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에서 촉발된 '성과급' 논란이 사회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성과급에 대한 직원들의 불만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올해 유독 문제가 부각되며 보상 체계 관리와 사내 소통이 기업들에 중요한 경영 과제로 급부상한 것. 

다만 일각에선 일부 대기업 직원들에만 해당하는 '그들만의 리그'라는 지적도 나온다. 대기업 가운데서도 코로나19 타격을 받은 항공 등 업계는 성과급이 대폭 감소했다. 중소기업은 성과급 자체가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온라인에서는 대기업 중심의 성과급 논란이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의 박탈감을 키운다는 반응도 많다.

또한 이번 논란을 계기로 업종별 양극화가 수면 위로 부상하면서 여당이 추진 중인 이익공유제 도입이 공론화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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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업계에 따르면 논란의 시초가 된 SK하이닉스의 성과급 갈등은 일단락된 상태다. SK하이닉스는 4일 노사협의회를 열고 구성원들에게 우리사주와 복지 포인트를 지급하고 성과급인 이익분배금(PS) 산정 기준을 EVA(경제적 부가가치·영업이익에서 법인세, 향후 투자금액 등을 뺀 것)에서 영업이익으로 바꾸기로 했다.

앞서 SK하이닉스는 실적 초과에 대한 성과급인 2020년분 초과이익배분금(PS)을 연봉의 20%(기본급의 400%)로 지급한다고 지난달 말 공지했다. SK하이닉스는 2019년에는 실적 부진으로 지난해 초 PS를 못 주고, 대신 기본급의 400%에 해당하는 '미래 성장 특별 기여금'을 줬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 비대면 수요 증가로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84% 증가한 5조원을 달성하는 등 실적이 매우 좋았는데, PS 액수가 실적이 부진했던 전년에 수령한 특별 기여금과 같은 수준에 그치자 문제가 됐다. 특히 SK하이닉스 입사 4년차 직원이 이석희 사장을 포함한 전 구성원들에게 공개적으로 항의 이메일을 보낸 것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이에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1일 '연봉 반납'을 선언하고, 이석희 사장이 2일 사과를 표명하는 이메일을 전 직원에 보냈지만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직원들은 성과급 산정 지표로 삼는 'EVA'(Economic Value Added·경제적 부가가치)'를 공개하라고 요구했으나 사측은 영업 기밀에 해당해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 SK하이닉스가 쏘아올린 성과급 논란… 전 산업계로 퍼져

이번에 가장 심각한 갈등을 겪은 회사는 SK하이닉스지만 삼성, LG 등 다른 대기업은 물론 전 산업계로 논란이 번지고 있다.

SK하이닉스에 이어 SK텔레콤 노조도 전년보다 20% 정도 줄어든 지난해분 성과급에 대해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박정호 사장이 직원들과 소통에 나서고 설 명절용 사내 포인트 300만 포인트를 지급했으나 노조는 임시방편이라며 반발을 이어가고 있다.

논란이 이어지자 SK텔레콤 노사는 내년부터 노사 합의로 지급 기준을 개선키로 했다. 이들은 노사합동 테스크포스(TF) 를 구성해 성과급 제도 개선을 위한 세부 지표와 지급 방식을 만들어 내년부터 적용할 계획이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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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에서도 성과급에 대한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타 기업들과 비교해 액수가 많고 올해는 SK하이닉스가 워낙 부각되다 보니 상대적으로 갈등이 덜해 보일 뿐이라는 전언이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사업 담당 DS부문은 연봉의 47%, 스마트폰 담당 IM 부문은 50%, 소비자 가전(CE) 부문에 속한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50%, 생활가전사업부는 37% 등으로 성과급을 지급한다고 최근 공지했다.

그러자 지난해 가장 많은 영업이익을 올려 전사 실적을 이끈 DS 부문 직원들은 합당한 보상을 받지 못했다는 반응이다. 가전 부문 직원들도 지난해 역대 최고 실적을 냈는데 차별받고 있다는 불만을 보인다.

