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글로리 시니어 신춘문예'공모에서 수필 부문에 당선된 최미옥씨.
'제2회 글로리 시니어 신춘문예'공모에서 수필 부문에 당선된 최미옥씨.

 

추어탕을 끓이며

 

막냇동생이 주말에 오겠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명절이 가깝다. ‘코로나 19’로 초비상 시국이지만 구순의 노모가 계시니 다녀가야겠다 싶은 모양이다. 함께 살았던 동생이어서, 그가 오는 날이면 나는 조금 설렌다. 추어탕을 끓이기로 했다. 손도 많이 가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음식이어서, 좀체 엄두를 내지 못하는데 잘됐다 싶었다.

저녁 무렵 동생이 왔다. 겉옷과 두터운 마스크를 한켠에다 얌전히 벗어놓고 화장실로 직행하더니 한참을 씻고 나왔다. 자신이 오염원일 수가 있어서 극 조심하는 중이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종일 환자를 대해야 하는 입장이니 당연하리라.

동생은 땀을 닦아가며 거푸 두 그릇을 비웠다. 역시 누나 추어탕이 최고라며 늙은 누이를 추켜세우는데 민망했다. 내 솜씨라야 그저 식구 건사하는 정도일 뿐이다. 그가 괜찮은 수준으로 기억하는 건, 까까머리 고등학생 때부터 장가가기 전까지 십여 년을 함께 살았기 때문이지 싶다.

처남 매부가 어우러진 술자리를 바라보는데 모습조차 아득한 아버지가 생각났다.

아버지는 언니와 나를 대학에 보내주겠다고 약속하셨다. 대신 남동생을 한 명씩 맡으라고 덧붙이셨다. 아버지 혼자 다섯을 공부시키기는 힘드니 그렇게 하자고. 이를테면 조건부 약속이었다. 젊디젊은 아버지는 어린 자식들을 앉혀놓고 그렇게 삶의 설계도를 그리셨다.

조건부 약속은 수시로 반복되었다. 여름날 달빛이 희붐한 평상에 드러누워서도 들었고, 논물 보러 가시던 아버지를 졸졸 따라가면서도 밑줄 쫙 친 듯한 그 구절을 복습했다. 망친 시험지에 도장을 받아야 할 땐, 집 대신 아버지가 근무하시던 면사무소로 갔다. 아버지는 빗금이 쭉쭉 그어진 시험지에 한숨과 함께 도장을 꾸욱 누르며 예의 조건부 약속을 낮게 언급하셨다.

가랑비에 옷이 젖듯 반복 학습된 약속은 구체적인 그림으로 자리 잡았고 나는 앞날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았다. 팽팽한 바퀴를 힘차게 굴리기만 하면 되었다.

약속은 깨기 위해 하는 것이라고 누군가가 말했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우리네 삶을 빗대어 말한 것이리라. 여고생이 되던 해에 아버지는 황망히 돌아가시고 말았다. 대학은 헛바람이 되었고 방향 잃은 팽팽한 에너지는 엄마를 향한 미움이 되어 버렸다. 다섯이나 되는 아이들이 모두 책가방을 들었는데 엄마는 밥만 했다. 종일 밭을 매든가 보따리 장사를 하든가, 옆집 아줌마처럼 일수놀이라도 하든가, 무슨 일이든 해야 할 텐데 답답했다. 약속을 저버린 아버지를 원망하고 억척스럽지 못한 엄마를 미워하면서 나는 삐딱하게 커갔다.

막냇동생이 고3이 되었을 때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 자취방에 수험생을 혼자 두고 떠날 생각을 하니 삐딱 걸음을 걷던 나도 마음이 무거웠다. 도시락을 두 개씩 싸던 시절이었다. 엄마는 동생 고등학교라도 졸업시키고 가라며 주저 앉히려 했지만, 기어이 내 뜻대로 하고 말았다. 타오르기 시작한 사랑은 어떤 설득도, 빈손으로 보내겠다는 으름장도 들리지 않게 했다. 엄마는 당장 자취를 해야 하는 동생이 걱정이었지만 나는 나이만 쌓고 있는 내 앞날이 더 무서웠다.

그 무렵 나는 잿빛에 갇혀 살았다. 옷을 너무 칙칙하게 입는다고 동료들이 지적했지만 밝은 것은 자신 없었다. 밝게 드러나는 내 모습이 더욱 초라할 뿐이었다. 그런 나를 굳이 숨기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게다가 그는 서울에 취직을 했다며 곧 상경할 거라고 했다. 서울이라니, 꿈에서도 생각 못한 도시였다. 내가 근무하던 곳은 경남 진해였는데 서울말을 하는 군인가족이 많았다. 피부색부터 다른 그들의 말은 유리구슬처럼 빛이 났다. 그 서울에 둥지를 튼다는 유혹은 세찬 파도처럼 나를 흔들었고 나는 마음을 굳혔다.

그러나 일찍이 아버지로부터 배당(?)받은 막냇동생은 목에 걸린 가시였다. 헤어지면서 동생과 약속을 했다. 서울에서 만나자고. 열심히 공부해서 꼭 서울의 대학으로 진학하라 당부했고 동생은 얼굴을 숨긴 채 고개만 끄덕였다. 그가 앉은자리로 눈물이 뚝 떨어졌다.

비빌 언덕 없는 서울살이는 팍팍했다. 월세 방에서 시작한 옹색한 신혼살림, 내 선택이 성급했음을 깨닫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그렇지만 동생은 위기를 기회로 만들고 있었다. 누이의 출가가 죽비가 되었을까. 몸을 깨우고 정신을 가다듬게 하는 수행자의 죽비를 껴안고 그는 능력의 최대치를 찾아갔다. 얼마나 독하게 공부를 했던지 상위권 즈음에서 맴돌던 성적이 최상위에 이르렀고 마침내 서울의 의과대학에 입학을 했다.

 

밀폐용기에 추어탕을 담아 내밀었더니 동생은 여느 때처럼 손사래를 친다. 그러자 안방에 누워계시던 어머니가 누나 말 들으라고 야단치듯 말씀하신다. 목소리가 여느 때와 달리 높다. 아마도 솥단지 째 막내아들에게 안기고 싶은 마음이 보태진 까닭이리라. 예예, 큰소리로 대답하며 웃는 동생의 입가에도 어느새 굵은 주름이 자리 잡았다.

주 재료인 미꾸라지 외에도 여러 가지 부재료를 한 솥에 넣고 푹푹 끓여야 하는 추어탕은 모든 재료가 제 색깔을 버리고서야 비로소 깊은 맛을 낸다. 제 고집만 주장하기보다 서로 어우러질 때 맛을 내는 인생의 이치와 비슷하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인지 추어탕을 끓이며 생각도 길어진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