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글로리 시니어 신춘문예'공모에서 단편소설 부문에 당선된 김해수씨.
'제2회 글로리 시니어 신춘문예'공모에서 단편소설 부문에 당선된 김해수씨.

 

홀로세() 부부세()

 

국회는 2025년 새해 벽두부터 홀로세부부세라는 세법을 제정하고 가결시켰다. ‘홀로세35세 이상인 독신 남녀들이 대상이었고, ‘부부세는 결혼 후 4년 차 이상인 무자녀 부부들이 대상이었다. 바야흐로 국회가 제정한 법률은 사람들의 사적이 은밀한 부분까지 공권력의 잣대를 들이대려 했다.

유예기간이 2년이며 2027년부터 시행하기로 하고 공포했다.

 

2019년 말, 대한민국 인구는 5,185만 명의 정점을 찍고 출산율의 저하로 인해 감소세로 돌아섰다. 2024년 상반기에 5,000만 명이 무너졌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결혼과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 계몽을 하며 지원금 지급을 약속했지만, 독신자들과 젊은 부부들은 시큰둥했다.

혼자 사는 젊은 남녀들에게 결혼은 더 이상 로망이 아니었고 필수와 선택에서 제외되어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결혼을 하고 자식을 양육하는 데에 자신들의 젊음과 노후를 담보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만연했다.

특히 수도권에 살고 있는 젊은 남녀들의 이러한 생각은 콘크리트처럼 굳어져갔고, 지방에서 대학을 나온 젊은이들도 찰흙이 음지에서 말라가듯 견고해져 갔다. 자유로운 영혼이 감금되지 않을까 하는 추상적인 생각이 구체적인 생각으로 자리 잡아 젊은이들의 저변에 깔려있기도 했는데, 그보다는 삶의 질이 궁핍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큰 까닭이었다.

굳어진 젊은이들의 생각을 바꿔놓기엔 너무 늦은 감이 있었다. 결혼과 자녀 낳기를 독려해도 젊은이들에겐 자신들과 무관한 독려로 치부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골머리를 앓았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골머리를 앓고는 있었지만 골머리를 치유해줄 답은 알고 있었다. 알고 있으면서도 해결책이 없었던 터였다. 부동산과 교육 정책, 두 가지만이라도 젊은이들의 입맛에 맞는다면, 이렇게까지 결혼과 자녀 낳기를 거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초원에서 날뛰는 두 마리의 야생마를 순치시키기 위해 조련사를 수시로 바꿔가며 갖은 노력을 해왔지만, 야생마들의 날뛰는 기세를 따라잡지는 못했다. 정책의 얄팍한 대처는 젊은이들의 기민함과 영악함에 뒤처져 있었기에 인구 감소의 악순환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었다. 정부에서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 어두운 창고에서 빛을 보지 못했던 법의 칼을 칼집에서 끄집어냈다. 그 법의 칼은 양날이 섬뜩한 장검이었다.

 

국회 앞과 광화문 광장에서는 전국의 젊은 남녀들이 집회를 열어 악법 폐지를 외치며 성토했지만, 세상에 나온 법의 칼은 양날을 번득이며 젊은 남녀들을 겨누고 있었다.

2년 후의 법의 칼은 더욱 날카로워져 있을 것임이 분명했다.

 

법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서른여섯 살인 형소와 서른다섯 살인 민사는 홀로세가 국회를 통과했다는 사실에 어이가 없었고, 세금 맞을 일이 걱정되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홀로세라는 당치도 않는 법이 날을 세우며 달려들 것만 같았다.

 

형소는 서른한 살의 늦은 나이에 법원에 들어왔다. 20201월에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단독127단독 실무관으로 발령을 받았으니, 5년이 지나고 있는 터였다. 코트 깃을 여미며 동관으로 들어섰던 5년 전의 형소는 법원공무원으로서의 자긍심이랄까, 국민의 봉사자라로서 처신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없었다. 늦은 나이에 겨우 한 고비를 넘겼다는 안도감이 배어 있었고, 나른함이 스며들었다.

