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식 전(前) 공무원연금공단 이사장
최재식 전(前) 공무원연금공단 이사장

□ 내 적성에는 놀고 쉬는 것이 맞는 것 같아요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벌써 나이 마흔이 되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고향에서 평범하게 지냈고, 대학생 때는 갑작스런 자유에 그냥 게임이나 하면서 놀고 지냈다.

운 좋게 들어간 회사를 10년 넘게 잘 다니고 있긴 한데 성격상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 회사에서는 스트레스 받고 퇴근 후 집에서는 무료한 생활을 하고 있다. 게으르고 변화를 두려워해서 현실에 안주하는 삶을 지금껏 살아왔다. 결혼도 못했고 외톨이로 혼자 지낸다. 고향친구나 부모도 1년에 한 번 정도 만난다.

이렇게 죽을 때까지 스트레스 받으며 타지에서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고 싶지는 않다. 어느 정도의 은퇴자금만 마련되면 빨리 퇴직하려고 한다. 아무래도 고향 가서 재미있게 놀고 편하게 지내는 것이 내 적성에 맞는 것 같다.

△빨리 돈 벌어 일찍 은퇴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아침에 일어날 이유를 만드는 것

당신은 현재의 직장생활에서 아무런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부모님과 친구들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 재미있게 살고 싶은 모양이다. 빨리 그 소원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고향에서 유유자적하게 지낼 팔자를 타고났으면 그렇게 사는 것이 맞다. 뭣 하러 장가도 가지 못하고 도시에서 혼자 외롭게 살고 있는가.

그냥 남들이 대학가고 직장생활을 하니까 당신도 따라서 그렇게 한 것이 실수라면 실수다. 지금이라도 조기은퇴하고 인생의 궤도수정을 해보자. 하지만, 은퇴자금 마련이 쉽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파이어’의 삶이 화제인데 참고해보면 어떨까.

파이어(FIRE)란 경제적 자립(Financial Independence)과 조기은퇴(Retire Early)의 앞 글자를 딴 합성어이다. 빨리 돈을 벌어서 일찍 은퇴한 후 보람된 삶을 살자는 것이 파이어의 목표다. 근검절약과 안전한 투자로 빨리 돈을 모으고 소중한 자산인 시간을 되찾아 세계여행을 하거나 비영리단체 활동을 하거나 창의적인 일을 하는 것이다.

파이어의 발상은 참으로 멋지다. 일하고 먹고 자는 현대사회의 단순한 생활패턴은 파괴되어야 한다. 꿈이 있는 젊은이라면 한번 도전해볼만 하다. 그런데 대략 얼마를 벌어놔야 죽을 때까지 돈을 벌지 않고도 최소한의 생활을 할 수 있을까? 

최근 생명표에 따르면 40세 남자의 기대여명은 41년 정도다. 평균적으로 산다면 남은 생이 41년이라는 것이다. 한 달에 생활비로 300만원을 쓴다고 가정하면 1년에 3600만원, 41년이면 대략 14억7600만원이면 된다. 죽을 때까지 15억 정도면 생활할 수 있다. 어느 정도 재산형성이 되면 이자수익으로 생활비를 충당할 수도 있지만 저금리 시대라 이자수익은 물가상승과 상쇄시킨다.

그러나 사람이 꼭 평균으로 산다는 보장이 어디 있는가. 81세가 아닌 100세까지 산다면 22억 정도는 되어야 한다. 만약에 결혼해서 자식 낳고 산다면 이보다 많은 돈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젊은 나이에 스스로 돈 벌어 조기퇴직하고 소득활동 없이 살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자산을 마련한 후 이를 밑천삼아 약간의 돈을 벌거나 몸을 움직여 간단한 생활비 정도를 벌어 보탤 요량이면 파이어가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파이어의 삶도 분명히 목적이 있는 삶이라는 거다. 목적 없이 그냥 놀고 쉬는 게 아니다. 나는 일하는 것은 싫고 스트레스 받는 일은 더더욱 싫다면 답이 없다. 현직을 계속하든 퇴직하고 다른 삶을 살든 가장 중요한 것은 삶의 목적을 찾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날 이유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남은 평생을 고향에서 하는 일 없이 맑은 공기나 마시며 보내자고 생각하면 안 된다.

삶에는 약간의 긴장감이 필요하다. 스트레스가 하나도 없다면 죽은 거나 다름없다. 은퇴를 하고 나면 자유스러울 것 같지만 현직 때보다 더 힘들 수도 있다. 책상 앞에 앉아 퇴근 시간만 기다리지 말고 당신의 인생에 주어진 시간을 소중하게 쓸 방법을 찾아보자. 살면서 정말 하고 싶은 것,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이것을 찾는 것이 은퇴를 하는 것보다 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