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태환 원장.
안태환 원장.

진료가 많은 날은 하루가 길다. 깨어있든, 잠들어 있든, 내게 주어진 시간은 그만큼 눈떠있는 시간이 삶의 온전함이다. 그렇다고 잠의 그 고귀한 가치를 폄하할 마음은 없다. 깨어있는 시간의 소중함이 위대할 뿐이다. 의사라는 직업의 특성상 조각난 연휴는 늘 상 있는 일이다. 빼곡한 시간을 소모하는 일에 익숙한지라 유유자적한 휴일은 꺼끌꺼끌한 속옷을 겹겹이 껴입은 느낌이다. 어쩌다 한가로운 날에도 늘어지는 잠을 생체는 동경하지만 쉬이 되지 않을 호사라고 여긴지 오래되었다. 

몸이 부지런하고 오만가지 일에 열정을 쏟아야 되는 일상은 어쩌면 천성인지도 모르겠다. 부지불식간에 찾아든 휴식에도 빈둥거리는 시간의 소비는 내내 못마땅하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책을 읽는다. 휴식의 시간에 내맡겨진 독서는 인간에게 가장 자연친화적이다. 책 읽은 순간은 호흡도 정갈하다. 이것도 타고난 듯하다. 부모님이 그러셨고 조부께서도 그러셨다.

어쩌면, 오지랖은 탯줄과 함께 몸에 지니고 태어나는 듯싶다. 그렇다고 남을 돕지 못해 안달이 나는 성격은 아니다. 다만 도울 수 있는 여력이 있을 때 남을 돕지 않고 있으면 곡기를 끊은 허기가 있다. 그건 분명 오지랖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천성이 이러할 진 데 의사라는 직업을 택한 것은 어쩌면 성경 속 달란트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참 다행이다. 

한동안 심취했던 독일의 정신분석가 볼프강 슈미트바우어는 ‘무력한 조력자’에서 “조력자는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지각하지 않으려고 타인을 돕는다. 다른 사람을 돕는 활동을 함으로써 자신을 도울 수 없는 무력함과 싸운다”라는 의미의‘조력자 증후군’개념을 제시했다.

오호라, 날 두고 하는 말이다. 그의 책을 한걸음 더 들어가 보면 자신이 그리워했던 것을 바로 자기 자신에게 줄 수 있어야 비로소 다른 사람을 위해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런 통찰에 이르게 되면 선한 오지랖도 확장된다. 

몇 해 전, 의사들의 자살률은 다른 집단에 비해 2.5배 높다는 통계학적 보고가 영국에서 발표되었다. 47명의 의대생을 표본 집단으로, 무려 30년의 긴 세월 동안 추적 조사한 과학적 결과이다. 36%는 향정신성 약물과 알코올 중독에 빠진 일이 있었고, 17%는 정신 병동에 입원한 일이 있다는 놀라운 결과도 도출됐다.

의사. 번민의 직업군이다. 아마도 생명을 다루는 일상 속에서의 과도한 스트레스가 원인일 것이다. 나도 그러한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그럴 때마다 자존감을 지탱해 주는 소일거리가 필요하다. 마음의 평안을 위해서이다.

의사뿐이 아니다. 타인을 돕기 위한 직업은 대부분 소진 직전에 다다른다. 예외는 없다. 선한 사람들일수록 더욱 그렇다. 에둘러 의사의 애환을 푸념하고 싶지는 않다. 공익적 인생을 사는 이들이 그 얼마나 많은가. 그들의 정신적 고난도 애절할 것이다. 나이 듬의 가치는 기억력은 사라지지만 이해심은 많아지는 데에 있다. 그 단아한 삶의 지혜는 책 읽기가 지탱해 준다. 그건 틀림없다. 타인을 더더욱 잘 챙기기 위해서도 독서는 소통의 자양분이 된다. 

오늘도 저녁 무렵, 살가운 지인들의 안부전화를 받는다. 한결같고 때론 의례적인‘뭐해’라는 질문도 건네진다. 무심코 반응하는 한결같은 대답이‘책 읽는다’였으면 좋겠다. 일상의 안녕과 지친 영혼을 위로받는 시간을 갖고 있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배려와 나눔을 위해, 더 나은 맑은 정신을 위해 ‘책 읽는다’가 ‘밥 먹는다’처럼 상투적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