 

지방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5년간의 서울 생활은 그야말로 살기 위한 분투였다. 허름한 고시원을 떠돌면서 편의점, 식당, 엑스트라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밤을 꼬박 새웠다. 새벽 네 시부터 일을 하는 동대문 시장에서는 갖가지 옷들을 도매상으로 넘겨야 하는 일을 하며 돈을 벌기도 했다. 일이 끝나고 고시원에 들어서면 공무원 수험서를 펴놓고 취업 준비도 해야 하는 치열한 삶이었다.

 

법원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던 하얀 날, 머릿속에 차오르는 건 힘겨운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고시원 비용과 밥값, 책값을 벌기 위해 애면글면 서울 거리를 오갔던 지난날들을 손바닥으로 훑으면 조각조각 흩어질 것만 같았다. 오로지 합격을 위해 책상에 수험서를 펴 놓고 공부하는 자신만이 남아 있으리라 여겼다. 돈을 벌기 위한 치열함에 이골이 난 터였다.

그러한 터에 서울중앙지방법원 동관을 들어서는 형소가 자긍심이 어떻고, 국민의 봉사자로서의 공무원이 어떻고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다달이 나오는 돈을 생각했다. 너무나 인간적이고 너무나 속물적이라 일컬어도 어쩔 수 없었다. 형소에게는 돈이 우선이었다.

 

5년 동안의 서울살이는 결코 녹록지 않다는 걸 체득한 형소였다. 대학 생활은 물론이고 그 이후에도 연애라는 걸 해볼 새가 없었다. 몸뚱어리에 의지해야 했고, 그 몸뚱어리를 움직이지 않으면 배를 곯아야 했다.

2020년부터 다달이 지급되는 돈은 아끼고 아껴서 힘겹게 놀렸던 몸뚱어리 하나 누울 방 한 칸이라도 마련해야 했다. 주위에서 결혼 할 여자를 소개시켜준다 해도 코로 들었다. 자신의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마당에 좋아하네, 사랑하네 하면서 여자 앞에서 깝죽거리는 게 어울리지 않다는 걸 알아차렸다.

 

5년 동안 아껴온 돈은 마이너스 대출을 끼고 서울에서 원룸을 얻을 수 있었다. 고시원에서 가방과 보따리 대 여섯 개를 들고 지하철을 탔다. 한가한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가방과 보따리가 사람이 서 있을 세 자리는 차지하고 있었으니, 여기저기에서 눈알에 힘을 주고 형소를 쳐다보는 눈빛에 주눅이 들었다. 등줄기를 따라 땀이 주르륵 흘려내려 엉덩이 골을 따라 미끄러졌다.

지하철에서 내린 형소는 가방은 앞뒤로 메고 보따리는 양 손에 쥔 채, 양 발을 끌다시피 하며 기신기신 걸어갔다. 몸은 힘들어도 마음만은 들떠 있었다. 원룸에 들어선 형소는 가방과 보따리를 한쪽 구석에 모아놓고 대()자로 누웠다. 서울에서 팔자 좋게 대()자로 누워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이런 날이 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는데 정말로 꿈처럼 오고야 말았다.

 

같은 법원 같은 과 민사37단독에는 민사가 하루 종일 재판 참여를 하고, 오후 다섯 시나 되어서야 모습을 드러냈다. 재판이 있는 날 민사는 정장을 입고 출근했다. 그게 사법부에 대한 예의라 생각했고 법원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자긍심에 흠집이 생기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민사는 서울 태생이었고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2014년도에 법원에 들어왔다. 12년 차인 민사는 2년 전에 계장으로 승진을 하고 재판참여를 하고 있었다. 서울엔 부모님이 살고 있는 아파트가 있었고 자신은 부모님이 보태준 돈으로 투룸에서 독립하여 살고 있었다. 결혼은 인연이 없어서인지 여태껏 혼자였다. 혼자라 하더라도 외롭다거나 끼니를 거르거나 심심할 틈이 없었다. 퇴근해서는 요가를 비롯하여 어학 학원, 독서 클럽을 다녔고, 쉬는 날에는 등산이나 1박으로 여행을 떠났다. 부모님이 괜찮은 남자가 있으니 선을 보라 해도 뜨뜻미지근하게 대답만 하고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다. 혼자 사는 것도 시간이 흐를수록 즐거움을 주고 있었으니 굳이 남자를 만나 사랑싸움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202511일부터 서울행정법원 행정과 제3부 재판부에서 실무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형소는 가당치도 않은 세법 제정에 울적한 심사가 백중(百中)사리처럼 밀려오다 쓸려가기를 반복했다. 머리가 빠개지도록 고민해본 적이 없는 결혼을 세법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는 생각에 국가의 법치가 던적스러웠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고 걸걸한 욕지거리가 명치 아래에서부터 목구멍으로 솟구쳤다. 욕지거리 몇 마디가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 소리를 무심결에 문가을 계장이 들었다.

