만 줬어. 사모님은 매월 백만 원씩 계를 사 년 넣으면 오천만 원을 받을 수 있다고 했어. 사실 꽝은 돈을 쓸 일도, 보낼 곳도 없고, 그렇다고 본인이 어디 가서 적금을 들 것도 아니니 나 역시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사모님 말을 거들기도 했지. 그렇게 사 년이 흘러 오천만 원을 받아야 하는 날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온 거지. 꽝은 나에게 이것, 저것 묻기도 많이 했고, 그 돈으로 뭘 할지 매일 생각하는 것 같았어. 그러던 어느 날 우리는 우연히 사장님과 사모님이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된 거야.

 

꽝에게 줄 돈으로 우리 가게 리모델링하면 좋겠는데.

쓸데없는 소리.

그러면 좋겠다는 말이지. 왜 성질이야? 사실 꽝은 돈이 생겨도 쓸 곳이 없잖아.

그래도 그렇지 그러면 안 돼.

그럼, 당신이 꽝한테 돈을 빌려 달라고 해봐. 이자 쳐준다고.

얼마나?

한 십 프로.

십 프로씩이나?

생각해봐. 꽝이 돈 받고 가게를 나가면?

하긴 꽝 같이 성실한 아이를 어디서 구해.

월급하고 이자하고 다시 계를 넣어서 삼 년 후에 다시 오천만 원을 만들어 준다고 하는 거야. 그럼 앞으로 삼 년은 말없이 있겠지.

그럼 삼 년 후에는 일억 원을 줘야 하는데 줄 수 있겠어?

그때는 어쩔 수 없이 불법체류자로 신고를 해야겠지.

 

우리 사모님을 나쁜 사람으로 오해할까봐 말하는데 우리 사모님은 정말 좋은 사람이었어. 홈쇼핑을 보다가 우리에게 어울릴 것 같다고 옷도 사주고, 꽝 먹으라고 안산역에서 베트남 음식도 사다 주고 자식까지는 아니어도 조카처럼 잘 해줬지. 하지만 사모님은 자본주의 사회의 충실한 일원으로 사람보다는 돈이 더 좋았던 거야. 그 일 이후로 꽝은 굉장히 힘들어했어. 사모님 이야기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며 사모님을 슬슬 피하기까지 했지. 나를 포함한 식당 가족 누구와도 말을 하지 않았어. 자다 일어나보면 홀에 앉아 소주를 마시고 있는 꽝을 몇 번이나 봤지. 며칠 후면 곗돈 오천만 원을 받는 날이었거든. 그래서 더욱 잠에 못 드는 것 같았지. 그날 밤도 꽝은 새벽에 일어나 단무지에 소주를 마시고 있었지. 나는 주방에 들어가 간단하게 안주를 만들어서 꽝 옆으로 갔지.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딱히 할 말도 없고, 말주변도 없고, 그냥 서로 홀 천장을 바라보며 소주를 마셨어. 슬쩍 쳐다본 꽝의 얼굴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거야. 그때 난 결심을 했지.

 

