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동북공정 논란이 게임계에서 다시금 불을 지피고 있다. 최근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이하 블리자드)의 FPS 게임 '오버워치'에서 실시한 설날 이벤트에서 중국 네티즌들이 '설'의 명칭을 두고 문제를 삼은 것. 앞서 '갓', '한복'까지 중국 문화라 우겼던 '생떼' 논란이 오버워치에서도 번진 것이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5일 오버워치에서 진행된 '하얀 소의 해' 이벤트에서 비롯됐다. 중국 네티즌들은 이벤트 일환으로 공개된 '호랑이 사냥꾼' 애쉬 스킨과 '까치' 에코 스킨을 겨냥해 중국 문화를 무단으로 베꼈다고 주장했다.

블리자드 디자인 팀에 따르면 호랑이 사냥꾼 스킨은 조선시대에 호랑이를 잡기 위해 창설된 특수부대 '착호갑사'에서 착안했다. 까치 스킨은 한국의 명절인 설날을 상징한다는 의미로 만들어졌다. 이는 개발진이 한국 문화를 기반으로 제작했다고 이미 영상을 통해 공식 발표한 부분이다.

그러나 중국 네티즌들은 수긍할 수 없다며 오버워치 공식 트위터에 몰려가 집단 항의를 표했다. 이들은 "설날이 아닌 '춘절(중국식 설 명절)'이라고 불러야 한다"며 "오버워치의 행보에 실망했다"고 댓글로 비난의 수위를 높였다.

또 다른 중국 네티즌은 한국이 중국의 많은 전통문화를 도용했다며 등불놀이, 단오절, 활자 인쇄, 풍수지리 등이 한국이 훔쳐 간 중국의 고유 문화라는 왜곡된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중국 현지 언론도 이에 가세했다. 한 중국 언론은 '한국인에게 도둑맞은 오버워치 춘절 이벤트'라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불을 댕겼다. 

사진 출처= bilibili. 중국 네티즌들이 기사 댓글란에서 한국이 중국 문화를 훔쳤다고 비판하는 내용의 글을 달았다.
사진 출처= bilibili. 중국 네티즌들이 기사 댓글란에 한국이 중국 문화를 훔쳤다고 비판하는 내용의 댓글을 작성했다.

■ 국내 네티즌 "중국의 억지 주장, 황당 그자체"

국내 네티즌들은 다소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한 네티즌은 "최근 중국이 한국을 '도둑국(小偷国, 중국 문화를 훔치는 한국을 일컫는 말)'으로 부르는 게 유행처럼 번졌다"며 "이들의 주장은 대응할 가치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근거가 없다"고 일축했다.

최근 중국이 동북공정 기조를 확산한 것은 한류 열풍을 다분히 의식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아시아 문화의 중심이 한국으로 옮겨가는 것에 대한 위기감이 중국 내에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외에도 일부 중국 네티즌들은 오버워치 운영진이 한국 유저를 편애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오버워치의 실제 프로모션 내용을 들여다 보면 이는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우선 출시 스킨 개수만 봐도 차이가 난다. 이번에 추가된 중국 스킨은 백사, 붉은용, 토우 의무병, 우마왕 등 총 4종으로 한국(2종)보다 많다. 과거와 비교해도 마찬가지다. 중국의 스킨은 관우, 황충, 제갈량, 오공, 저팔계 등등 총 25종에 달한다. 반면 한국 스킨은 다 합쳐도 중국의 절반 수준인 12종에 그친다. 

유튜브에 공개된 축제 영상도 오히려 중국풍에 가까운 것으로 판단된다. 영상 속 배경이 상하이 타워를 연상케 하고 배경음악 역시 중국의 전통음악이 삽입됐기 때문이다. 설날 이벤트에서 중국의 비중이 줄었다는 의견은 사실이 아닌 셈이다.

■ 게임 운영으로 갑질하는 중국··· '후안무치'의 극치

게임계에선 동북공정 논란이 갑질 운영으로 이어진 사례도 있다. 바로 중국 게임사 페이퍼게임즈의 '샤이닝니키'를 통해서다. 페이퍼게임즈는 한국 서버 런칭 당시 한복 아이템을 공개한 바 있다. 그러나 중국 네티즌들의 반발로 한복 아이템을 삭제한 데 이어 한국 서비스 종료까지 단행해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이는 중국 네티즌들이 한복을 두고 명나라 의상인 '한푸'와 비슷하다는 주장을 펼치자 게임사가 동의한다는 뜻을 밝히면서 시작됐다.

페이퍼게임즈는 공지로 "우리는 중국 기업으로써 조국의 입장과 일치한다. 한복은 중국의 문화이며 동북공정을 지지한다"며 중국 네티즌들의 손을 들어줬다.

국내 언론과 한국 유저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개발사가 역사·문화 왜곡에 이어 운영 중립성을 헤쳤다는 이유에서다. 그러자 페이퍼게임즈는 "중국을 모욕한 (한국유저)의 다수 사례가 있어 한계에 이르렀다. 중국 기업으로써 이러한 행위를 단호히 배격하고 국가의 존엄성을 수호하겠다"며 일방적으로 한국 게임 서비스를 종료했다.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를 두고 "게임 내의 '한복 동북공정론'도 문제지만 게임개발사의 대응이 더욱 황당하다"며 "'게임사와 조국의 입장이 줄곧 일치해 왔고 국익을 해치는 행위를 반대한다'면서 일부 중국 네티즌의 거짓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 동북공정, 판호와 직결될 수 있어··· 업계, 4년 전 '한한령' 재현 우려 

동북공정 문제는 향후 게임계에 미칠 파장이 클 것으로 관측된다. 국내 유저들에게 있어 게임 내에서 문화적인 이슈가 민감하다는 점과 더불어 해외 사업자로부터 이용자 보호의 필요성도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상당수 난관이 예상된다. 국내법상 해외 사업자를 규제할 수 있는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점과 중국이 게임 시장에서 압도적인 지위를 갖고 있다는 부분에서다.

2020 게임백서에 따르면 2019년 모바일 게임시장에서 중국의 점유율은 27.9%로 1위다. 특히 중국산 모바일 게임의 국내 유입은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해 중국의 수출 비중에서 한국은 9.9%로 전체 국가 중 세 번째로 높다. 

외산 잠식이 현실화되는 상황에서 제2의 샤이닝니키와 같은 전례가 남지 않도록 정부 차원에서 강경한 대응과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외 게임사가 급작스럽게 서비스를 종료했을 경우, 이용자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게임법 전부 개정안에서 국내 대리인 지정 제도를 도입해  해외 게임사의 무분별한 운영을 막자는 내용도 거론되고 있다.

다만 일부 게임 업계는 조심스럽다는 입장이다. 동북공정 문제가 판호와 직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앞서 중국은 한한령을 이유로 자국 내 한국 게임의 진입을 2017년부터 원천적으로 차단한 바 있다.  

실제로 최근 컴투스(서머너즈 워)와 핸드메이드(룸즈)의 판호 발급을 제외하곤 한국 게임은 2017년 이후부터는 단 한 개의 게임도 중국으로부터 허가를 받지 못했다. 또 판호 발급 기준에 폭력성, 선정성 이외에도 '사상'도 포함될 수 있다는 점도 걸리는 부분이다. 이 때문에 동북공정 논란이 재점화될 경우,  판호 길이 재차 막힐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