실무관님, 무슨 일 있어요? 오전부터 기분이 별로인거 같은데요.”

문가을 계장은 어제 재판을 한 행정사건들의 조서를 작성하다 말고 물었다. 초등학교 다니는 아들과 딸, 남편이 있는 그녀였다.

그렇게 보여요? 그렇다고 할 수도 있지요. 국가의 간섭이, 계장님이 나를 보는 바와 같이 기분을 별로로 느껴지게 하니까요.”

형소는 다음 주 재판 준비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모니터에 전자소송기록뷰어만 잔뜩 띄워 놓고 일의 진척이 없었다. 더군다나 문가을 계장이 출근 후부터 모니터를 보며 자판 두들기는 소리가 마뜩잖게 들려왔다. 가진 거 다 가지고, 할 거 다 하는 문가을 계장에 대한 시기심이 소리와 한데 섞여 귓가를 울리고 머릿속을 뒤집어 놓았기 때문이다.

국가의 간섭? 무슨 간섭이지?”

문가을 계장의 눈이 화등잔처럼 떠졌다. 대한민국이 실무관에게 무슨 간섭을 하고 있다는 것인지, 설사 있다 해도 요즘과 같은 시대에 국가가 한 개인에게 간섭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아한 눈빛이었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에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라고 돼 있는데, 설마 이를 어기고 개인의 인권을 침해할 리는 없다고 문가을 계장은 생각했다.

계장님, 뉴스 안 봤어요? 며칠 전에 국회에서 희한한 세법을 제정했잖아요. 독신자들을 옭아매는 홀로세와 자식을 낳을 수 있는데도 낳지 않는 부부들에게 억지로 자식을 낳으라고 강요하는 세법요. 그 세법이 제가 누리고 있는 자유에 간섭을 하고 있단 말입니다. 독재국가에서나 있을 법한 법치만능주의로 치닫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형소는 시쁘둥하게 말을 했다.

, 그 세법 때문에 그렇구나.”

문가을 계장은 당연히 그 세법을 알고 있다는 듯 맞장구를 쳤다. 알고 있기는 하지만 그녀에게는 아프게 다가오지 않기에 한 번 듣고 생각할만한 뉴스거리가 되질 않아 금방 뇌리에서 사라진 터였다. 발이 바람에 차랑차랑 흔들리듯 법원 실무관의 기분은 재판부의 분위기를 이끌었다.

그 세법이 실무관님이 말한 대로 좀 그렇기는 하지. 인구 감소를 억제하기 위해 제정한 법이라지만 무조건 법으로만 해결하려는 최하급의 대응방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법보다는 정부나 정당의 정책이 우선시 돼야 하는데 말이야. 실무관님 기분, 알만 하겠네.”

문가을 계장은 자판소리를 한동안 멈추고 형소의 우울한 기분을 맞춰주었다.

실무관님! 오늘 퇴근하고 기분도 꿀꿀한데 술이나 한 잔 할까요?”

계장은 술잔을 꺾는 시늉을 하며 형소에게 물었다.

좋지요. 오늘 계장님 괜찮은데요. 기분도 맞춰주고.”

문가을 계장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모니터로 시선을 옮겼고, 형소 또한 모니터에 띄워 놓은 전자소송기록뷰어들로 눈길을 돌렸다.