, 나는 태어날 때부터 아빠가 없었어. 처음부터 아빠가 없었으니 나는 아빠가 없다는 것이 불편한지도 모르고 컸지. 내가 열네 살 쯤 됐을까? 어느 날 아빠가 생긴 거야. 엄마와 어디서 만났는지 모르겠지만 살짝 나를 닮은 듯 한 무뚝뚝한 아저씨였어. 무뚝뚝한 아저씨가 엄마는 뭐가 좋은지 아저씨 앞에서 웃고 떠들고, 집안에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지. 나 역시 표현은 안했지만 엄마의 웃는 얼굴이 좋았어. 그 아저씨와 한 일 년 같이 살았지. 가끔 주말에는 여행이라는 것도 가봤고, 엄마의 웃는 얼굴, 가끔 미소 짓는 아저씨를 뒷좌석에 앉아 슬쩍 슬쩍 훔쳐보곤 했어. 지금 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아빠가 있다는 것은 없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것 같아. 그러던 어느 날 아주머니 한 무리가 집에 쳐들어 와서 단체로 엄마 머리채를 잡고 흔들었어. 그 아줌마들은 엄마의 머리를 반쯤 뽑아놓고 이내 보이는대로 집 세간을 부숴버렸지. 아주 깔끔하게 부셔놓고 바람처럼 홀연히 사라졌어. 엄마는 그날 이후 며칠을 누워 울기만 했지. 엄마가 재혼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나는 그때 알았어. 아저씨는 더 이상 집에 오지 않았고, 엄마와 나는 전처럼 단둘로 돌아갔지. 하지만 엄마는 아저씨를 계속 기다리는 것 같았어. 밥도 꼭 한 공기를 더 하고, 현관문도 열어 놓았지. 나는 엄마가 잠이 들면 현관문을 잠그고, 남겨놓은 밥 한 공기를 물에 말아 후루룩 마시고 잠을 잤어. 내가 그 밥을 안 먹으면 엄마는 내일 아침 찬밥을 먹어야 하니까.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 날 엄마는 암에 걸려 병원에 입원했어. 유방암이었어. 아저씨가 돌아가고 그렇게 매일 가슴을 움켜잡고, 가슴을 쳐대니 유방암에 걸리지. 엄마는 마지막 가는 순간까지 병실 문만 바라보다 돌아가셨지.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니 그때 아저씨가 다시 나타난 거야. 엄마 영정 사진 앞에서 한동안 울더라. 나는 울고 있는 아저씨의 뒤통수를 갈겨 버렸어. 아저씨는 더 슬프게 울기만 할 뿐, 가만있더라. 아저씨와 나는 엄마를 집근처 작은 절에 모셨어. 엄마를 모시고 내려온 아저씨는 나에게 통장을 하나 주고 갔어. 그 통장으로 매달 오십만 원씩 입금이 됐지. 세상은 변해도 나는 변하지 않았어, 아니 변할 게 없었어. 나에게 어느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는 세상 속에서 그저 시계불알마냥 학교와 집을 오갔지. 그렇게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에서 천장만 바라보며 누워있을 때, 아저씨가 다시 나타났지. 아저씨는 누워만 있는 나를 한 참 바라보더니 말없이 나갔어. 그리고 며칠 후 다시 나타나 나를 중국집에 취직시켜놓고 갔어. 나는 그 이후로 아저씨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그 아저씨의 이름도 몰라, 엄마와 어떻게, 어디서 만났는지, 어떤 사이였는지도 몰라. 하지만 내가 조금 살아보니까 세상에는 시간이 흐르면 조금씩 알게 되는 것이 있더라. 나는 요즘 그 아저씨와 엄마를 조금은 알 것 같아. , 사람들은 다 똑같아. 다들 말 못할 사정이라는 것이 있을 뿐이야.

, 나도 알아. 나는 다 이해해. 다 이해가 되니까 힘든 거야. 그것보다 나 사실 베트남에 너무 가고 싶어. 벌써 십 년이 넘었어. 형도 좋고, 여기 생활도 다 좋은데 베트남은 내가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고향이잖아, 그냥 고향에 가고 싶어.

, 몇 번을 말하니? 네 마음은 알겠는데 방법이 없다고. 미안하지만 넌 유령이야. 벌써 오 년 전에 죽은 사람이라고. 위조여권? 전에도 말했지 위조여권은 영화에서나 나오는 거야. 영화에서도 위조여권을 만들려면 사람을 죽이는데, 너는 누굴 죽일 거야? 아니, 누가 너를 위해 대신 죽어 줄 수 있을까? 아무리 고향에 가고 싶어도 그렇게 하는 것은 진심 아니야. 다 포기하고 그냥 여기서 나랑 살자. 유령처럼 낮에 주방에 있고, 밤에 돌아다니면 돼. 그러지 말고 우리 아무도 모르는 시골에 가서 작은 중국집 하나 하자. 내가 주방에서 요리하고 너는 배달하고 그렇게 살자. 가게이름은 꽝과 강수의 중국집, 꽝수반점. 우리 다른 생각하지 말고, 지금처럼 재미나게 살자.