삼성전자 계열사들도 마찬가지다. 삼성디스플레이의 OPI 지급률이 12%로 책정되자 삼성전자의 TV 담당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지급률 50%)와 비교돼 너무 적다는 불만이 나왔다.

LG그룹에서는 LG화학에서 최근 분사한 LG에너지솔루션 직원들의 불만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LG화학 석유화학 부문은 기본급의 최대 400%, 생명과학 부문은 300%, 전지 사업 담당 LG에너지솔루션은 200%대 성과급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자 LG에너지솔루션 직원들이 배터리 부문이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낸 것에 비해 보상이 타 사업 부문에 비해 적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2019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연간 적자를 보며 성과급을 지급하지 못했다. 대신 지난해 3·4분기에 연속 흑자를 거두고 적자 폭을 줄인 데 대한 포상 차원에서 고정급의 50% 수준으로 격려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LG전자는 이달 중 지난해분 성과급을 결정해 공지할 예정이다. 직원들은 다른 기업이나 사업 부문끼리 비교하며 성과급에 대한 우려를 표시하고 있어 LG전자도 비슷한 갈등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LG전자는 전년에는 가전 부문 중 가정용 에어컨 담당 조직에 기본급의 최대 500%에 해당하는 성과급을 지급했다. 적자에 시달리는 휴대전화 사업 부문 직원들에게는 성과급 없이 격려금 100만원을 줬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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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에서는 올해 유독 성과급 논란이 커진 배경 중 하나로 공정성과 실리를 중시하는 MZ세대(1980년대 후반~2000년대에 태어난 세대)의 특성을 꼽는다. 회사를 '평생 직장'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에 실리나 원칙에 어긋난다고 생각하면 참지 않고 명확하게 불만을 표시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SK하이닉스에서 처음으로 공개 질의를 통해 문제제기를 한 직원은 4년 차로 알려졌다. 그는 CEO를 포함한 2만8000명에게 공개 질의 성격의 e메일을 보냈고, 많은 직원들이 ‘응원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사내 게시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직장인 커뮤니티 등이 직장인들이 의견을 표시하는 채널이 다양해지고 외부로 빠르게 전파되며 관심도를 키우는 데 한 몫 했다.

반면 기업들은 성과급 산정 기준은 '기업의 기밀'이며, 이를 공개할지 여부는 회사의 고유 권한이라고 보고 있다.

성과급은 기본급과 달리 노사의 협의 사항이 아니다. 특히 모든 직원이 만족하는 성과급 산식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 데다, 기업이 향후 영업적자 등 불확실성에 빠질 경우까지 고려해야 한다. 경영진이 회사의 현재와 미래를 종합해 적절한 액수를 정하는 게 맞다는 주장이다.
 
특히 코로나19 여파로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서 인력 이탈까지 걱정하게 됐다. 논란을 잠재우고자 과도한 성과급을 지급하면 투자 재원이 부족해 다른 기업과의 경쟁에서 뒤처질 수도 있다. 

다만 기업들은 회사의 투자 계획 등 중요 경영 기밀과 맞물린 성과급 정보가 공개되는 것에 대해 부담을 토로하지만 올해 논란을 계기로 전반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는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한 관계자는 "보상 체계와 기준, 투명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커지고 있다"며 "직원들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정보를 사전에 제공하고 소통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를 계기로 기업 경영에서 소통의 중요성을 알게됐다"고 덧붙였다.

한편 일각에서는 이러한 성과급 논란이 일부 대기업 직원들에만 해당하는 '그들만의 리그'라는 지적도 나온다. 대기업 중 정유, 항공, 철강업계 등은 지난해 코로나19로 실적 부진에 시달리며 성과급이 아예 없거나 대폭 감소했다. 온라인에서는 대기업 중심의 성과급 논란이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의 박탈감을 키운다는 반응도 많다.

또한 이번 논란을 계기로 업종별 양극화가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더불어민주당 등 여당이 추진 중인 이익공유제 도입이 공론화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