 

퇴근 후 문가을 계장과 형소는 양재역 8번 출구로 나와 참치회 식당으로 들어갔다. 미리 예약을 해 둔 터라 종업원은 룸으로 안내를 했다. 때깔 좋은 참치가 큰 접시에 담겨 나오고 변두리 음식이 참치를 에워쌌다. 문가을 계장은 소주와 맥주를 시켜 소맥을 제조하고 형소에게 잔을 권했다.

실무관님! 홀로세라는 세법도 제정되고 했으니까 이제 독신을 벗어나야지요. 비록 실무관님의 의지와는 무관하다지만 어찌 보면 법이라는 것도 상식을 따라가기 마련이잖아요. 국가만 탓할게 아니라 자연법칙을 거스르는 실무관님에게도 적지 않게 문제는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 실무관님의 독신 탈출을 위해서 쭈욱 들이켜요.”

얼떨결이었다. 문가을 계장의 독신 탈출이라는 말이 뼛속 깊이 파고들 줄은 미처 몰랐다. 형소와 문가을 계장은 잔을 마주치고 소맥으로 입안을 적시고 내장에 내리부었다. 짜릿한 맛이었고 감칠맛이 돌았다. 늦가을 산수유 열매가 익어가듯 붉은 빛이 선연한 참치회를 젓가락으로 집어 입에 물고 오물오물 씹었다. 소맥과 참치회는 일품이었다.

소맥이 두 순배 돌자 에코백을 어깨에 멘 여자 한 명이 여닫이문을 밀치고 문지방을 넘어섰다.

민사야, 어서와, 이리와 앉아.”

문가을 계장은 옆자리를 가리키며 등받이 좌식의자를 뺐다.

다른 분도 계셨네!”

블랙 누빔 코트를 벗어 옷걸이에 걸친 민사는 형소를 곁눈질로 훔치며 미소를 머금고 앉았다. 형소는 문을 열고 들어서는 민사에겐 아랑곳하지 않고 참치회에 집중 했다. 그런 형소를 민사는 거만하면서도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쳐다보았다.

미리 얘기 안 해서 미안. 민사야, 인사해. 이쪽은 나하고 같은 재판부에 있는 실무관님이고 여기는 나하고 대학 친구이자 법원동기.”

문가을 계장은 형소와 민사에게 미안함을 만회하려는지 처연함을 가장했지만 그 처연함이 둘에겐 음흉함으로 다가왔다. 형소와 민사는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같은 법원직원으로서 술 한 잔 한다고 여기면 전혀 어색할 필요는 없었다. 모르는 직원들과 술자리가 벌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언젠가는 부딪히기 마련이었다.

 

술자리가 깊어지면서 형소는 법원에 들어오기 전의 서울생활을 늘어놓았고 친구이자 법원동기인 둘은 측은한 눈빛을 하고 형소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민사와 문가을이 권하는 술을 마다하지 않고 마신 형소는 얼굴이 불콰해졌고, 혀는 의지를 따라주지 않아 자음과 모음이 뒤섞였다.

그럼 실무관님은 앞으로도 계속 혼자 산다는 거예요?”

문가을 계장은 형소가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민사를 바라보았다. 민사의 눈자위는 핏발이 서 있었다. 형소는 잠시 표정을 묘하게 찡그리다가 정색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

아직까지는 그렇습니다. 결혼이라는 게 꼭 해야 할 필요성을 느껴보지 못했고 주위의 유혹과 권유에 못 이겨 한 결혼이 썩 좋지만은 않더라고요. 결혼이라는 설렘과 신선함이 사라진 후엔 혼자만의 자유를 갈망하는 그런 사람들을 여럿 봐왔습니다. 굳이 결혼을 해서 책임을 짊어져야 하고 미래가 불투명한 험한 세상에 자식을 낳아 놓고 전전긍긍하기가 나한테는 버겁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 간의 불평등은 더욱 심화될 것입니다. 없는 자가 가진 자를 넘어설 수 없고 가진 자는 없는 자를 억누르고 국가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나는 가진 게 없습니다. 두 분께서 나를 너무 나약하고 앞날에 지레 겁을 먹고 있다고 생각할지는 몰라도 내가 봐온 현실은 극단적으로 냉정하고 다가올 앞날은 가진 자에 의해 좌지우지 될 것입니다. 국가도, 언론도 마찬가지고요.”

