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우 부산환경교육센터 이사/전 동의대 교수

현대사회에서 시민의 삶과 도시의 품격을 결정하는 척도는 높은 빌딩, 반듯하고 넓은 도로가 아니라 얼마만큼 보행에 적합한 시스템, 걷기 편하고 좋은 도시인가, 또 얼마나 아름다운 도심 속 공원이 있는가, 숲과 가로수로 상징되는 도심 숲이 얼마나 멋진가에 달려 있다.

세계적인 관광지로 유명한 해외 주요도시들의 특징이 바로 도심 한복판을 걸어서 다닐 수 있다는 점 그리고 훌륭한 도시숲과 공원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은 이를 잘 말해준다. 뉴욕이나 보스턴, 런던이나 파리 등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적 유명도시들은 도심 안에서 보행과 휴식, 문화와 힐링이 모두 가능하게 조성되어 있다. 걸어서 혹은 자전거를 타고 온전히 자신의 삶과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도시를 설계하고, 자연과 호흡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마을을 재구성하는 것이 21세기형 도시계획의 주요 트랜드로 자리 잡은 지 이미 오래다.

올해 11월 치러질 뉴욕 시장 선거의 가장 유력한 한 후보는 뉴욕을 ‘15분 동네’의 도시로 리메이크 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짧은 도보 거리 안에 좋은 학교, 빠른 대중교통, 신선한 음식을 살 수 있는 장소, 공원 등을 입지시켜 주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고 말했다. 얼마 전 재선에 성공한 프랑스 파리 시장 역시 ‘15분 도시’를 핵심 아젠다로 설정하고 파리 시내에 주차공간 6만개를 없애는 약속을 한 바 있다. 15분 도시 개념은 도시를 소규모 생활권 단위로 나눠 주거 문화 건강 관련 공공·편의시설을 조성하고 집에서 15분 내에 도보나 자전거를 이용해 갈 수 있도록 한다는 기획이다. 브라질의 생태도시 꾸리찌바 역시 일찌감치 우수한 도로 교통 체계와 정책을 수립하고 버스를 땅 위의 지하철 삼아 입체적인 대중교통 노선을 개발해 교통난을 해소하였다. 뿐만 아니라 건물을 지을 때 나무를 심고 도시숲을 조성하여 세계에서 오슬로 다음으로 나무와 숲 비율이 높은 도시가 되었다.

이러한 도시계획은 속도와 개발 위주가 아닌 환경과 보행 중심으로 도시를 재편해 ‘탄소 제로’를 실현함과 동시에 쾌적한 시민의 삶을 구현하겠다는 구상이 담겨 있다. 15분 도시를 설계한 소르본 대학의 모레노 교수는 “우리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자동차와 전쟁을 치르거나 15분 거리마다 루브르를 지을 필요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서울, 수도권을 비롯한 대도시 뿐 아니라 지역의 중소도시조차 어김없이 자동차 천국의 교통 전쟁을 치르고 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자동차의 행렬은 출퇴근 러시아워의 혼잡과 체증을 일상화하고, 턱없이 부족한 주차공간으로 인한 주차난은 도시 생활을 아비규환의 전쟁터로 만든다. 부산 역시 매한가지다.

이러한 열악한 상황에서 ‘40리 경부선 숲길 조성' 프로젝트는 진지하게 검토할만한 기획이다. 구포에서 사상을 거쳐 부산진역까지 지난 120년 동안 우리 부산의 허리를 끊던 경부선 철길을 걷어내 철길은 지하화하고 그곳에 숲길을 만들겠다는 구상은 보행과 도시숲이라는 미래지향적 도시 설계에 안성맞춤인 계획인 셈이다. 경부선 철로를 땅 밑으로 숨기고 구포~부산진역 구간에 푸른 숲 보행로를 조성하는 것은 탄소저감에도 매우 효과적이고 부산의 원도심을 푸른 도시로 리모델링 하는 데도 크게 기여 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경부선 철길을 지하화하는 과정은 건설의 몫이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일자리 창출이라는 경제적 부수 효과 또한 보너스로 주어질 것이다.

파리도 그렇고 꾸리찌바도 그렇고 세계적인 생태도시 이면에는 훌륭한 지도자가 있었다. 담대한 기획과 미래지향적인 비전을 지닌 지도자의 용기와 리더십이 도시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다. 오는 4월에는 서울과 부산에도 새로운 시장을 선출하게 된다. 차제에 우리 부산도 세계 어느 유명도시에 뒤지지 않을 걷기 좋은 도시, 숲의 도시를 설계하고 실행할 시장이 선출되면 좋겠다. 그리하여 제 2, 제 3의 생태도시, 보행 친화도시가 곳곳에 생겨나길 기대한다.