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억원 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광명·시흥 신도시 땅 투기 의혹이 불거지면서 LH 직원들의 비리가 재조명받고 있다.  일각에선 20년간 자행해온 LH 직원의 공공연한 불법행위의 관행은 고질적이고 상습적인 것이라 새삼스럽지 않다는 반응이다. 
의혹 대상인 13명의 LH의 직원은 전·현직 고위층이라는 것, 여기에 직접 관련이 있는 보상업무 담당자라는 점을 볼 때, 그간 자행해 온 LH의 부조리가 이제서야 크게 불거졌다는 것이다.

100억원 대 LH직원들의 광명·시흥 신도시 땅 투기 의혹이 불거지면서 LH 직원들의 비리가 재조명받고 있다. (연합뉴스)
100억원 대 LH직원들의 광명·시흥 신도시 땅 투기 의혹이 불거지면서 LH 직원들의 비리가 재조명받고 있다. (연합뉴스)

◇ 수억원 뇌물·15채 아파트 구입하기도
LH의 최근 비리 행적을 보면 수억 원의 뇌물을 받거나, 수의계약을 통해 LH 아파트를 여러 채 구입하는 등 각종 비리로 도마에 오른바 있다.

지난 2019년 국정감사에서는 LH 직원 A씨는 LH가 분양하는 전국의 아파트 15채(수원·동탄·경남·대전 등)를 본인과 가족들 명의로 분양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순번추첨 수의계약, 추첨체 분양 등 각종 수법이 동원됐다. A씨는 견책 징계를 받은 후 스스로 회사를 그만뒀다.

B씨는 지인이나 직무 관련자들로부터 투자 조언과 자문 제공 등의 명목으로 네 차례에 걸쳐 1억3150만원을 받았다.

C씨는 공사 현장 납품을 청탁한 업체에 그랜저 승용차 렌트비 2191만원(33차례)을 대신 내게 했다.

브로커 업체 대표와 납품 계약 성사 시 납품금액의 1.5∼2.5%를 받기로 하고 실제로 각 3000만원대 현금과 식사 등 향응을 받은 4명도 적발됐다.

이들 6명은 모두 파면됐다.

공사 품질시험 담당 센터의 관리자였던 D씨는 개인 박사학위 논문을 쓰기 위해 신규 토질 장비(피에조콘 장비)를 회삿돈 8억6900만으로 구매하고 기존 장비는 박사과정 재학 중인 학교에 무상으로 넘겼다가 결국 강등 처분을 받았다.

이밖에도 아내가 판매하는 향초 144만원어치를 수급업체 현장 대리인들에게 강매한 직원, 북한 이탈주민을 위한 특별공급 임대주택 계약을 담당하면서 이들의 주거지원금 247만원을 사적으로 유용한 직원 등도 적발됐다.

성희롱·성추행 사건으로 파면된 경우도 있었다.

문제는 LH직원들의 이런 비리와 비위는 해마다 늘고 있다는 점이다. 반면 각종 비리에도 불구, 처벌은 여전히 '솜방망이'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회재 의원에 따르면 LH 내부감사로 행정상 처분, 주의, 경고, 징계를 받은 직원이 지난 2016년 566명에서 2019년 823명으로 45.4% 증가했다.

반면 처벌은 가벼웠다. 

견책 이상의 징계를 받은 직원은 2016년 13명, 2017년 20명, 2018년 40명, 2019년 35명으로 꾸준히 증가했으며 최근 4년간 파면, 해임 등 중징계를 받은 직원도 26명에 달했다.

내부징계도 미미했다. 지난 2016년부터 2019년까지 내부감사로 밝혀진 사안에 대한 처분요구 대비 징계비율은 12%에 불과했다. 반면 국토부나 감사원 등 외부감사로 인한 징계비율은 69%에 달했다.

LH 직원 13명의 광명·시흥 땅투기 의혹에 대해 일각에선 빙산의 일각이라 지적한다. LH의 불법행위는 어제 하루 이틀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연합뉴스)
LH 직원 13명의 광명·시흥 땅투기 의혹에 대해 일각에선 빙산의 일각이라 지적한다. LH의 불법행위는 어제 하루 이틀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연합뉴스)

◇ 빙산의 일각일 뿐··· 직원 일탈 아닌 관행

LH 직원 13명의 이런 비리 의혹에 대해 일각에선 빙산의 일각이라 지적한다. LH의 불법행위는 하루 이틀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LH와 주거이전비를 놓고 갈등을 벌이는 성남주민연대 측은 LH는 개발정보를 활용해 사익추구를 위해 친인척 지인을 동원한 땅 투기가 일상화 됐다고 지적했다.  

성남주민연대 측은 "(LH)는 공사건을 놓고 프리미엄이니 뭐니 읊조리며 갑의 위치를 활용해 뒤로는 사익추구의 구린 불법행동도 일상적으로 하고 있다"며 "공익사업으로 인해 부득이하게 쫓겨나는 절대다수 세입자들에게 주변 전세월세 폭등 등의 주거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주거안전의 최저기준을 세워 법으로 보장하는 주거이전비조차 LH는 벼룩의 간을 빼먹는 방식으로  떼먹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LH는 공기업이기에 서민들의 주거권을 향상시키는 것이기에 공익적 가치를 최고의 기준으로 삼아 정책을 만들고 운영돼야 한다"면서도 "현실의 LH는 주거권이라는 공적가치를 버리고 돈이라는 사적가치를 추구하는 정반대의 길을 걸어왔다"고 강조했다.