민사와 문가을 계장은 술잔을 내려놓은 채 형소의 말에 토를 달지 않았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겪어온 바였기에 침묵의 동의를 하고 있던 터였다.

 

민사 너도 실무관님하고 같은 생각이야?”

문가을 계장의 눈총이 민사를 향했다. 민사는 왜 나에게, 라는 생각에 뚱한 표정을 지었다.

글쎄다. 동의하는 부분이 있기도 하고, 난 그냥 혼자가 좋아. 남편한테 잔소리하기도 싫고 잔소리 받기도 싫고 자식 낳아서 학교, 학원, 성적 등등 신경 쓰는 게 싫어. 가족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게 나한테는 자격이 없는 거 같아. 가을이 너같이 할 수가 없을 거 같아. 그래서 나한테는 결혼이 체질이랄까, 적성이랄까, 아무튼 맞지가 않아. 맞지도 않고 어울리지도 않는 옷을 입는다는 건 아무래도 불편해. 그러니 초장부터 하지를 말아야지.”

문가을 계장은 형소와 민사를 쳐다보고, 그래 니들 잘 낫다, 잘 낫어. 눈으로 질책을 했다. 그러곤 칼자루를 휘둘렀다.

그럼, 앞으로 너희들은 홀로세를 내야겠네. 소득의 5%라고 하던데, 그것도 원천징수고, 그 세금이 적은 돈이 아닐 텐데 말야.”

형소와 민사는 문가을 계장의 칼날에 똑 부러진 대답을 하지 못하고 술자리를 파했다.

 

다음날은 토요일이었다.

오전 11시까지 늘어지게 잔 형소는 일어나자마자 토마토 주스를 마시고 에어프라이어로 피자토스트를 요리해서 먹었다. 숙취는 없었고 개운했지만 홀로세가 끈질기게 뒤통수를 잡아당겼다.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고 화장실로 들어가 씻었다. 오후엔 광화문광장 언저리에 있는 교보문고에 가볼 참이었다. 한 달에 한 번씩은 꼭 들러 책 쇼핑을 하는 곳이었다. 혼자 살면서 자유로운 사상을 머리에 담고 남의 생각을 훔칠 수 있을 만한 것이 있다면, 책 이상이 없었다. 교보문고에 들어선 시각이 오후 세 시였다. 책을 사들고 계산하거나 나가는 사람보다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서서도 읽었고 바닥에 절퍼덕 주저앉아 읽기도 했다. 형소는 교보문고에 들어서면 우선 한 바퀴 죽 둘러본다. 한 달 전과 무엇이 달라졌나 보는 것이고, 사람들이 주로 무슨 책을 읽나 알아보는 것이다. 그런 다음 신간과 베스트셀러 코너로 가서 꼼꼼히 훑어본다.

베스트셀러 코너에 민사가 책을 보고 있었다. 형소는 거침없이 민사에게 다가갔다.

계장님! 안녕하세요? 어제 술이 과했는데 괜찮으세요?”

민사는 훑어보던 책을 덮고 형소 쪽으로 고갤 돌렸다.

어머, 안녕하세요. 어제는 덕분에 즐거웠습니다. 간만에 과음은 했지만 거뜬합니다. 책 사러 오셨나 보네요?”

민사는 덮었던 책을 손에 쥐었다.

오늘이 책 쇼핑하는 날입니다. 읽을 만한 책이 있으면 이곳에서 사갑니다. 내가 지켜야 할 약속이지요. 책은 현재의 무료한 삶을 여유와 당당함으로 무장시켜 주는 친구라 할 수 있지요.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에서 살아내기 위해선 책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제가 이제껏 홀로 버티고 있는 것도 곁에 항상 책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혼자 있고 싶고 온전히 내 삶에 충실하고 싶을 때에는 책을 손에 듭니다. 그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유충인 애벌레가 서서히 성충으로 변하듯 안이 채워지고 몸이 단단해지는 느낌을 받아요. 그러고 나면 혼자라는 사실에 꿋꿋함을 느끼지요. 그래서 한 달에 한 번은 꼭 이곳에 들릅니다.”