그럼, 중국으로 밀항할 수 있게 형이 도와줘. 중국만 가면 어떻게든지 베트남으로 갈 수 있어.

그렇게 베트남 가면 무슨 수가 생겨? 베트남에서도 너는 유령이야. 벌써 오 년 전에 죽은 사람이라고.

그래도 난 갈 거야. 헤엄쳐서라도 중국으로 가고, 걸어서라도 베트남으로 갈 거야.

 

그래서 헤엄쳐서 중국으로 갔습니까? 도대체 이 이야기는 언제가 끝입니까?

이제 슬슬 시작했는데 이야기의 끝을 묻다니, 무척이나 당황스럽군.

그럼 지금까지가 서론이었습니까?

안 바쁜 거 다 아는데..., 그럼 중간은 건너뛰고 결론만 이야기할 게.

 

그날 밤 우리는 술을 엄청나게 먹었지. 다음날 일을 못 할 정도로 마셨어. 아침에 출근을 한 사장 내외는 난리가 났지만, 꽝은 오히려 강하게 나갔지. 오늘부로 그만둔다며 곗돈을 달라고 했어. 곁에서 구경하던 나 역시 얼떨결에 그만둔다고 했고.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된 우리는 일단 근처 사우나를 갔지. 사우나에서 목욕을 하고, 한숨 자고 나니 머리가 맑아졌어. 우리는 쌍둥이처럼 머리도 똑같이 다듬고, 똑같은 옷도 사 입고, 똑같은 포즈로 사진도 찍었지. 무슨 일인지 궁금하지? 그래, 나는 꽝 대신 내가 유령이 되기로 했어. 그래서 꽝의 사진으로 내 여권을 만들었지. 시청 직원이 사진과 나를 대조하며 힐끔 쳐다보고 바로 사진 위에 도장을 꾹 눌러 찍더군. 지문? 주방 일을 하는 사람에게 지문 따위는 없어. 매일 물과 불을 만지고 사는데 지문이 남아날 것 같아? 그렇게 나는 꽝이 되고, 꽝은 허강수가 되었지. 며칠 후 나는 따끈따끈한 여권과 베트남 비행기 표를 꽝에 줬지. 꽝은 여권을 열어보고 손을 벌벌 떨었어.

 

젠장, 이럴 줄 알았어, 어떻게 내 인생은 언제나 꽝일까? 하지만 너와 함께한 시간들이 잠깐이나마 허강수 내 인생의 최고의 봄날이었어. 이제는 도로 아미타불이 되었지만, 베트남 허강수, 고향 가서 잘 살아라. 그리고 서비스로 주민등록증까지 새로 만들었어. 이것도 가지고 가. 넌 나를 잘 알잖아. 우리 엄마 이름도 알고, 내가 어디서 살았고, 어느 학교를 나왔고, 어느 가게에서 일했는지... 모든 걸 알고 있잖아. 베트남에서 허강수로 사는데 하나도 문제될 것 없어. 이제 고향에서 꽝이 아닌 멋지고 잘생긴 베트남 허강수로 살아.

형은?

너도 알다시피 나는 주방에서 나갈 일이 없어. 너를 만나기 전부터 나는 주방의 유령이었어. 내 걱정은 하지 마.

 

