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태환 원장.
안태환 원장.

소외되고 고통받는 타인의 존재를 위로하고 희망을 건네는 이들이 있다. 이들의‘선한 영향력’은 흐드러진 봄꽃의 자태로 온 천지를 향기롭게 한다. 성직자도 그러하고 교육자도 그러하며 때로는 기업인도 그러하다. 시장 좌판에서 어렵사리 모은 돈으로 더 어려운 일상을 살아가는 이웃들에게 기부하는 키다리 아저씨도 있다.

이들의 눈부신‘선한 영향력’은 무더운 여름, 산들바람 같아서 그 전파도 빠르고 쾌적하다.

선행을 통해 함께 사는 공동체를 지향하는 사람들의 면면은 재물이 있어서도 아니고 사회적 지위가 높아서도 아니다. 인간의‘꼴’을 온전하게 지탱하는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누구나 할 수 없다. 최근 사회적 언어의 화두인‘선한 영향력’은 전문성과 진정성, 사람을 존중하는 태도가 있어야 비로소 가능한 공익적 역할이다.

올바르고 착하여, 도덕적 기준에 맞는 효과나 작용이 사회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모두 ‘선한 영향력’이다. 공동체를 걱정하되, 사람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 사람들이 대개 그 범주에 든다.

자신의 재능으로‘선한 영향력’을 선사하는 이들도 있고 진정한 돈의 가치를 보여주며‘선한 영향력’을 구현하는 이들도 있다.

세계 최대의 컴퓨터 소프트웨어 회사‘마이크로소프트’라는 이름 앞에 늘 따라붙는 수식어는 빌 게이츠이다. 세계 최고 부자의 반열에 오른 그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상징이 되었다, 그러나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 하나, 마이크로소프트는 공동창업자, 폴 앨런이 작명했다고 알려져 있다.

지난 2018년, 혈액 암으로 타개한 그는 고교 후배인 빌 게이츠와 인류의 문명을 바꾼 주역이었다. 개인용 컴퓨터에 적합한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개발하겠다는 신선한 아이디어도 그였다.

시대의 흐름을 앞서간 덕에 폴 앨런도 빌 게이츠와 함께 일찌감치 억만장자가 됐다. 그 막대한 부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쓰면서 동시에 세상을 이롭게 하는 모든 일에 아낌없이 내놓았다. 많은 음악팬들과 평론가들에게 록과 블루스 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로 손꼽는 지미 핸드릭스의 음악 박물관을 지어 그의 고향 시애틀에 헌납했다.

뿐만 아니라 소외된 이들을 위한 교육과 환경 등을 위해 쓴 돈이 무려 20억 달러에 이른다.

타개한 그를 기려 애플의 최고경영자인 팀 쿡은 “우리가 사는 세상은 선한 힘을 잃었다”라고 깊이 애도했다. 성공한 이후에도 중노동에 가까운 일을 하던 폴 앨런은 진정한 돈의 가치를 ‘선한 영향력’으로 몸소 실천했다. 폴 앨런의 ‘선한 영향력’이 초유의 감염병으로 매섭고 시린 인류의 오늘을 보듬어주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 상황은 인류가 직면한 굴레이다. 인류 역사를 돌아보면 이러한 역경 속에서도 자신의 숨은 잠재력을 뿜어내는 사람들이 있었다. 위태위태한 방역현장의 의료진도 그러하다. 밤을 지새우며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는 연구진이 그러하다.

공동체 속에서 각자의 재능이 눈부시게 발휘될 수 있도록 돕는‘선한 영향력’은 망설일 것도 없이 저마다의 재능으로 누구 나가 할 수 있는 연대의 가치이다. 어설픈 경험치지만 타인에 대한 양보는 인간의 객관적 실체를 보여준다. 모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분주한 오늘날 소유의 시대에 주변을 밝고 행복하게 하는 데 도움을 주는 이들이‘선한 영향력’의 주체이다.

2016년 세상을 떠난 이탈리아 기호 학자이자 철학자인 움베르토 에코는 유작 에세이‘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에서 공동체가 무너지고 파편화된 현대 사회를 불확실하고 불안정한‘유동 사회’라고 규정한다.

사람들은 끝없이 배를 채워야만 직성이 풀리는 폭식증 환자처럼 새로운 물건을 끊임없이 사들이고, 구매한 물건으로 속물처럼 자신의 지위를 드러낸다고 힐책한다.

그런가 하면 정보의 과잉 속에서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바보가 되고 있다고도 경고한다. “타인의 고통에 냉담한 인간이 되지 말자.”라는 그의 성찰은 인간성이 상실되어가는 우리에게 묵직한 울림을 던진다. 그러고 보니 그도 글을 통해 ‘선한 영향력’을 전파한 사람이었다.

의사로서의 시간이 깊어 갈수록 매일 조금씩 더 가까이, 환자들을 위해 걸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때로는 그 길이 아무리 험난하고 기나긴 여정일지라도. 선한 의도를 지닌 채 타인을 치유하는 영향력,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사회적‘선한 영향력’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난 힘들고 지친 일상 속에서 오늘도 말한다. “아픈 당신이 괜찮다면, 저는 괜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