 

형소는 민사가 손에 쥐고 있는 책을 넌지시 보았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었다. 세월이 흐를수록 인간 감성이 메마르고 자신의 아집에 사로잡히다보니 사랑을 줄 줄도 모르고 받을 줄도 모르는 현대인들에게 많이 읽히고 있는 책이었다. 그 책이 베스트셀러 코너에 진열 돼 있었나 보다.

나도 가끔 들르긴 해요. 실무관님처럼 거창하게 변화의 소용돌이에서 안정을 찾기 위해 도움닫기를 원하는 것도 아니고, 책으로 인해 나를 변화시켜보자는 그런 류의 정신을 가진 사람도 아니고, 하루의 삶은 이성보다는 감성에 의해 행동하려는 계획적이기 보다는 단기의 즐거움을 얻으려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요. 내가 살아가는 삶은 큰 것과 작은 것이 있지요. 큰 것은 머리에 담아두고 이변이 없는 한 변하지 않아요. 작은 것은 가슴에 담아두고 기분에 따라 변하기도 하면서 가급적이면 머리의 통제를 받으려 하지 않지요. 가슴으로 느끼고 그에 따라 행동을 합니다. 그러다 보니 나를 정신 이상자로 보는 사람도 더러 있더라고요.”

형소는 민사의 얘기를 듣는 중에도 쌓여 있는 책들을 눈으로 만지고 한 권을 손에 쥐었다. 젊은 작가들이 쓴 소설집이었다. 형소와 민사는 어색함이 없이 자리를 옮겨 손님들이 뜸한 법률서적 코너로 가서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계장님도 혼자 사는 게 편하지요? 계장님 미모에 결혼을 못하는 건 아니고, 안 하는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만.

형소는 계장님은이 아니라 계장님도라며 주어에 자신을 끼워 넣었다.

물론 편합니다. 누구의 간섭을 받지 않고 내 시간을 남에게 내어주지 않고 나만이 쪼개서 쓸 수 있으니까요. 결혼이야 못 하는 것도 아니고 안 하는 것도 아니고, 생각이 없습니다. 나한테는 태초부터 남녀가 결혼을 해야 한다는 감각이 없었어요. 왜 굳이 같이 살아야 하나? 에 대한 놀라움과 두려움이 있었지요. 실무관님하고 이렇게 우연히 만나서 얘기도하고 참 좋잖아요. ? 꼭 세상의 의지가 나에게도 적용이 되어 남녀가 같이 살아야 한다는 보편적인 생각을 가져야 하냐고요. 내가 이상한가요?”

민사는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세상에 맞춰야 하는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며 입술을 한 자는 내밀다시피 했다.

이상할거까지야 없지요. 제가끔 저마다의 생각과 행동이 있고 그 생각과 행동이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자신의 삶이 만족하다면야 나름대로 삶을 누리면서 살면 되잖아요. 근데 그거 알아요?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살아간다는 게 지금에 이르러 국가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거. 즉 우리가 국가에 피해를 주고 있다는 거지요. 대한민국 인구 감소에 우리도 한 몫 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국가는 피해를 입히는 자에게 홀로세를 거둬들이려고 하잖아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형소는 홀로세에 대한 생각을 대한민국의 피해보상이라는 명목으로 어렴풋하게 규정하며 민사의 생각을 물었다. 같은 처지로써 사뭇 궁금했다.

 

그 세법이 제정됐다는 사실에 세 가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세법이 폐지가 되지 않는 이상 악법도 법이니까 따라야 한다는 게 첫째고, 절이 싫으면 중이 그 절을 떠나야 한다는 게 둘째고, 홀로세를 내기 싫고 대한민국을 떠나기 싫으면 결혼을 해야 한다는 게 셋째예요. 셋 중에 내가 할 수 있는 유력한 방안은 세 번째예요. 결혼을 하고 같이 사는 게 아니라 서류상 결혼신고만 하는 거지요. 그럼 일단 홀로세는 면할 수 있잖아요. 실사를 한다 해도 부부의 속내를 무슨 수로 알겠어요.”