소설가는 더 못 참겠다는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는 깜짝 놀라 소설가를 쳐다봤다. 소설가의 입술은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소설가의 표정은 전반적으로 시원하게 욕을 하고 싶은 표정이었다. 창밖을 내다보니 아직도 비는 내리고 있었다. 소설가는 심호흡을 한 후 천천히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꽝은 허강수가 되어 고향으로 갔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잘 들었습니다. 제가 소설가로서 충고 한마디 해도 될까요? 심심하시면 면을 더 뽑으시든지 아니면 요리 연구를 하세요. 쓸데없이 망상이나 하지 마시고요. 소설이란 어느 정도 말이 되는 이야기를 쓰는 겁니다. 아저씨처럼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소설이라고 부르지도 쓰지도 않습니다. 알고는 있었지만 그동안 저를 얼마나 무시했는지 이제야 정확히 알 것 같네요. 돈이 없어 단무지만 축내는 저 같은 놈이 소설을 쓴다니까 소설이 장난인줄 아세요? 아닙니다. 소설은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쓰고, 수정하고, 또 쓰고, 온 몸의 피가 말라가는 정성을 들이는 작업입니다. 아저씨처럼 말도 안 되는 것을, 그저 일하다 생각나서, 비오니 심심해서, 마구 지껄인다고 소설이 되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제가 유명하지도 않고, 돈을 잘 벌지도 못한다고 제가 쓰는 소설을, 제가 하는 직업을 더 이상 조롱하지 마세요. 저는 이만 가겠습니다.

누가 소설가를 무시했다고 그렇게 성을 내나? 나는 그저 재미있는 소설 거리가 되지 않을까 해서 말했을 뿐인데.

지금까지 한 이야기는 결코 재미있는 소설 거리도 아니고, 제가 듣기로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저를 놀리는 것 밖에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만 가겠습니다.

비는 아직 오고, 이야기도 아직 남았는데...

 

소설가는 일어나 가게 문 앞에 섰다. 가게 문을 여니 비가 서슴없이 들이쳤다. 그냥 나가기에는 망설여지는 비였다.

 

굳이 간다면 잡을 수도 없고, 가게에 우산은 없고, 아쉬운 대로 신문지라도 쓰고 가던지?

 

나는 방금 전까지 읽고 있던 기름때가 덕지덕지 묻은 신문을 소설가에게 건넸다.

 

그런데 솔직하게 말해봐. 사실 조금은 구미가 당기지?

이 사람이 정말 좋게, 좋게 이야기 하니까 내가 호구로 보이나? 내가 그렇게 우습냐고? 나 같은 놈이 소설가라니까 소설이 무척 쉬워 보이지? 소설이 장난인 줄 알아? 아무 이야기나 막 쓰면 소설이 되는 줄 알아? 그렇게 쓰고 싶으면 당신이 직접 써, 내가 주방에서 면을 뽑을 테니까?

뭐 그렇게까지...

 

불끈하던 소설가는 내리는 비에 기세가 눌렸는지, 잠깐의 망설임 끝에 탁자 위에 있던 신문을 들었다. 가게 문 앞에서 신문을 머리 위로 올리려던 순간, 소설가의 눈에 신문 기사 하나가 들어왔다.

 

 

얼굴 없는 베트남 기부 천사 알고 보니 한국인 사업가 허강수.

 

매년 베트남 사회복지 기관에 이름 없이 거액을 기탁한 얼굴 없는 기부 천사는 한국인 사업가 허광수로 밝혀졌다. 그는 베트남 현지에서 한국식 전통 수타 자장면인 꽝수반점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한국 베트남 우정사업의 하나인 한국어 교실의 실질적인 운영자였음도 밝혀졌다. 이에 한국 정부는 사업가 허강수에게 자랑스러운 한국인 상을 수여하기로 했다. 그러나 그는 자랑스러운 한국인 상 수여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꽝수반점의 지배인이 대리 수상을 하였다. 사업가 허강수는 지금도 얼굴을 철저히 숨기며 소리 없이 선행을 이어가고 있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이었다. (윤정 기자)

 

 

소설가는 그 이후로 오랫동안 가게에 오지 않았다. 나는 소설가를 친구로 생각했는데 그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도 가끔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 하던 그 소설가를 나는 텔레비전에서 봤다. 어느 날처럼 일을 마치고, 소주 한 잔을 곁들이며 텔레비전을 보고 있을 때였다. 문화초대석 올해의 소설, 작가 김형수를 만나다였다. 사회자는 오랜 무명작가 생활 속에서도 소설을 놓지 않고 정진하여 끝내는 일억 원 상금의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올렸다고 한다. 수상작품은 베트남 청년의 이야기, ‘꽝수반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