LH가 사업이 추진되는 위임된 권한을 남용해 개발정보를 활용하고 친인척관계와 지인을 통해 개발이득을 취하는 방식은 개인의 일탈이 아닌 '관행'이었다는 지적이다.  

야권은 이번 비리 의혹은 변창흠 국토부장관의 LH 재임시절에 있었던 일이라고 지적하며 변 장관도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연합뉴스)
야권은 이번 비리 의혹은 변창흠 국토부장관의 LH 재임시절에 있었던 일이라고 지적하며 변 장관도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연합뉴스)

◇ "변창흠 장관도 자유로울 수 없어"

LH 직원들이 광명·시흥지구 등 3기 신도시 발표 전 토지를 매입해 사전투기 의혹이 일자 정치권에서도 전수조사와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특히 야권은 이번 비리 의혹은 변창흠 국토부장관의 LH 재임시절에 있었던 일이라고 지적하며 변 장관도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자신의 SNS에 "LH 직원들이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투기를 했다면 법을 위반하고 국민을 배신한 것"이라며 "의혹이 사실이라면 업무상 취득한 비밀을 동원해 사익을 챙기려 한 중대 범죄“라고 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힘든 요즘 더 힘들게 하고 분노를 가져오게 한다"며 "확인되는 불공정행위, 시장교란행위 등에 일벌백계 차원에서 무관용으로 엄정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투기 의혹이 사실이라면 매우 충격적이고 참담한 사건"이라며 "부동산 투기 근절대책에 찬물을 끼얹는 반사회적 행위"라고 비난했다.

야당도 전수조사와 진상규명에 적극 찬성하고 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LH 직원들이 개인적인 이익을 취득하기 위해 그런 짓을 했다는 것은 일종의 범죄 행위"라며 "검찰이 철저히 조사해 전모를 밝혀야 한다"고 했다. 

국회 국토교통위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3년 동안 지분까지 나누고, 은행에 수십억 대출까지 받아 가며 토지를 매입한 이들의 행태는 범죄일 뿐 아니라 파렴치한 국민 기만이고 국기문란 행위"라고 지적했다.

김은혜 국민의힘 대변인은 변창흠 장관을 향해 "이미 신뢰를 잃어버린 문재인 정부의 총리실, 국토부의 '끼리끼리 조사'가 객관적일 수 있겠느냐"면서 "자신의 재임시절 일어난 일임에도, 유체이탈 화법으로 '청렴도를 높이라'며 기관장들에게 애먼 소리를 한 국토부 장관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느냐"고 의구심을 드러냈다.

안철수 국민의 당 대표도 "LH는 국토개발 정보를 가장 빨리 알거나 예상할 수 있는 조직이다. 그 정보를 악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기초적인 관리의 문제임에도 시민단체가 문제를 제기하기까지 이런 사실은 드러나지 않았다"면서 "당시 LH 사장이었던 변 장관이야말로 관리 감독의 최종적인 책임자라는 점을 분명히 지적하고자 한다"고 저격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문제가 불거지자 국토교통부, LH 등 관계 기관 전체를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지시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문제가 불거지자 국토교통부, LH 등 관계 기관 전체를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지시했다. (연합뉴스)

◇ 투명·공익성 치명타···정부, 재빠른 진화

문제가 불거지자, 정부 중심으로 진화에 나섰다. 가뜩이나 부동산 대책에 실패해 민심이 들끓는 상황에서 LH직원들의 땅투기 의혹까지 불거졌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번 일이 사실로 드러나면 ‘2·4 대책’에도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시흥·광명 신도시 조성 사업 모두 LH 주도로 이뤄진다. 공공 주도 사업의 핵심인 투명성과 공익성에 치명상을 입게 된 셈이다. 

정부 입장에서도 부동산 시장 대책의 핵심 축으로 삼아왔던 지역에 부동산 투기라는 악재를 만나게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토교통부, LH 등 관계 기관 전체를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지시했다. 경찰도 수사에 착수했다. 조사는 광명·시흥뿐만 아니라 3기신도시 전체로 확대된다.

남양주 왕숙, 하남 교산, 인천 계양, 고양 창릉, 부천 대장 등 총 6곳과 경기도와 인천시 및 6개 기초지자체도 전수조사 대상이다.

정부가 이번 일이 빙산의 일각일 것이란 합리적 의심을 인정한 셈이다.

LH도 사과문을 발표하고 직원 13명에 대해 직위해제 조치를 내렸다. 여기에 직원과 가족의  토지거래 사전신고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신규 사업이 추진되면 관련부서 직원·가족의  지구 내 토지 소유여부 전수조사도 진행한다. 

비리 의혹을 받는 LH 직원 13명의 위법 사실이 드러나면 징역형 등 처벌을 받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연합뉴스)
비리 의혹을 받는 LH 직원 13명의 위법 사실이 드러나면 징역형 등 처벌을 받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연합뉴스)

◇ 위법사실 드러나면 징역형

비리 의혹을 받는 LH 직원 13명의 위법 사실이 드러나면 징역형 등 처벌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개발 정보 등을 사전 입수하고 가족 명의로 땅을 사들여 부당이득을 취득한 혐의로 처벌받은 최근 사례도 있다.

공공주택특별법에 따르면 업무 중 알게 된 정보를 목적 외로 사용하거나 타인에게 제공 또는 누설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부패방지권익위법)도 적용받을 수 있다.

이 법 7조 2항에서는 공직자는 업무처리 중 알게 된 비밀을 이용하여 재물 또는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취득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밝히고 있다.

이를 어길 시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또 이런 행위를 통해 취득한 재물 또는 재산상의 이익은 몰수 또는 추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