형소는 민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홀로세는 그렇다 치고 4년 후의 부부세는 어떻게 할 거예요?”

부부세에 대한 대응도 민사는 생각을 해뒀을 거라 믿었다.

그거야 간단하잖아요. 부부세의 법 조항을 보면 예외 조항이 있잖아요. 그 조항에 내가 해당되게끔 만들면 되잖아요.”

민사가 노회하다고 할까 영민하다고 할까, 민사는 국가든 개인이든 간섭의 빌미를 주지 않았다. 형소와 민사는 책 한 권씩을 계산하고 교보문고를 나와 헤어졌다. 민사가 했던 말이 황탄한 것만은 아니라 생각했다. 민사는 국회의 성급한 세법 제정과 법치의 미욱함이 허점 투정이라는 걸 단호히 말해주고 있는 듯했다.

 

국가는 영토와 국민, 주권이 있어야 한다. 주권과 영토를 빼앗기면 지난 날 36년 동안의 고통이 또다시 찾아올 것이다.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한 그럴 리는 없겠지만, 이제는 다른 문제에 봉착돼 있다. 인구 감소가 그것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개인의 선택권에 간섭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국가와 개인 중 중요한 건 무엇일까? 형소는 내내 생각을 했지만 자신이 납득할 만한 답을 얻을 순 없었다. 다만 국가는 개인을 파괴할 수 있을지언정 개인은 국가를 상대로 호소할 수 있을 뿐이라는 것. 그 호소는 명명백백한 피해사실이어야 한다는 것. 두루뭉술한 호소는 국가의 판단을 흐리게 할 수 있기에 호소한 자를 위태롭게 할 소이가 있다는 것. 형소가 알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었다.

형소는 편의점에 들러 맥주 세 캔을 사들고 원룸으로 들어갔다. 별일이 생기지 않는 한 집에서 끼니를 해결하자고 자신과 약속을 했지만, 오늘 저녁만큼은 밥을 하고 찌개를 끓일 기분이 아니었다.

갈고리 모양의 의문표 하나가 식도에 걸려 빼낼 수가 없었다. 의문표는 식도를 자꾸만 파고들었다. 결혼에 대해 생각이 없다는 민사의 말이 식도에 박힌 물음표 주위에서 뱅뱅 돌았다.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결혼이었지만 민사와 말을 섞고는 결혼과 아기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지금, 자신은 즐거운 삶을 살고 있는가?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가? 극단적인 이분법은 식도를 파고드는 갈고리와 갈고리에 찍힌 식도였고 형소의 답은 어느 쪽도 아닌 기도에 멈춰서 있었다. 먹지는 못하더라도 우선 숨은 쉬어야 했다. 벽을 기대고 앉아 맥주 캔을 따고 들이켰다. 거푸 캔을 따고 식도에 들이부었지만 갈고리는 빠질 줄을 몰라 했다. 의문표 하나가 식도에 박힌 의문표 옆에서 깐족댔다. 형소 넌 결혼을 안 하는 것이냐? 못 하는 것이냐? 깐족대는 의문표가 식도를 파고드는 의문표보다 더 밉살스러웠다.

그러나 두 의문표는 야릇하게 연결이 되었다. 혼자서 사는 즐거운 삶은 결혼은 안 하는 것이었고, 고통스러운 삶은 결혼을 못 하게 하는 원인이었다. 형소는 현재의 삶에 의미를 부여해야만 했다. 그 의미는 형소의 앞날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창조였다. 맥주 세 캔을 다 마신 형소는 뚜렷한 답을 내지 못하고 잠이 들었다. LED 조명빛이 왁자한 밝은 밤이었다. 새벽 네 시에 깬 형소는 가로등만이 비추는 어두운 밤으로 들어섰다. 그 어둠 속에는 민사가 다소곳이 벤치에 앉아 형소를 기다리고 있었다.

 

형소 씨! 헤매지 말고 이리 와서 앉아요. 형소 씨 혼자서 씨근대봤자 형소 씨만 힘들뿐이에요. 나 봐요. 아무렇지도 않잖아요. 국가와 개인 중 무엇이 중요할까? 개인이 모여 우리가 되고 사회를 이룹니다. 사회는 곧 국가를 형성하지요. 국가는 개인으로 이루어진 집단이에요. 일차적으로 국가는 개인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어요. 국가의 간섭은 그 다음 일이지요. 그러니 우선은 형소 씨 자신을 돌보고 사랑해야 되지 않나요? 국가가 개인을 위해 의무를 다하고 권리를 부여해 줄 때 개인은 국가의 통치권에 저항을 하지 않고 국가에 흡수될 수 있어요. 홀로세와 부부세는 개인에게 의무만을 부여하고 권리는 나몰라라 하는 비굴한 짓이지요. 난 그 세법에 순응할 수 없기에 허점을 찾았고 보았어요.

형소 씨가 살아가는 삶은 즐거운 삶일 수도 있고 고통스러운 삶일 수도 있어요. 그때그때의 감정에 따라 다르니까요. 때에 따라 감정에 휘말려 결혼을 못 한다, 안 한다, 할 순 없잖아요. 앞날은 자신이 개척하는 것이지요. 결혼은 하찮은 것이 아니라 심오한 것이에요. 순간의 감정에 흔들려서 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을 두고 고민해봐야 하는 것이지요. 나 역시 그랬으니까요. 미래의 삶은 현재의 삶을 건너야 하는 크고 작은 삶이지요. 아직 다가오지 않는 삶이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지만 현재의 삶이 어떻게 흘러가느냐에 따라서 미래의 삶이 뿌연 안개 속에서 드러나는 나무와도 같잖아요. 그 나무가 클 수도 있고 작을 수도 있지만 나무의 크기는 현재의 삶과 비례된다고 봐요.

형소 씨! 내가 홀로세를 면하기 위해 서류상 결혼신고를 한다고 했지요. 그 상대방이 형소 씨가 될 수도 있어요. 동의만 해준다면 그렇다는 거예요. 형소 씨를 두 번 봤지만 같이 살 만큼의 남자는 안 돼도 서류상 남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나하고 결혼할래요.’

 

헛것을 본 것일까. 생각 속의 민사였지만 느닷없고 단도직입적인 질문이었다. 벤치엔 아무도 없었다. 짙은 어둠이 서서히 옅은 어둠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이윽고 동쪽 하늘에 동살이 잡혀오기 시작했다.

일요일 아침이었다.

 

국가는 삽상한 바람을 일으켜야 하고, 따뜻한 햇볕이 잘 들게 해야 하고, 푸른 하늘 맑은 강을 볼 수 있도록 나라 안을 다독여야 한다. 또한 신뢰할 만한 입법과 정책을 내놓아야 하고, 정의로운 집행을 해야 한다. 남녀는 그러한 국가를 반기며 산과 들을 두루 돌아다니며 만남을 이어가야 한다. 따가운 햇볕에 매서운 바람만 몰아치면 개인은 집 밖으로 나오지 않으려 할 것이다. 그런 개인에게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만약 형소가 그 기대에 응한다면 민사와 법적 결혼을 할 것이다.

남용하고 오용하는 법치가 아닌, 대한민국 헌법 제10조가 개울물처럼 차란차란 흘러가는 법치를 소원해 본다. 이틀간의 휴일이 지나갔다.

전쟁과도 같은 월요일이지만, 형소는 컴퓨터를 켜고 할 일을 체크했다. 서두르며 할 일은 없었다. 메일 창을 열고 민사에게 글을 남겼다.

계장님! 저와 결혼해주실래요? 홀로세와 부부세를 빙자한 결혼 말고 사랑이 쌓인 결혼요. 사랑하면서 계장님과 늘 함께하고 싶어요. 장대비가 쏟아지는 여름날, 계장님과 같이 우산을 들고 걷고 싶지는 않습니다. 계장님 손을 잡고 장대비를 맞으며 하염없이 걷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